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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서홍관 기자는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입니다. <편집자주>
▲ 폐암 환자와 가족들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국내 최초의 '담배소송'에서 25일 패소, 즉각 항소할 계획이어서 흡연으로 인한 폐암 발병률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데 흡연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무려 7년을 끌어 온 역사적인 담배 소송 1심에서 재판부가 폐암 환자들에게 담배회사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자 많은 사람들이 봇물이 터지듯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재판부의 판결요지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장기 흡연과 폐암 및 후두암 발병 사이의 장기적 역학 관계는 인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각 피고에 있어서 그들의 폐암이나 후두암이 장기 흡연 때문이라는 것은 증거가 부족하다."

언뜻 들으면 타당해 보이는 이 판결은 결정적인 사실을 놓치고 있다. 그렇다면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지만 그 개인에 있어서도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입증할 수 있는가?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진료실에서의 역학적 연구 결과는 환자의 치료 방침을 결정하고 예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게 이용되고 있다. 흡연, 고혈압, 고지혈증 등은 심혈관계 질환 발생에 기여하는 중요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금연, 운동, 저지방 식이 등 적극적인 생활습관의 개선이 권고되고, 적극적인 생활습관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위험요인이 교정되지 않을 때는 약물치료가 권장된다.

즉 흡연, 고혈압, 고지혈증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시행된 역학적 연구결과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특정 개인에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정 개인에게 발생한 직업병의 진단에도 같은 논리로 역학적 연구결과가 활용되고 있다. 즉, 근로자가 어떤 유해인자에 노출되어 특정 질병이 발생하였는지를 평가하려면, 먼저 문제가 되는 유해인자와 특정 질병과의 관계에 대한 역학적 연구결과를 참조하고, 이에 기초하여 해당자의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과정을 거친다.

해당 근로자가 ①기존의 역학적 연구에서 보고한 유해요인에 노출되고, ②유해요인 노출과 건강영향과 시간적 관련성이 있으며, ③노출량과 노출기간 등이 질병을 유발할 정도로 충분하다고 인정될 경우, ④해당 건강영향에 대한 다른 요인의 작용가능성이 없거나 적은 경우에 질병이 직업 때문에 기인하였거나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평가한다.

폐암 소송에서 역학이 사용되는 부분은 과연 흡연이라는 행위가 폐암의 원인인가 하는 문제를 증명하는 데 사용된다. 흡연과 폐암의 역학적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연구자들의 발표에서 다루어져 있으며 이번 재판에 사용된 서울의대교수 5인의 감정서에도 잘 밝혀져 있다.

이 감정서에는 "이 사건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는 폐암의 위험인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흡연이다"(3쪽) "1950년대 영국 역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대규모 역학연구 결과에 의해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이 처음 보고된 이래, 지금까지 이들 간의 인과적 관련성은 여러 학자들 사이에 명백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8쪽) "폐암 환자의 80~90%는 흡연과 관련되어 발생되는데, 전체 흡연자 중 단지 10~15%만이 폐암이 발생하고, 전체 폐암 환자의 10~15%는 전혀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 발생한다(22쪽)" "폐암의 발생은 조직 형태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네 가지 형이 모두 흡연에 의해 발생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5쪽)"고 나와있다.

폐암의 원인이 흡연 때문이라는 사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 폐암 환자와 가족들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국내 최초의 '담배소송'에서 25일 패소하자 KT&G 측 변호인 박교선 변호사는 "재판부의 판단을 환영한다"며 "그동안 쟁점이 되어온 쌍방의 주장과 주요 내용을 재판부가 현명히 판단한 결과"라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일반적으로 흡연자의 폐암 발생에 대한 상대위험도는 평생 비흡연자와 비교해서 20배 이상 높다. 문제는 흡연이 폐암의 원인인 것은 명백하다고 하지만, 어떤 한 개인이 흡연을 하였고, 폐암에 걸렸다 해서 흡연이 그 폐암의 원인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또 명백한 증명이 불가능하다면 과연 그 개인에서의 인과 관계를 어떻게 재판부가 다룰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로 모든 흡연자가 폐암에 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폐암 환자가 흡연을 한 것도 아니다. Peto et al.의 환자군-대조군 연구(case-control study)에 의하면 흡연을 계속하는 사람(남자)이 다른 병으로 죽지 않고 75세까지 산다면 폐암에 걸릴 확률은 16%였다. 즉, 흡연을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75세까지 폐암에 걸리지 않을 확률이 84%나 되는 것이다.

각 개인에 있어서 흡연에 대한 감수성에 대해서 다각적인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 가지 예를 든다면, cytochrome P-450을 들 수 있다.

Cytochrome P-450은 발암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이 있다. 그런데 특정 개인이 변형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그 개인은 흡연으로 인한 폐암의 위험도가 높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모든 연구 결과가 집대성되어 담배가 가지는 발암물질을 모두 이해하고, 이 발암물질의 대사과정을 모두 이해한다면 한 개인에서 흡연이 가지는 위험성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그 인과관계도 명백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수준에서는 극히 미미한 결과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개인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명확한 판단은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볼 때 오직 신만이 가능하다.

인과관계 100% 규명은 신만이 가능

▲ 폐암 환자와 가족들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국내 최초의 '담배소송'에서 25일 패소하자 원고측 배금자 변호사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배 변호사가 "패소 판결을 KBS에서 먼저 입수했다는 소문이 있던데.."라고 말하자 KBS 법조 출입기자가 "근거없는 소리"라고 항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럴 경우에 개인에 있어서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가 100% 명확하지 않은데, 재판부는 그 인과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판결할 것인가?

여기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형사소송에서는 99명의 진범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하에 모든 형사소송의 피고는 범인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른다. 즉 아무리 피고가 범인일 확률이 90%가 넘어도 범법의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추정한다.

그러나 민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능성이 있다면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많은 피해자들이 배상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암이나 만성질환, 환경소송 등과 같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에 개연성 이론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법이론상 불법행위가 성립되려면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하며, 피해자가 이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다.

그러나 이번 담배 소송처럼 인과관계에 관여하는 요인이 여러 가지가 존재할 경우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자 하는 것이 학설과 판례의 경향이며, 이러한 필요에서 등장한 것이 개연성설이다.

개연성설은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제조물책임이나 환경소송에 있어서 피해자의 열악한 지위, 원인조사의 곤란성, 공적조사기관의 불비한 상황, 조사기술의 비과학성과 미발달 상황 등을 그 근거로 하고 있다. 개연성설은 단순한 입증의 정도나 판단기준에 관하여 보다 완화된 해석을 하고 있으며, 경험칙에 비추어 그러한 여건 하에서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정도의 확률이 있으면 이를 확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연성설에서는 개연성에 관하여 '소명의 영역은 넘지만 증명에는 이르지 못하는 정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개연성을 더욱 구체화한 견해로서 수학적으로 50%를 넘는 개연성이 있으면 되는 것으로 영미법의 증거우월방식을 채용한 견해나 원고가 인과관계의 존재를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으로 증명한 때 인과관계의 존재가 사실상 추정되어 피고측에서 그 추정을 번복할 정도의 반증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인과관계는 존재한다고 보는 사실상의 추정 이론 등이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개연성설에 대하여 일본에서 유력하게 주장되는 견해로 역학적 인과관계론이 있다. 역학적 인과관계론이란 피해와 가해 간의 인과관계가 역학적으로 입증되면 법적으로 인과관계의 증명이 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집단에 대한 그 인자의 부담이 공통된 이상 그 인자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질병의 원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인의 인과는 역학적 인과에 따라야 한다는 설이다. 만약 특정 개인의 문제가 역학적 인과 외에 있으면 그 상황은 주장자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입증 책임이 전환된다.

이번 담배 소송에 있어서 재판부가 잘못 판단하는 것은 원고(폐암환자)가 자신의 폐암이 흡연에 의한 것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배상을 받지 못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민사재판에서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민사재판의 정신을 위배하는 판결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담배소송#담배#폐암#폐암 원인 규명#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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