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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안당
청바지에 로퍼를 신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모카무스를 티스푼으로 떠먹는 예수를 뉴욕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상당히 유쾌하지 않은가?

당신이 무신론자여도 좋고 어느 다른 종교를 가졌어도 아무 상관없다. 만일 예수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실제로 만날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그를 만나려 할 것이고, 특종을 노리는 당신 역시 그 중 한 사람이 분명할 테니까.

2000년 전의 예수를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모습의 그를 만나고 싶은가?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눈부신 금발에 호수처럼 깊고 파란 눈을 지니고 빛나는 세마포를 걸쳐, 눈길을 마주치기조차 두려운 존재인 신의 아들 예수인가, 아니면 편안하고 따뜻하며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 예수인가?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사는 뉴욕의 한 신문 기자 조셉이 이메일로 예수와 만날 약속을 하고 한 호텔에서 예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된다는 기지 넘치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단서는 요한 계시록 3장 20절 성경 한 구절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요한 계시록 3장 20절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Revelation3:20

Voici:Je me tiens a la porte et le frappe.
Si quelqu'un entend ma voix et ouvre la porte,
l'entrerai chez lui et lui avec moi.
-Apocalypse 3:20


반신반의하며 뭐에 홀린 듯 성경을 읽다가 마음의 문을 연 순간, 조셉은 예수로부터 만날 날짜와 시간, 장소를 이메일로 받게 된다. 약간 곱슬곱슬 거리는 검은 머리, 청바지에 남방을 입은 평범한 뉴욕커의 모습으로 조셉 앞에 나타난 예수. 예수는 우리가 흔히 보는 보통 남자의 모습으로 조셉이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모카 케이크를 스푼으로 떠먹는다.

@BRI@실제로 지구촌 가장 중심부인 뉴욕에 예수가 나타났다면 솔기가 없는 통으로 짠 흰 세마포에 샌들 차림이 아닌,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청바지에 남방을 입은 경쾌한 모습이었을 법하다. 그런 예수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예수가 당신의 친구처럼 친근하고 유쾌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동하는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누구든지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손을 떼게 될 만큼 책은 흥미진진하다. 사실 2000년 전 유대땅 베들레헴(떡집 이라는 의미)의 한 말구유에서 탄생한 신의 아들 예수 역시 결코 특별한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의 속국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왕을 기다렸던 성경에 능통했던 바리사이파 성경학자들과 사두개파의 서기관들과 지도자들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초라하게 탄생한 예수가 왕으로 온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를 구세주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고집스럽게 선민인 자기들의 해방자로 올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고 쇠락한 다윗의 혈통, 가난한 천민들이 모여 살던 나사렛이란 어촌 마을에서 목수 일을 하던 요셉의 아들로 세상에 온 신의 아들을 알아본 사람들은 멀리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처럼 이방인이거나 천대받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예수가 이 땅에 온다고 해도 아마 똑같은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예수는 여전히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소외받는 자들의 친구로, 가장 평범한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만나려 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만나주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속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구분되는 BC(Before Christ 주 탄생 전)와 AD(Anno Domini 주의 해), 이스라엘 역사에 남은 제자들의 기록 등으로 예수의 탄생과 생애 자체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길 원했던 예수가 이 땅에 온 지 2000년이 지난 지금, 예수를 너무 먼 신의 영역에 홀로 고립시켜 놓았다. 그것은 참된 사랑을 나누려 죽음의 고통을 불사하고 인간 예수로 오셔서 죄를 대속한 예수의 뜻이 결코 아니다. 인간들의 오해 때문에 예수는 2천년이란 긴 세월동안 언제나 문 밖에서 춥고 외롭게 인간들이 문을 열고 초대해 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예수는 인간을 가장 사랑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인격적인 신이며 인간 스스로 다가오는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기에.

이 책은 많은 비기독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들, 과학과 논리를 신봉하는 현대인들이 궁금해 하는 선악과 부활, 창조와 진화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청바지를 입은 현대판 예수의 입을 빌어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당신이 이 책을 덮을 때쯤 어느덧 당신은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 예수와 친구가 되어 그와의 다음 만남을 계획하게 될 런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나관호 지음/성안당/9,800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나관호 지음, 성안당(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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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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