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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보림
지난 1월 23일, 오전에 하던 토론을 오후에 하기로 하고 1학년 필독서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를 준비했다. 번역한 책만 하다가 모처럼 우리 창작 동화라 몸에 맞은 옷을 입은 듯 편안했다.

김향금이 쓰고 이혜리가 그렸으며 출판사는 보림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주최한 제 16회 한국 어린이 도서상 기획, 편집 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글쓴이의 약력을 볼 때 전공을 살펴보면 책 내용이 이해가 더 잘 된다.

김향금은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지리학을,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책 내용이 탈 이야긴데, 저학년 아이들이 읽고 받아들이기에 어려움 없이 표현해 놓았고, 운율이 있어 노래라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혜리는 그림을 만화처럼 잘 표현해 놓았다. 글이 없는 상태에서 그림만으로도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표정들이 어찌나 풍부하고 웃긴지 아이들이 웃음보를 많이 터트렸다.

번역 책은 지은이를 이해하기 위해 태어난 나라를 찾아보고,(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도 있고 옮긴이가 왜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책은 어떤 사람이 지었는지를 알기 위해 약력을 살펴본다. 아이들에게 지은이와 그린이의 학교는 성적순이 아니라, <까만 아기 양>을 지은 엘리자베스 쇼의 나라와 출생한 도시 이름 같은 것이다.

토론을 위해 준비한 물품은,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 책 한권, <천자문>, 녹음기, 줄 없는 종이, 사진기, 고무찰흙이다. 신문지 죽을 만들어 바가지를 이용해서 진짜 탈을 만들어 볼까 했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해 책에 집중하기로 하고 고무찰흙(문방구에서 400원 주고 샀다)으로 대신했다.

책 내용이 쉬웠는지 쓰기시간은 25분 걸렸다. 발표순서는 야무진이, 밤톨이, 아리따운 순이다. 너무 급하게 읽지 말고,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읽기, 써 놓은 글만 읽기, 배에 힘주고 읽기, 친구 읽을 때 딴 짓 말고 잘 듣기가 규칙인데, 셋 다 아주 잘 했다.

야무진이: 속도조절까지 해 가며 듣는 사람이 아주 잘 들을 수 있도록 읽었고 내용정리도 잘 했다.

밤톨이: 유치가 세 개나 빠졌고 입술에 상처가 나서 읽기가 힘든 상황이다. 글씨를 줄 맞춰 쓰지 못했다. 윗줄과 아랫줄 내용 연결에서 멈칫하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또랑또랑 잘 읽었다. 책을 거의 다 옮긴 수준의 정리지만 내용도 좋았다.

아리따운이: 목소리가 점 점 기어들어가서 문장 끝 부분은 속삭임이 되곤 했으나,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세기로 잘 읽었다. 평소 손톱이나 스웨터 소매를 입으로 가져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바른 자세로 아주 잘 읽었다.

책 내용정리나 발표를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자세가 모두들 처음보다 좋아져서 진행하는 엄마는 마음이 아주 뿌듯했다. 서로들 발표 내용을 들으며 자신이 빼 놓은 부분을 말 하는 것과, 너무 장황한 묘사를 단순하게 한 낱말로 정리하는 것을 들으며 배우기도 한다. 우연히 모였는데 세 친구가 환상의 콤비다.

주인공 건이네 부모는 맞벌이다. 부모님은 너무너무 바빠서 건이를 외갓집에 한 달 동안 맡겼다. 그러나 온다던 부모님은 안 오고, 건이는 속상함을 심술로 표현했다. 장독도 깨놓고, 빨래에 낙서도 하고 강아지 귀에 양말도 씌워 놓는다.

혼날까봐 겁이 나 다락방에 숨는데 탈을 발견하곤 역할놀이를 한다. 실컷 놀고 난 다음 나가고 싶은 건이를 불러 주는 할머니의 손자사랑. 눈물 한 방울 눈가에 달고 살며시 다락문을 열고 보니 가족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의성어, 의태어가 가득하고, 얼굴표정들이 익살맞아서 계속 웃으며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등장하는 사물이 옛날 것 들이라 하나하나 설명이 필요하다.

엄마 흉내내는 건이의 각시탈과 밤톨이가 만든 고무찰흙 각시탈
엄마 흉내내는 건이의 각시탈과 밤톨이가 만든 고무찰흙 각시탈 ⓒ 정민숙
바빠서 전화를 하는 첫 장면, 아빠와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를 한다.

밤톨이: “아빠는 식빵을 먹으며 전화를 받아요. 아니 다리미질을 해요." (빨간색 다리미가 전화처럼도 보인다.)
아리따운이: “다리미질을 하면서 먹어요.”
야무진이: “와! 다리미질을 하다니. 이 아빠는 대개 착하네요.”
아이들: “엄마는 전화를 하면서 요리를 하고 한 손으로는 건이 머리도 빗겨줘요.”

이렇게 바쁜 상황에서 하는 전화목소리는 어떤지 각자 엄마가 되어 읽어보았다. “저희가 요즘 너무너무 바빠요. 한 달만 우리 건이 좀 맡아 주세요.” 그런데 모두들 너무 얌전하고 여유 많은 엄마다. 직장 다니며 이런 상황에 처해 보았던 엄마가 실감나게 읽어주었다. 전쟁 같은 아침시간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건이가 심술부린 내용에선 그림을 말로 표현 해 보았다. 그림 속에서 딱 한 가지만 건이 심술을 피해간 것이 있다. 그 것은 바로 흰 바탕에 원색의 동물 그림이 그려진 호화찬란한 팬티다.

엄마: “이 팬티는 누구 것일까?”
밤톨이, 아리따운이: “건이 것.”
야무진이: “건이가 이런 것을 입겠나? 여자 것 같은데.”
엄마:“그렇다고 할머니 팬티가 이렇게 작겠나?”
아이들: “와하하하.”

(앞 쪽 그림을 잘 보면 등장인물들 틈에 작게 건이 옷들이 그려져 있고, 그 팬티는 다소곳하니 등장해 있는데 아이들은 그 그림이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 “건이 팬틴데, 왜 팬티에만 낙서가 없을까?”
야무진이: “너무 높아서요.”
야무진이가 야무지게 대답을 한다.

다락방에 숨으려고 하는 건이 옆에는 이 집에 탈이 왜 있는지를 알려주는 그림이 있다.

엄마: “건이 외할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밤톨이: “ 탈을 만들어요. 액자 속 사진에 할아버지가 탈에 색칠을 하고 있고, 벽에 여러 가지 탈이 걸려 있어요.”
야무진이: “우리 외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얼굴을 몰라요.”
밤톨이: “나도 그래.”
(티 없이 맑은 아이들. 잠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정사를 말하느라 이야기가 산으로 올라간다.)

다락방에는 잡동사니들이 탈과 함께 있는데 책 뒤표지에는 이것들이 건이와 함께 그려져 있다. 멍석, 장구, 꿀단지, 조청 병을 물어 보았다.

밤톨이: “장구, 항아리. 장판.(멍석을 장판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판이라니..)
아이들: “장구, 항아리, 요강..”

이 때 액자소설처럼 엄마는 잠시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물건을 접하지 못하니 이미 읽은 옛날이야기를 빌려 온다.

엄마: “장판? 장판처럼 생겼지만 멍석이라고 해. <팥죽할머니와 호랑이>에서 이 멍석이 마당에 누워 있다가 호랑이를 또르르 말아서 지게에 올라 탄 다음 강물에 풍덩 빠트리잖아.”
아이들: “아! 맞다. 멍석이구나.”
엄마: “그리고 항아리도 맞지만 꿀을 넣어 두는 꿀단지야. 기다란 병은 옛날, 떡에 찍어 먹던 조청이 들어있는 병이고.”
밤톨이: “곰돌이 푸가 좋아하는 꿀단지랑 닮았네.”

아리따운이가 만든 고무찰흙 소탈
아리따운이가 만든 고무찰흙 소탈 ⓒ 정민숙
이제 민속 박물관에 가면 멍석을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건이는 각종 탈을 써 보면서 그 탈에 어울리는 놀이를 한다. (네눈박이탈(방상씨탈), 소탈, 하회 양반탈, 말뚝이탈, 각시탈, 미얄탈(할미탈)) 양반탈을 표현한 부분에선 모두 같이 읽었다.

아이들: “활짝 웃는 실눈은 움푹, 둥그런 주먹코는 불쑥, 턱은 덜컥덜컥 제멋대로 움직였지요.”
엄마: “모두 잘 읽었는데 ‘덜걱덜걱’을 ‘덜컥덜컥’으로, ‘움직였지.’인데 ‘움직였지요.’라고 ‘요’자를 붙였어. 글을 읽을 때는 써 있는 그대로 읽어봅시다.”

건이는 양반탈을 쓰고 한자 네 글자가 나와 있는 책을 펼치고 읽는다.

엄마: “건이가 읽고 있는 이 글자는 어떻게 읽지?”
아이들: “하늘 천, 땅 지...몰라요.”
엄마:(천자문 책 첫 부분을 보여주며) “천지현황 우주홍황이라고 읽어. 잘 보면 이 책에 나온 글자랑 똑같지? 이 책은 천자문이야.“
아이들: “아! 우주! 천자문!” (밤톨이가 아침 6시에 일어나 천자문을 읽은 적이 있다. 작심삼일이었으나 자신이 읽은 책이라는 것을 알자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책 속 주인공과 자신에게 교집합 같은 부분이 생기면 아이들은 행복해 한다.)

다음에는 말뚝이 탈이다. 이혜리는 ‘중요무형문화재인 동래 들놀음의 말뚝이 탈’을 바탕으로 어린이들 실물 얼굴 크기의 말뚝이 탈을 그려 책 속 부록으로 만들어 놓았다. 모두들 자기 책에 붙어있던 말뚝이 탈을 쓰고, 사진 한 방 찍고, 말뚝이처럼 읽어보았다.(말뚝이를 부르는 나리님들을 보곤 모두들 “어디서 많이 본 얼굴들이에요”라고 한다. 그림을 잘 보면 그 얼굴들이 왜 낯익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알려주지 않았다. 다음에 또 읽을 때 발견하라고 아껴두었다)

아이들: “아! 말뚝이라면 말뚝이, 꼴뚜기, 밭 가운데 쇠뜨기, 잔디밭에 메뚜기, 부러진 다리 절뚝이! 그 중에서 누구를 부르십니까요?”

이 짧은 글을 읽는데도 말뚝이는 세 가지색 말뚝이가 된다. 아리따운 말뚝이(공주처럼 아리땁게 생긴 아리따운이는 말도 그렇게 한다.), 똑똑한 말뚝이, 발음 새는 말뚝이. 세 가지 색이 섞여 아이들 글 읽는 소리는 화음 좋은 합창이 된다.

이제 자기를 찾아주길 바라는 건이 눈에는 눈물 한 방울이 달린다. 건이를 둘러 싼 사물들 눈에도 눈물 한 방울씩이 달리는데 그 중 두 가지는 좀 다른 얼굴이다.

밤톨이: “엄마 얘는 눈물이 없는데 모아이석상같이 생겼어.(<박물관이 살아있다> 영화를 보았음.)
아이들: “할미탈도 눈물 없어요.”
엄마: “얼굴을 잘 봐. 할미탈은 걱정하는 얼굴이고, 모아이 석상 같은 네눈박이 탈은 근심하는 얼굴이잖아.” (걱정과 근심이라는 낱말의 어감을 잘 모르겠다는 듯 아이들 얼굴이 갸우뚱해진다)
엄마: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부끄럽잖아. 숨었는데 밖에서 한 번 부른다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그래서 어른들은 모른 척하고, 못 본 척하고, 못 들은 척 하고, 한 번씩 더 불러 주는 거래.”

밤톨이가 만든 고무찰흙 각시탈
밤톨이가 만든 고무찰흙 각시탈 ⓒ 정민숙
정리시간. 아이들은 이 책을 아주 재미있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림도 잘 그렸고, 탈 종류도 알게 되었으며, 쇠뜨기도 알게 되었다. 또 토론을 하니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방학숙제에 도움이 되었으며, 친구들과도 더 친해졌다.

2시간을 넘게 했는데도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끝난 다음에는 고무찰흙으로 책에 나오는 탈을 만들어보았다. 야무진이는 그냥 집에 갔고, 밤톨이는 각시탈을, 아리따운이는 소탈을 만들었다. 스스로들 잘 만들었는지 으쓱해 하기에 손바닥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밤톨이는 그 후 손님이 올 때 마다 고무찰흙 각시탈과 책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 속에는 제목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모두 몇 번 나오는지 세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 책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책이다. 아이들 눈으로 보면 더 재미있다.

덧붙이는 글 |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 김향금 글/ 이혜리 그림/
보림 출판사/ 8500원


아무도 모를거야, 내가 누군지 - 개정판

김향금 지음, 이혜리 그림, 보림(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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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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