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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동 외국인촌의 한산한 중심가
원곡동 외국인촌의 한산한 중심가 ⓒ 권처광
외인촌(外人村) 원곡동은 어떤 곳?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 도착 지하도 통해 길을 건너 나오면 첫 눈에 중국어와 아랍어, 베트남어로 된 간판들이 방문객을 맞이해 마치 동남아를 여행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이국적인 모습이다.

이곳이 한국 안에 작은 아시아,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외인촌. 일명 '국경 없는 마을'이 시작되는 곳이다.

현재 안산의 대표적 외국인 집단 거주지로 원곡 1동사무소를 중심으로 형성돼있는‘국경 없는 마을’에는 거주 주민의 80% 이상이 동남아시아 등 2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다.

한때 20개국 4만여 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었으나 국내 경기침체와 정부의 강력한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점차 줄어 현재는 1만 5천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 중 약 80% 가량이 인근 반월과 시화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일부는 자국인들을 상대로 사채나 노래방, 식료품점을 직접 운영하기도 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외국인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곡동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H씨는“안산 중심가만큼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특별히 갈데없는 외국인들이 노래방, 술집 등을 많이 찾아 그나마 장사가 되는 동네다”라며“원곡동은 외국인들 없으면 문 닫을 가게가 상당수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일부에서는 외국인들이 원곡동 가게 주인들을 먹여 살린다는 공공연한 말이 나돌 정도로 이들이 원곡동 일대의 상권 활성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사건 이후 꼭꼭 숨은 외국인들

“여기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정식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 사람들이 마다하는 힘든 일을 열심히 일 할 뿐인데 왜 우리를 죄인 취급하나요?”

엽기적인 사건을 놓고 애꿎은 외국노동자들이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는 한 외국인 노동자의 푸념석인 말이다. 그러나 이번 안산역 엽기 살인사건의 여파로 원곡동은 그야말로 외국인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썰렁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4일 째인 28일, 평소 같으면 주말을 맞은 외국인들로 북적대던 안산역과 원곡동 일대는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몇몇 무리의 외국인들이 간간이 보일뿐 무척 한산했다.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J모씨는“사건 후 가게를 찾는 외국인들이 평소의 20%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며“꼭 필요한 볼일 외에는 집 밖 출입을 상당히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은“하루에도 몇 번씩 형사들이 가게로 찾아오고 조만간 불법취업자 단속이 대대적으로 있을 거라는 소문까지 돌면서 불법취업 외국인은 물론 합법적으로 취업한 외국인들마저도 상당히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말해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분위기로 사건 이후 잦은 검문 등으로 생활에 상당한 불편과 함께 급기야 이들을 기피하는 가게까지 생겨 상당수 외국인들이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한국에 온지 6년째라는 비○쉬(31·방글라데시)씨는“얼마 전에는 술에 취한 아저씨가 우리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자가 많은데 일자리를 빼앗더니 이제는 사고까지 친다”며 “당장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시비를 걸어와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쌓여왔던 외국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과의 좋지 않은 감정의 골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이 더 깊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외국인촌 중심상가, 멀리 경찰 원곡 지구대가 보인다
외국인촌 중심상가, 멀리 경찰 원곡 지구대가 보인다 ⓒ 권처광
허술한 외국인 관리가 부른 참사

사건 직후 각종 언론 매체들이 경쟁하듯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안산시청과 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치안강화와 외국인 관리대책을 요구하는 글이 수 없이 올라오는 등 충격적 살인소식에 시민들은 일종의 패닉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글을 통해‘불안해서 못살겠다. 외국인들을 당장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입장과‘어쩔 수 없이 외국인들과 공생해야 한다면 철저한 관리 감독을 통해 그들을 우리 제도권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두 가지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 시민은“가뜩이나 안산하면 외부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외국인 관련 범죄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어 안산시민으로서 상당한 불쾌감과 불안감을 느낀다”며 “어떠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지경까지 온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치안을 담당한 경찰 입장은 현 외국인 관리 제도로는 날로 늘어나는 외국인 범죄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외국인 관련사건이 발생할 경우 피의자 신병확보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는 지문과 사진 등이 전혀 구축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법무부는 지난 2004년 출입국관리법 개정에 따라 그동안 1년 이상 체류하는 20세 이상 등록 외국인을 상대로 시행했던 지문 찍기를 전면폐지하고 일부 범법 외국인과 신원이 불확실한 외국인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지문 날인을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피의자가 외국인일 경우 특히 불법 체류자일 경우 목격자나 제보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겪이라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CCTV에 찍힌 피의자의 모습과 이를 토대로 그려진 몽타주 그리고 역무원의 진술만으로는 피의자의 신원을 밝히는 것조차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동일한 사건의 피의자가 만약 내국인이었다면 신병확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피의자가 외국인일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라며 수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내외적으로 인권 침해 논란을 잠재우고 외국인 지문 채취법 개정이 국회를 통과해 당장 올 가을부터 일본을 방문하는 16세 이상의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지문날인과 사진촬영을 의무화 할 계획이다.

시민 조모(43·원곡동)씨는“인권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 같은 허술한 외국인 관리제도로는 시민들이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국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제도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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