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고 유니씨의 미니홈피.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댓글 뿐 아니라 악플도 함께 올라와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욕설로 도배된 메일을 보낸 사람에게 진지하게 대화해 보자는 내용을 그가 보낸 메일과 함께 다시 보낸 적이 있었다. 그에게서 다시 답장이 왔는데, 무척 긴장하고 열어보았다. 욕이 잔뜩 들어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 내용은 예상과 다른 내용이었다. 정중하게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그러한 욕설로 도배된 글을 보냈던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 글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일필휘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순간적인 충동 심리는 악플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우선 인터넷 공간에서 대인 지향적 행동을 지배하는 심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놀이성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감이다. 악플(악성 댓글) 달기는 하나의 놀이가 된다. 그 내용이 아무리 심각하거나 폭력적이라고 해도 즐김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 정도에 이른 사람에게 악플은 소외와 배제의 처지에서 단순히 자신의 존재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악플 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적인 즐거움이 된다. 이 즐거움에는 가학성 쾌감과 함께 권력적 우월 욕구의 심리가 개입한다.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고 그것 때문에 당황하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쾌감을 느낀다. 또한 악플을 다는 자신이 마치 대단하게 지성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자위한다.

이러한 놀이성보다도 치명적인 것이 정의감 심리다. 이는 비단 인터넷의 악플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종교전쟁을 통해 수없는 사람을 죽인 이들은 그들이 옳은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나치나 일제의 동조자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생각하며 수없는 사람들을 죽였다.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악플이나 '네카시즘'은 이러한 차원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공공의 적이라고 여겨지거나 그렇게 규정된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공격이 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의 사생활이나 명예는 지켜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 말이다. 스스로 심판관이 되고, 하느님이 된다.

특히 연예인에게 악플이 많이 쏟아지는 까닭은...

@BRI@특히, 연예인들에게 악플이 많이 쏟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악플러들은, 연예인들은 별다른 노력없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고 여긴다. 또한 연예인은 실체와 관계없이 절대적인 권력자처럼 보인다. 사생활은 문란하고, 일상은 허영과 사치에 물들어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런 인식에 따른다면 연예인에 대한 공격은 '공공의 적'에 대한 공격쯤이 된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정의의 사자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연예인들이 무고하게 고통받고 자살 충동에 이른다. 이는 신인의 경우에 심각하게 작용한다.

더구나 비극적인 것은 악플 다는 이들 누구도 해당 당사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단편적인 이미지와 보도 내용을 보고 그 대상자를 전적으로 판단하고, 부정적인 편견에 따라 악플을 달아 버린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 같은 행동은 정당화 된다. 그렇다면 악플이 상대방에게 어떠한 충격을 주는지 모를까?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악플 다는 것이 정의를 위한 총알이라 간주하기 쉽다.

한편,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고정적으로 따로 정해져 있다고만 볼 수는 없다. 누구라도 인터넷 심리에 휘말리면 쏠림에 따라 악플러가 될 수 있다. 일종의 '‘악플 지름신'이 존재한다. 순간적인 흥분 상태에서 지름신이 강림하고, 이때 악플을 질러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이유나 사회 역사적 명분이 뒷받침될 뿐이다.

이러한 순간적인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것이 '악플 중독증'으로 이어진다. 악플 중독증은 악플에 대해서 스스로 무감각해지는 현상이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그것이 욕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그것은 스스로 순간 순간 받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수단일 뿐이다. 악플도 순간 순간의 무료와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한 수단으로 애용된다. 하지만 비대면의 익명성의 공간에서 그것은 칼이 되고 총이 된다. 살해당한 사람은 있는데, 살인자는 없는 것이 이 악플러가 지배하는 인터넷 공간이다.

그런데 악플러들은 항상 고정이 아니라 새로운 구성원으로 순환된다. 이 때문에 자신을 악질 악플러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악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인터넷 지름신이나 쏠림 심리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악질 악플러는 많지 않고, 악플러의 실체를 찾기는 쉽지 않다.

물론 네티즌을 모두 악플러로 규정하여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에 의무가 따라야 함에도 그것이 악플러들에게는 결핍되어 있을 뿐이다.

개인적인 분풀이나 감정 표현은 댓글 저널리즘도 아니고 여론 형성도 아니며, 정의를 지키는 행동은 더욱 아니다. 세상의 끔찍한 만행은 모두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악플이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쾌감을 느끼는 행위도 합리화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