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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경기도 화성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경기지역 기초의원 연수회 입소식에 참석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박근혜 전대표에 이어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무등산 증심사. 광주, 오월의 숨결이 듬뿍 담긴 곳입니다. 그곳을 한나라당의 대선 예비후보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찾았습니다. 손 전 지사는 무람없이 말했습니다.

"그동안 꿋꿋하게 지켜온 한나라당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른바 '범여권'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손학규 후보' 움직임에 선을 긋는 발언이 명백합니다. 손 전 지사는 덧붙였습니다. "내가 한나라당을 지켜온 주인이고, 내 위치에서 그동안 꿋꿋하게 지켜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더는 손학규를 욕보일 때가 아닙니다. 손 전 지사의 표현을 빌리면, 한나라당을 욕보일 때가 아닙니다. 1980년 오월의 핏빛 항쟁이 새겨진 무등산에서 "한나라당을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정치인 손학규의 발언에 치솟는 울뚝밸도 찬찬히 삭일 때입니다.

기실 '범여권 후보론'이 나온 것은 오래 전입니다. 제가 '범여권후보 손학규'를 처음 들은 것도 어느새 1년 전입니다. 민중운동의 한 부문에서 활동해온 50대 지식인이 술자리 담화로 진지하게 제기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아무개, 민주노동당의 아무개가 한나라당의 손학규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당혹스러워습니다. 다만 그 말을 한 분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얼마나 앞이 보이지 않으면 저럴까 싶었습니다. 그 분의 설명으로 한나라당 정치인 손학규에 대한 비판적 눈길이 조금은 흐려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 손 전 지사도 그 무렵에 범여권 후보 움직임을 알고 있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전국 곳곳의 민심기행을 다녀왔다는 그가 북미 핵문제에 대해 내놓은 발언은 한나라당의 당론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연말에 또 다른 지식인이 손학규 범여권 후보론을 거론하기에, 정중히 반론을 폈습니다. 그때 저는 다음과 같은 재반론을 들었습니다.

한나라당 꿋꿋이 지켜온 손학규 전 지사가 여권 후보라니

"손학규가 한나라당에 오래 있어 그런거죠. 아마 범여권후보가 되면 본래의 자기 생각을 되찾을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치인의 소신이라는 게 그렇게 달라져도 괜찮을까요? 보십시오. 손학규 예비후보는 한나라당을 꿋꿋하게 지켜왔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그는 한나라당이 수구정당, 지역정당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은 합니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욱 묻고 싶습니다. 대체 '개혁적 정치학 교수'였던 손학규는 한나라당을 어떻게 지켜왔기에 무등산에 올라 "꿋꿋하다"고 자부하는 걸까요?

열린우리당이 어떤 시도를 하든 자유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꿋꿋이 지켜왔다고 '자랑'하고, 범여권후보론이 나온 지 1년이 지나도록 한나라당 후보가 되는 길만을 찾는 정치인을 과연 '개혁적 정치인'으로 생각해도 좋을까요?

딴은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대연정을 제의했던 노무현 정권의 깜냥에 비추어본다면 그러고도 남을 일이 아니던가요? 정반대의 논리이지만 수구신문조차 '범여권후보'를 한나라당에서 빼오려는 행태를 한껏 조롱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명토박아 둡니다. '범여권후보'나 '단일후보'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떤 정치적 원칙에서 '범여권'인지가 중요합니다. 한나라당 노선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는 정치인이나 '예비 정치인'들을 언죽번죽 범여권 후보로 내세우려는 것은 민주시민에 대한 기만입니다. 모양만 다를 뿐, 대연정 제의의 재판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입니다만, 유권자인 국민은 대통령 선거에서 여러 정치노선을 비교해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무런 정책적 차이도 없이 '범여권'을 들먹일 때, 무등산에서 '한나라당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발언을 또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민주시민을 더는 우롱하지 말기를, 아니 더는 욕보이지 않기를 제안합니다.

태그:#손학규, #박근혜, #범여권, #단일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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