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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내일 모레면 환갑이 되는 작가는 어느 날 문득, 내 나라를 한번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차량을 개조해 멀리 여행을 떠난다. 동행은 자기처럼 다 늙어 털이 숭숭 빠지기 시작하는 프랑스 혈통의 개 찰리. 출발지는 뉴욕, 경유지에는 자신의 고향도 있다. 일정은 마치 미국 국경을 따라가는 것 같다. 대륙횡단이 아니라, 대륙외곽을 따라 돈다.

이 여행의 주인공 이름은 언제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존 스타인 벡’이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우리 나라에는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나이에 여행자의 눈에는 무엇이 들어올까? 죽기 전에 좋은 구경이나 더 하고 가자는 계산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러기엔 몸이 너무 피곤하다. ‘작가이면서도 나는 너무 몰랐다. 내 나라 이야기를 쓰고 있으면서도 내 나라에 대한 것을 너무도 몰랐다.’

이것이 적지 않은 나이에 고달픈 대장정을 부추긴 것이었다. 작가는 미국 구석구석을 돌며 1960대를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위스키가 들어간 커피를 건네고, 와인 병을 들고 이웃 캠핑차로 마실을 나서는 작가의 여유로움이 이 책의 작은 미덕이었다.

나름대로 빨래의 요령도 깨달아 즉석 빨래통을 매달고 덜컹덜컹 차를 몰 때는 설핏 웃음도 나온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내가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나이라는 선물이 주는 노련함이었다. 요령 없이 언제나 모든 것을 정면 돌파하려고만 했던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이 이야기는 분명 교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 방해도 없이 고요에 싸여 앉아 있을 때, 지프 한 대가 찌익 소리를 내며 길에 멎었다. 젊은 사람이 차에서 내려 성큼 다가왔다. 그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같이 거친 말투를 썼다.
“써 붙인 것을 보지 못했소? 여긴 사유지요.”
여느 때 같으면 그런 말투에 벌컥 화가 났을 것이다. 나는 추한 분노를 드러내게 되고 저쪽에서는 쾌감과 당당한 심보를 가지고 나를 쫓아낼 수 있었을 게다. 어쩌면 드잡이가 났을지도 모른다. 여느 때 같았으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쩐지 꼭 사유지 같더군요. 그러잖아도 어느 분을 찾아가서 허락을 얻을까 하는 참이었지요. 돈이라도 치르고 쉴까 했던 참입니다.”
“땅주인은 캠핑하는 것을 싫어해요. 여기저기 종이를 흩뜨려놓고, 불도 피우고 하니까.”
“땅주인이 싫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막 커피를 끓여놓았어요. 커피 한 잔 마시고 난 뒤에 가면 댁의 주인이 뭐라고 할까요? 댁에게도 한 잔 드렸으면 싶은데, 안 된다 하실 까요? 마신 다음엔 얼른 나가겠습니다만….”
젊은 사람은 씽긋 웃었다.
“그야. 좋겠죠! 불도 안 피우시고. 종이도 안 버리셨으니까.”
“아니. 난 그보다 더 못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댁한테 커피 한 잔을 뇌물로 쓰려고 하니까. 게다가 난 그 커피 한 잔에다 위스키 한 모금을 떨어뜨려 드릴까 하거든요.”
그러자 사나이는 껄껄 웃었다.
“좋습니다! 내 차를 좀 치워놓고 오지요.”
이래서 형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156-157P


존 스타인 벡의 1960년 미국을 찾아 떠난 이 여행기는 오래 전, 삼중당 문고에서 선을 보였다가 올해 초, 궁리출판사에서 새롭게 다시 펴냈다. 그 사이 작가, 번역가 모두 숨을 거두었다. 그래서 유난히 책 말미의 번역후기에 눈이 간다. 초판 번역후기는 이정우씨가, 재출간의 후기는 이씨의 아들이 썼다. 번역후기 내용이 절절하다. 그건 여러 일간지 기사에서 많이 인용되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 -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를 찾아서

존 스타인벡 지음, 이정우 옮김, 궁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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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미국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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