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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지뢰> 책 표지
<나비지뢰> 책 표지 ⓒ 랜덤하우스
노름꾼 아버지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나고 동생과 함께 셋방살이를 하는 어린 준영은 우연히 주인집 딸 미나와 마주친다. 재혼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미나가 친모를 잊지 못해 찾아오자, 그녀에게서 정을 떼기 위해 친모는 모질게 대한다. 그러자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미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나비'처럼 화려한 삶을 꿈꾼다.

병으로 인해 동생을 잃고, 주인집 아주머니를 어머니처럼 의지하며 살던 준영은 화재로 주인집 아주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자기 대신 미나를 지켜달라는 아주머니의 유언을 듣고 그때부터 미나를 연모하기 시작한다.

갖은 고생과 역경 끝에 장성한 준영은 꾸준히 연마한 무술 실력으로 기획사 스턴트맨으로 취직 한다. 한편 아나운서가 된 미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방송국 국장에게 육탄공세를 하면서까지 입지를 굳히려고 애쓴다. 그런데 미나와 국장의 관계를 눈치 챈 질투심 많은 국장의 부인은 해결사들에게 미나를 납치하도록 지시한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미나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늘 멀리에서만 지켜보던 준영은, 우연히 미나의 납치 계획을 듣게 된다. 미나를 사랑한 준영은 해결사보다 한 발 먼저 미나를 납치한다. 예상대로 미나는 준영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한 반항을 한다. 준영은 그 모습에 무척 씁쓸함을 느끼지만 굳이 상황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납치범의 역할에만 충실한다. 인기 만점 기상캐스터 미나의 실종으로 방송국은 난리가 난다. 밀회마저 펑크가 난 국장은 말할 것도 없고, 미나의 남자친구인 공예가 지성도 갑작스런 사태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며칠 후 이제 해결사들이 잠잠해졌으리라고 생각한 준영은 미나를 순순히 풀어준다. 아직도 영문을 눈치 채지 못한 미나는 준영을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싶지만, 낯선 남자와 며칠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이미지에 커다란 흠집이 생길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냥 덮어두기로 한다.

한편, 준영이 사는 동네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는 수진은 준영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만 보고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다. 며칠 동안 준영이 사라져서 걱정을 하던 수진은 다시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자 안심을 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타고난 성격 탓에 준영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항상 길모퉁이에 숨어서 지켜보기만 한다.

한편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분해하던 국장의 부인은 훨씬 잔인한 해결사들을 동원하여 미나를 납치할 계획을 다시 세운다. 처음에 해결사들 동태만 주시하던 준영은 어느 날 갑자기 미나가 사라진 것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데….

시적 언어가 소설의 주류를 이룬다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이정하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랑에 관해서는 타고난 감수성을 지녔다는 동료들의 표현처럼, 이정하는 그동안 사랑을 테마로 한 시집과 산문집을 꾸준히 발표했다. 이정하의 그런 감수성과 소설이 만났다.

처절하면서도 따뜻하고, 참혹하면서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가슴 절절한 시적 언어로 그려낸 장편소설 <나비지뢰>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정하의 특유의 시적 감각으로 가슴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뢰'처럼 아픈 사랑을 '나비'처럼 아름답게 그린다

'나비지뢰'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주로 사용된 러시아제 대인지뢰 PFM-1형의 다른 이름이다. 겉모습은 나비처럼 아름답게 생겼지만, 가지고 놀다보면 어느 순간에 폭발하여 손발과 눈을 앗아가는 끔찍한 무기이다. 장난감처럼 생긴 외양 탓에 특히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나비지뢰'는, 처음부터 미래의 군인이 될 아이들을 겨냥해서 만든 잔인한 무기다.

그런데 이처럼 잔인한 나비지뢰도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나비지뢰에 의해 두 팔이 잘려나가고 두 눈이 희생된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은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한 집념으로 자신들의 삶을 헤쳐나간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슴에 '지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랑을 품고 평생을 살아온 준영, '나비'처럼 화려한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던지는 미나,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수진이다.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랑이야기는 '지뢰'처럼 아픈 사랑을 '나비'처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삶에 대한 잠언과 사랑의 메시지를 말한다

<나비지뢰>는 일회용 사랑과 조건부 사랑이 흔한 요즘, 새로운 사랑의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쟁취하고 싶은 소유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은 무척 신선하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아낌없이 내던지는 준영과, 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수진의 사랑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사랑을 해봤으면 하고 꿈같은 그런 순수한 사랑인 것이다.

긴장감 넘치는 납치 장면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속도감 있는 전개방식으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소설 중간 중간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시적 문구와 사랑과 삶에 대한 잠언과 메시지는 읽는 이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단비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정하 시인의 글 솜씨가 너무나 매끄럽고 흡인력이 있어서 밤 시간이 물고기처럼 빨리 지나갔다.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처럼 눈이 내리는 겨울에 읽으면 좋을 소설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 뉴스에도 보내집니다.


나비지뢰

이정하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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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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