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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고전 재 번역 운동에 발 벗고 나선 재야 사상가 묵점 기세춘씨가 <장자>를 새롭게 완역해 책으로 펴냈다. 지난 25일 기세춘씨를 만나 이번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세춘씨는 "<장자>는 한국사회에서 유교의 시조 공자의 어록인 논어보다 더 많이 선호되고 있는 고전으로 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장자>의 왜곡의 폐해는 어느 고전보다 심하다"며 책을 펴낸 동기를 밝혔다.

이러한 왜곡의 역사에 대해 그는 "중국 위진 시대에 조조는 황건의 난이 중심이었던 도교세력을 체제 내로 편입시키고자 노자와 장자에 나타난 반체제성과 저항성을 제거하는 등 도교세력의 민중성을 거세하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조는 이를 위해 하안과 왕필(226∼249)을 등용했고, 이들은 공자의 경학(經學)을 노자에 끌어들여 현학(玄學)을 만들면서 노장사상을 체제에 순응하고 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노장사상의 본래의 뜻은 반체제성과 저항성

즉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의 문명을 거부하는 담론이었던 노장사상은 현학자들에 의해 순종과 무욕의 노예도덕론으로 변질되었고 산수에서 노니는 청담(淸淡)만이 부각되어 은둔의 철학으로 윤색됐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시중에 나온 번역서들은 왕필의 왜곡된 주해와 해설서를 고스란히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노장사상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불온하다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윤색한 껍데기만 남은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 기세춘씨가 번역한 <장자>는 기존의 번역서와 어떻게 다를까. 그는 재번역의 핵심은 철저한 고증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씨는 장자의 원문은 왕선겸(王先謙 청 나라 1842-1917)의 <장자집해>를 저본으로 삼고, <백자전서>와 이십 이자의 장자를 참고했다.

그리고 장자의 주해는 곽상(郭象 252?-312), 초횡(1540-1620), 유월(1821-1906)등의 주해를 종합한 왕선겸의 <장자집래>와 왕부지(1619-1692)의 <장자통>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주해들을 참고하면서 번역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결과 이 학자들의 주해를 따르기보다는 장자 전후로 쓰인 다른 고전의 용례와 이아(爾雅),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강희자전, 중화대전과 같은 자전을 따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서들은 오역과 옮긴이 개인의 생각까지 덧붙여져 곡해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씨는 "장자는 민중들이 알아듣기 쉽게 정언보다 우화로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장자 스스로도 자기의 글은 '우언(우화)이 열에 아홉이고, 중언(패러디)이 열에 일곱이며, 그 속의 치언(아니러니)으로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장자>에 덧씌운 왜곡의 두꺼운 껍데기를 걷어내기 위해 양심 있는 학자들이 <장자> 제자리 찾기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씨는 "장자는 혼돈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절대자연인을 꿈꾸게 한다"고 덧붙였다.

신영복 교수는 묵점 기세춘의 <장자> 완역 발문에서 "이 책은 근본담론으로서 장자의 생환이고, 장자의 진보적 재구성이다"라고 평가했다. 김조년 한남대 교수는 "전국시대의 고통받는 민중을 대변하는 저항담론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규동 시인은 "문장은 간결, 간소, 소박미가 넘친다며 한문특유의 운이 살아있어, 이는 번역이 아니고 제2의 창작"이라고 밝혔다.

묵점 기세춘은 누구

기세춘씨의 살아온 길은 험난하다. 호남 의병 대장이셨던 기삼년 대장의 손자로 36년 정읍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다가, 11세 때 정읍초등학교 5년으로 편입해 현대학문에 입문했다.

정읍중학시절 농민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했으며, 전북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서울로 상경해 상도동 야간학교 교사로 일했다. 4.19혁명, 61년 5.16 쿠데타 때는 내장산 원적암에 입산하여 혁명사 번역과 고전연구에 열중했다. 63년 다시 상경하여 신영복, 박현채 등과 교류했다. 서울시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동학혁명연구회에서 활동하다가 68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 돼 고초를 당했다.

94년에 신영복 교수와 공역으로 <중국역대 시가선집>, 고 문익환 목사와 공저로 <예수와 묵자>를 폈냈다. 02년에는 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바로알기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현재 대전 삼천동에서 성리학개론, 실학개론을 정리하고 집필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 김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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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청지역에서 노동분야와 사회분야 취재를 10여년동안해왔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빠른소식을 전할수 있는게기가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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