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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4일 수요시위와 박물관 건립 캠페인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
2007년 1월 24일 수요시위와 박물관 건립 캠페인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 ⓒ 정대협
시계의 분침이 12에 다다르는 순간, 노래는 멎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윤미향 사무총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부터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위한 2007 시민모금 캠페인 발대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모금을 위해 정대협과 함께 모금활동에 동참하기로 한 단체들이 수요시위에 앞서 캠페인 발대식을 벌이기 위해 모이는 날인 것. 수요시위와 정대협, 그리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삼각관계가 조금 낯설게 다가오는 독자도 혹여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길고 이제 굳이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본의 수많은 전쟁 범죄 중의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 해결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가 정대협이고 그 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수요시위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들에게 명예와 인권을 돌려주고 현재도 계속되는 전시 하 여성폭력 문제를 막기 위해 정대협이 역사를 기억하는 박물관을 짓기 위해 나선 것이다.

정대협은 지난 2년 간 박물관 부지 확보를 위해 활동한 결과, 서울시로부터 서대문 독립공원 내 매점 부지를 제공받았다. 부지 제공의 최종 승인은 지난해 8월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지난해 말까지 건립비용의 70%이상을 확보하고 2008년 8월까지 건축을 완료할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에 실무자들과 자원활동가들이 직접 거리로 나가 모금활동을 벌이고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쳤지만 기대를 걸었던 정부의 예산 책정이 무산되고 기업들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올 초 착공에 들어가려던 계획은 불가피하게 1년 뒤로 미뤄졌고 다시금 모금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여성농민회, 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여성신문사, 민주노동당, 천주교, 원불교,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여자프로농구연맹, 일본후원회,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과 함께하는 호주친구들 등 노동자, 농민, 대학생, 언론, 종교, 문화인,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함께 하기로 한 이번 캠페인을 점차 범국민적인 캠페인으로 넓혀나가는 시발점이 되게 한다는 것이 정대협의 포부이다.

다시 캠페인 발대식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참가한 단체들은 앞으로 더욱 힘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있었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참하겠다는 이야기에서부터 할머니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이야기까지… 이어 다섯 살, 아홉 살 어린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모은 돼지 저금통을 들고 나와 전달했다.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땐 과연 이 땅에 전쟁도 여성폭력도 사라지게 될까….

2007년 1월 24일, 고사리 손으로 모은 성금을 전달하는 어린이들
2007년 1월 24일, 고사리 손으로 모은 성금을 전달하는 어린이들 ⓒ 정대협
곧 박물관 건물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판이 전면에 등장했다. 참가자들 손에 들려 있었던 벽돌모양과 나무 열매 모양의 종이가 그림판에 붙여지면서 순식간에 박물관이 완성되었다. 저마다 주춧돌이 되고 한 장의 벽돌이 되는 마음으로 참여한다면 박물관이 우뚝 세워지는 날도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2007년 1월 24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기원하는 퍼포먼스에서 수녀님이 벽돌모양 종이를 붙이고 있다
2007년 1월 24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기원하는 퍼포먼스에서 수녀님이 벽돌모양 종이를 붙이고 있다 ⓒ 정대협
2007년 1월 24일, 참가자들의 퍼포먼스로 박물관 모양이 완성된 모습
2007년 1월 24일, 참가자들의 퍼포먼스로 박물관 모양이 완성된 모습 ⓒ 정대협
수요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창원에서 홀로 먼 길을 왔다는 고등학생 소녀는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이 문제를 알려내고 정성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찬 발언을 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눈물을 글썽이며 할머니들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2007년 1월 24일, 수요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창원에서 혼자 먼 길을 온 학생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 서자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2007년 1월 24일, 수요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창원에서 혼자 먼 길을 온 학생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 서자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정대협
박물관 건립모금 캠페인이 열린 이날 할머니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수요시위 개근생들인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제 피해자에서 운동의 주체로 거듭난 할머니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길원옥 할머니가 하신 말씀에 다 녹아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정말 어려울 때 태어나서 이런 일을 겪었어요. 이 세상에 와서 자식도 남기지 못했는데, 이대로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 가면 어쩌나 참 허전하고 내 인생이 불쌍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우리의 박물관을 짓는다고 하니 정말 무엇보다도 기쁘죠. 내가 죽어도 내가 희생당한 것. 그것을 잊지 않겠다고 하니 그 고생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쪼록 박물관에서 후손들이 우리의 역사를 보고 배워서 우리처럼 속지도 말고 우리처럼 그런 수난도 당하지 말고 그렇게 험난한 세월을 보내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1월 24일,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745차 수요시위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위한 시민모금 캠페인 발대식에 참석하여 구호를 외치는 할머니들의 모습
2007년 1월 24일,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745차 수요시위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위한 시민모금 캠페인 발대식에 참석하여 구호를 외치는 할머니들의 모습 ⓒ 정대협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굳이 세워져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길원옥 할머니의 이 말씀은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민족의 역사이되 민중의 역사고 여성 수난의 역사다. 그리고 그런 수난의 역사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고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역사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거대하진 않지만 살아있는 박물관이 필요한 것이리라.

15년 동안 이어진 수요시위가 거리의 살아있는 박물관이 된 것처럼 그렇게 꿈을 꿀 수 있는 박물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아 준 정성으로 이 일은 가능할 것이다.

오늘도 일본대사관 앞, 이름도 없이 거리를 메운 사람들은 1월의 날씨 때문에 몸은 얼듯이 추워도 심장은 불처럼 뜨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섰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대협 홈페이지 http://womenandwar.net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whrmuseum.com
박물관 건립 모금 계좌 : 신한은행 308-03-009542 / 국민은행 011201-04-008524 (예금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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