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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한 후 얼마나 통증이 셌던지 고통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어머니예요. 수건을 입에 물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입수건을 떼고서 몇 마디 말을 했지요. 그게 내 자식들을 염려하는 첫 마디 말이었습니다. '엄마, 부디 빨리 나아서, 이제는 잘 걸어요.'
수술한 후 얼마나 통증이 셌던지 고통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어머니예요. 수건을 입에 물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입수건을 떼고서 몇 마디 말을 했지요. 그게 내 자식들을 염려하는 첫 마디 말이었습니다. '엄마, 부디 빨리 나아서, 이제는 잘 걸어요.' ⓒ 권성권
엊그제 금요일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했다. 화순에 있는 전남대병원에서 하는 수술이라 내 딴엔 시간을 맞추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그렇지만 저녁 7시를 기점으로 수술은 이미 진행된 상태였다.

고관절이란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 있는 뼈를 일컫는 것이지만 어머니의 문제점은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다. 결핵균이 이미 그 속에 들어가 서식한 지 오래였고, 그 균들이 고관절의 뼈들을 갉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BRI@"형. 수술이 시작됐어?"
"어, 이제 오냐?"
"얼마나 됐는데?"
"한 삼 십 분 정도 지났다."
"내가 많이 늦었네."

셋째 형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셋째 형은 저 멀리 신안군 암태면에서 올라왔다. 배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데, 무려 여섯 시간 정도 걸렸다. 섬이라 때때로 풍랑이라도 일면 발이 묶여 버리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잠잠했던 덕에 빨리 올라 온 듯했다.

그 사이 여섯째 형과 형수도 나타났다. 여섯째 형은 화순과 가까운 광주에서 살고 있다. 사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기 위해 머물고 있던 곳이 여섯째 형의 집이었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형들의 집과는 달리 그래도 고향과 가까운 곳이었으니 그나마 어머니의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제일 늦게 들어가셨어요."
"아, 그래요, 형수님."
"얼마 정도 걸린대요?"
"세 시간 정도 걸린다네요."
"수술도 두세 차례 더 한다고 했지요?"
"그렇지. 이번에 염증을 걷어내고, 다음에 괜찮으면 인공관절 넣고."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한 시간 남짓 흘러갔을까? 그 무렵 수술을 집도하던 주치의 선생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우리 가족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시간 가량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입니까?"
"네, 수술이 생각보다 잘 됐습니다."
"그 그래요? 고맙습니다."
"인공관절도 이번에 그냥 끼워 넣었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수술 이후 형수가 어머니를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1년 동안 어머니를 보살핀 사람도 여섯째 형수지요. 그저 자식으로서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도리가 없네요. 형수님 고맙습니다.
수술 이후 형수가 어머니를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1년 동안 어머니를 보살핀 사람도 여섯째 형수지요. 그저 자식으로서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도리가 없네요. 형수님 고맙습니다. ⓒ 권성권
어머니는 그로부터 이십 분 정도 지나서 수술실을 빠져 나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간 까닭은 하룻밤을 지내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증세가 나타나지 않은지 잠깐 동안이나마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X-레이를 찍고서 곧장 병실로 옮겨갔다.

"엄마. 나 왔어. 눈 좀 떠 봐."
"느그 삥아리 새끼들 아프다는데, 뭐하러 왔냐?"
"괜찮아, 엄마. 얘들이야 커가는 통증 아닌가?"
"아프지 마라고 그래라"
"알았어, 엄마. 엄마나 얼른 나아요."
"……."

어머니는 당신 몸이 아픈 것은 아랑곳없이 오히려 내 아이들을 염려했다. 사실 내 아이들은 셋이서 번갈아가며 아팠다. 감기도 그렇고 비염도 그렇고 모세기관지염도 그랬다. 그 가운데 막내 녀석이 가장 고생하고 있는데, 아마도 막내라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도 병중에 있던 어머니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난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수술한 뒤에도 당신의 몸보다도 오히려 내 아이들을 염려해 주고 있었으니 다함없는 어머니의 그 사랑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당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누워 지내다시피한 어머니. 이제는 수술 이후 정말로 완쾌되어 잘 걸을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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