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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후 살해된 아동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놈목소리’는 영구 미제 사건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지독한 고통을 남기는지를 극명히 보여줌으로써 공소시효 폐지운동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유괴 후 살해된 아동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놈목소리’는 영구 미제 사건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지독한 고통을 남기는지를 극명히 보여줌으로써 공소시효 폐지운동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 영화사 ‘집’ 제공
[홍지영 기자] 아동·청소년·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유괴·살인·강간 등의 극악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자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월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 고 이형호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그놈 목소리> 개봉과 함께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는 것.

실제로 S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엔조이>가 지난달 2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74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1%가 '공소시효는 폐지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공시시효 폐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논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과 10회에 걸쳐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경우에도 공소시효가 각각 만료된 지난해 3월과 4월 관련 시민단체가 나서 공소시효를 연장해 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인 결과 1만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하는 등 여론몰이에 적극 나섰지만 차츰 관심이 사그라졌다.

이에 앞서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2005년 8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2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그 해 말 사학법 파동으로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에 빠지면서 개정안은 2년째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에서 공소시효는 살인의 경우 15년, 성범죄의 경우 7년에 불과하다. 현재 독일은 30년이고, 미국의 경우 주마다 달라 특정 사안에 따라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주도 있다.

이웅호 경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법적 안전성' 때문에 살인죄에 관해서 15년의 공소시효를 인정하고 있지만,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고 동시에 잠재적 범죄군에 대한 예방효과를 얻기 위해선 적어도 이제는 공소시효 연장이나 배제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거 멸실의 우려로 인해 공소시효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DNA 분석이나 목격자 진술, CCTV 기록을 분석하는 등 수사기법이 날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이는 설득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소시효 폐지 여론과 관련, 지난달 2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제출한 개정안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 만 24세까지 공소시효를 정지시켜 피해자가 만 32세까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언제든 요구할 수 있도록 했으나,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법무부가 이를 반대해 누락됨으로써 논란이 일고 있는 것.

법무부 관계자는 "공소시효는 어디까지나 형사법에서 규율할 사항이며, 공소시효 정지에 대해 예외적 사유를 두는 것은 일반 형사범죄와의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7년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위헌'이라며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낸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미경 소장은 "김부남 사건처럼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를 입고 한참 후에나 사실을 인지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막상 대응을 하려고 하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리는 사례가 상당수다. 특히 미성년 피해자 중 13세 미만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공소시효 연장이나 배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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