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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 KBS의 미혼남녀 맞선 프로그램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는 특집으로 ‘골드 미스 스페셜’편을 방송했다. 이들이 공개한 이상형은 ‘육아휴직을 해서 함께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남성’ ‘아내가 쇼핑할 때 즐겁게 따라다닐 수 있는 남성’ ‘재태크, 금전문제에 능한 남성’ 등이었다.
지난해 추석 KBS의 미혼남녀 맞선 프로그램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는 특집으로 ‘골드 미스 스페셜’편을 방송했다. 이들이 공개한 이상형은 ‘육아휴직을 해서 함께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남성’ ‘아내가 쇼핑할 때 즐겁게 따라다닐 수 있는 남성’ ‘재태크, 금전문제에 능한 남성’ 등이었다. ⓒ 여성신문

ⓒ 여성신문 정대웅기자
[김지희 기자] 속칭 '올드 미스' 취급을 받던 30대 커리어우먼들이 '골드 미스'로 불리며 대접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주로 결혼정보업체에서 통용되던 골드 미스(Gold Miss)는 탄탄한 직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신생활을 즐기며 자기계발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 30대 싱글 여성을 지칭한다.

이들은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해 출산, 육아와 내조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에 관한 틀을 깨고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골드 미스가 여성시장을 겨냥한 기업들의 마케팅이 만들어낸 신조어인 만큼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매스컴이나 대중문화에서 접하는 골드 미스는 아직 평범한 직장여성들의 일상까지 파고들지는 못한 상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신의 삶도 즐기는 골드 미스가 되려면 그만큼 갖춰야 할 조건이 까다로운 탓이다.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30대 중·후반 커리어우먼들은 골드 미스란 호칭에 긍정적이지만, 20대 후반의 싱글 여성들은 현실적인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광고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정윤희(36)과장은 '골드 미스'란 호칭을 "일을 즐기고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 나이에 떼밀려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여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 과장의 라이프 스타일은 요즘 주목받는 골드 미스의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그는 자기계발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으며 특히 건강관리에 신경을 쓴다. 헬스와 골프 등 꾸준한 운동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받는 전신마사지로 스트레스를 풀고 주말 휴가를 이용, 근교의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해외여행을 즐긴다. 필이 꽂힌 뮤지컬, 공연 등은 비싸더라도 꼭 좋은 자리에서 본다.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해 회사 근처로 독립해 나왔고 주변의 커리어우먼들도 비슷한 이유로 싱글족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민훈 연구원은 "골드 미스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개입됐지만 1인 가구의 증가, 30대 싱글 직장인 여성들이 중요한 소비집단으로 등장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득과 소비의 잣대로만 골드 미스를 정의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인위적인 구분"이라며 "일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직업상의 특징을 무시한 획일적인 조건보다는 그들의 자부심과 사회적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골드 미스는 구매력이 높고 최신 패션과 유행에 민감해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지만 뛰어난 정보력도 함께 갖고 있어 합리적 소비를 한다는 것. 평소엔 알뜰한 성향을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문화 향유에는 과감하다.

여성들의 건강 요가 붐을 일으키며 주목받았던 원정혜(호원대 요가학과) 교수는 "골드 미스가 여성들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듯해 거부감이 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골드 미스들이 현재의 사회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성실하게 자신을 갈고 닦는 점은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앙대 사회학과 김경희 교수는 "골드 미스는 마케팅 대상으로 전락할 요소가 많고 저출산 분위기에 일조한다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골드 미스붐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10∼20대 여성들에게 사회적 통념이 아닌 여성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도 제공한다"며 긍정적인 골드 미스상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골드미스 명암] 조건도 '골드'... 이상과 현실엔 괴리감
'다양한 삶' 매력...경제적 요소 크게 작용

2030 여성들의 70%는 골드 미스를 꿈꾸고 있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www.saramin.co.kr)이 20∼30대 여성 직장인 92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가 "골드 미스로 살아갈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자신이 골드 미스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설문에는 15.3%만이 '그렇다'고 응답, 현실과 이상간 괴리를 드러냈다.

골드 미스의 조건으론 직업(고소득 사무직, 전문직), 연봉, 개인 보유자산, 취미생활, 자유로운 연애, 결혼관 등의 순으로 응답해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골드 미스 탄생 배경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성취 욕구가 강해져서’를 첫 번째로 꼽았다. ‘골드 미스’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다양한 삶 인정’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남성 직장인들의 경우 ‘출산율 저하’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직장인의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부정적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골드 미스’ 붐이 “10년 전 유행한 ‘미시족’ 개념이 업그레이드된 형태”라고 지적한다. 둘 다 마케팅 전략이 낳은 신조어이며 결혼한 주부에서 직장을 가진 미혼 여성으로 그 대상이 바뀐 게 다를 뿐이라는 것.

김 소장은 “현실적으로 소수인 ‘골드 미스’층을 이상형으로 부각시켜 그 대열에 끼지 못하는 여성들까지 소구(마케팅의 공략대상)하려는 마케팅 측면이 강해 사회 양극화 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고 진단한다.

한편, 결혼정보업체들은 90년대 말부터 업계 내부적으로 ‘하이 미스’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요즘의 ‘골드 미스’와 유사한 개념으로 학력, 소득 등 높은 프로필을 가진 30대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조정연 팀장은 ‘골드 미스’의 조건으로 대졸 이상, 34∼37세, 연봉 3500만원 이상 혹은 비슷한 수준의 현금자산 보유, 전문직이나 고소득 사무직종을 꼽았다.

‘골드 미스’들은 본인들의 프로필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결혼관도 상당히 신중한 편. 이에 비해 ‘골드 미스’의 프로필에 대한 남성들의 호감도는 높지만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하다. ‘골드 미스’들도 나이와 결혼에 관한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30대 '골드미스터'가 보는 골드 미스는?
'골드 미스'에 대한 잘못된 오해

'골드미스'. 높은 소득과 전문적인 직업,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인 능력도 겸비한 잘 나가는 30대 이상의 여성.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좋고 싫은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옷이나 화장품의 경우에는 제품 자체뿐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확실한 것 같다.

패션 트렌드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자신이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이나 부동산에도 관심이 높다. 이들의 소비 패턴은 많은 마케터들의 표적이 되는 듯하다. 비슷한 연령층을 공략하는 업계는 골드미스에 대한 저마다의 분석과 공략법을 내놓는다.

내가 속해 있는 방송업계에서도 골드미스를 타깃 혹은 소재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욕구가 웰빙이라는 또 하나의 시류와 버무려져 제작되고 있다. 인테리어와 요리 정보 프로그램들이 과거 주부들을 공략하는 제작물이었다면 최근엔 골드미스들을 공략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변모하고 있다.

과거 요리 프로그램이 레시피(조리법)를 알려주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해당 요리의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그 요리를 잘하는 집을 알려준다. 직접 요리를 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리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향한 정보가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정보 선별의 기준에는 골드미스가 있다.

사실 시청자로서의 골드미스들은 공략하기 어려운 타깃이다. 나이만큼이나 다양한 관심과 문제들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여성의 가지고 있는 시청호감을 가지고 접근하기도 힘들고, 시청만족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 또 비슷한 연령대 아줌마(?)들의 시청호감에서도 접근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골드미스로서의 '코드'가 드러나는 프로그램과 편성을 원한다.

골드미스를 차별화 된, 혹은 독특한 소수의 집단으로 해석하면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현상이지 어떤 이해를 가진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이 군대를 이유로 2∼3년 정도 늦게 사회에 진출하다 보니 사회에 첫발은 내디딘 여성들은 속칭 아저씨들과 마주하게 마련이고, 입사 동기라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2∼3살 많은 오빠가 아니던가.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혼기를 놓치게 된 것일 테다.

어제 골드미스와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은 이 원고 때문에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시집은 안 갈 거냐고….

막막한 대답만 한다. "동갑의 남자는 자신보다 어린 것 같고, 연하의 남자는 보살펴줘야 할 것 같아서 은근 부담스럽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서는 호감을 느끼지 못하겠다"(서른 여덟의 이 여자는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근무 중이고 그녀의 회사는 내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의 주요한 스폰서였다)

혼자 사는 거 외롭지는 않으냐고 물었더니 "외롭"단다. 근데 결혼한다고 외로움이 해결되는 건 아니란다. 골드미스의 결혼이 훨씬 어렵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경제적 능력과 나이가 결혼을 더 어렵게 한다는 논조의 기사였다. 그건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논리다. 결혼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지 외롭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행복은 나이와는 별 관계가 없는 수치인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이외수 시의 한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 하정석 CJ 미디어 전략기획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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