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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론과실천
어떤 시기마다 조금 더 눈길이 가는 장르가 있기 마련인데 요즘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늘 철학코너에 발길이 머문다. 어려운 철학 용어만이 나열된 책은 연거푸 하품을 하게 만들고,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슬그머니 책장을 덮게 된다.

나와 같은 독자들을 위해 철학책이 좀 더 쉽게 쓰여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철학이 우리 삶과 유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멀어지고 있다면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철학 하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의 만남은 매우 반가웠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 <철학 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저자 김용규의 <영화관 옆 철학카페>는 먼저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철학적 삶을 후식으로 들려준다.

메인 요리보다 더 진수성찬인 후식을 음미하며 가끔 소화불량에 걸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거듭 의미를 되새겨 보면 가슴 속 깊이 울리는 무언가와 만나게 된다.

영화는 우리 삶의 축소판이다. 영화는 음향과 영상으로 '삶에 관한 보편적 주제를 다룸으로써 인간의 자기 이해를 새롭게 해주는 일들을 분명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능하다면 작품을 감상한 다음, 해당하는 부분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좋다고 조언했다.

이 책은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에 3편씩의 영화를 선별하여 실어 놓았다. 귀동냥은 많이 했으나 보지 못한 영화 가운데 도리스 되리 감독의 <파니 핑크>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책에서 그 영화를 만났다.

사랑 없이는 발광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

@BRI@"인간은 왜 그토록 간절하게 타인에게서 특히 이성으로부터 사랑 받길 원하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심히 괴로워하고 발광하며 때로는 선뜻 죽음을 택하기도 하는가?" (203쪽)

사랑,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사람이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주제가 아닌가.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실존적 소외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오직 '사랑'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사랑이 "인간과 인간의 결합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저자는 '인간성과 융합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강력한 갈망으로 그것은 죽음으로 내몰린 인간의 실존적 분리 현상에 기인하는 가장 근본적인 열정이기 때문에 가장 강렬할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것이 인간이 가정을, 집단을 사회를 그리고 인류를 구성하는 이유이자, 그것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파니가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떠났고, 어머니는 홀로 파니를 키웠으나 자기중심적인 어머니는 파니와의 제대로 된 인간 결합을 보여주지 못한다. 파니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교감도 할 수 없어 고독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죽음을 배우는 모임'에 나가는 등의 혼란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생기는 데 그것은 점성술가 오르페오와의 만남이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파니는 새롭게 태어난다. 병든 오르페오를 진심으로 간호하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파니는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남에게 사랑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며, 능력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나아가 삶과 세계 그리고 그것의 총화로서 신을 사랑하는 것 이 모두가 '주는 활동'이며 '능력'인 것이다. 이러한 활동과 능력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 자신과 타인과 세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신과 합일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원초적 분리감, 소외감, 즉 죽을 것만 같아 차라리 죽음을 열망하는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219쪽)

행복이란 스스로 원하고 만들어 가야하는 것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데 흔히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린다.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언제나 불행할까. 행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도 없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불행할 수 있고, 남들 보기에 딱하게 보여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는 멋진 외모나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서점을 꾸리고 싶으나 형편상 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한다. 귀도는 성실하며 타고난 낙천성으로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스스로도 작은 기쁨을 누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알랭은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첫째는 자기 불행을 남에게 말하지 말 것을 권하고, 둘째는 주어진 삶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방법을 배울 것을 권한다. '슬픔은 독과도 같아서 누구나 스스로 만족해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불만에 차 있는 사람을 동정은 할망정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독일군에게 잡혀서 죽으러 가는 순간에도, 아직 병정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숨어서 자기를 보고 있는 아들 조슈아를 위해 그 특유의 '코믹한 병정놀이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만일 귀도가 실재로 잡혀가는 것처럼 보이면 조슈아가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자연스러운 '행복 만들기'가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을 함께 경험하게 하며, 동시에 고대 '스토아 철학'의 진수까지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89∼90쪽)

운명을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 이에 대한 태도는 바꿀 수 있다. '불행해지고 불만스러워지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되지만, 행복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나서서 쟁취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행복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도 행복을 만들어간 귀도의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안겨다 주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에 소개된 영화들을 빠짐없이 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될까. 저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영화라는 틀 안에서 조명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짚어보고, 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영화관 옆 철학카페

김용규 지음, 이론과실천(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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