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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시절, 생각이 많은 아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생각이 많은 아들 ⓒ 박명순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아들애가 다니던 학교가 토요휴업일 실시 1년을 앞두고, 휴일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사전 관리하는 차원에서, '체험학습 보고서' 도내 시범학교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 지도 상황을 보여줄 결과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학교는 서둘러 300쪽에 달하는 보고서 양식이 인쇄된 두꺼운 노트를 전 학년에 지급하였다.

그 노트의 빈칸을 다 채우려면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도 태부족일 듯싶었다. 처음 몇 번은 짬을 내어 가까운 곳에 데리고 다녔다. 다녀온 '보고서'를 잘 쓰고 있는지, 간혹 노트를 들여다보니 저 나름대로 성의껏 작성한 게 보였다.

그런데 도교육청 관계자 시찰 날짜가 다가오자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아이들 집만 골라서 전화를 걸어 부모의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집들은 거의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긴가.

"선생님, OO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다 채우지 못한 것은 아이 잘못이 아니라 저희가 시간이 없어 데리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차마 다녀오지도 않은 곳을 인터넷을 뒤져 거짓으로 꾸밀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번 체험 학습 보고서는 아이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OO는 글씨도 엉성해서 아주 성의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아주 잠시 마음에 분심이 일었다. 곧, 분기를 잠재우고 다시 내 말을 이어 나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이 역시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무성의 해 보이시겠지만, 그 아이로선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제가 도와줄 수 있으나 그건 제 작품이지 아이 것이 아니며 또한 교육의 목적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해 그냥 제출하게 했습니다만."

대화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어두운 거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가. 내 아들애한테 미운털이 박히는 것은 아닐까. 할 말을 다했다는 후련함 뒤에 오는 이 찝찝한 불안감은 무엇인가. 참, 속물이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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