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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을 경유하지 않고 양관에서 직접 사막을 가로질러 위먼관으로 가는 도로
둔황을 경유하지 않고 양관에서 직접 사막을 가로질러 위먼관으로 가는 도로 ⓒ 박재익
약간의 고민 끝에 길을 탔는데 의외로 상태가 좋은 도로다. 도로의 중앙은 포장되어 차 한 대가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폭이고 양쪽 갓길은 비포장길로 다져져 있다. 만약 맞은 편에서 차가 온다면 바퀴 한 쪽은 포장노면에, 나머지 한 쪽은 비포장 노면에 걸치고 교행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사막에서 맞은편 차를 만날 턱이 있나. 온 도로를 독점하고 편안하게 몰아간다. 차도 보행자도 감시카메라도, 심지어 굽은 길조차 없는 사막의 아우토반이다.

중간에 오아시스지대를 한 번 관통한 후 몇 차례 방향을 꺾어 위먼관 가는 길에 올라탔다. 얼마를 달린다 싶더니 멀리 위먼관이 보인다. 워낙 먼 거리여서 작은 봉수대인가 싶었는데 차가 가까이 접근할수록 위먼관임을 확신하겠다. 양관에서 길을 달린 지 한 시간.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어 위먼관에 도착한 것이다.

위먼관 가는 길. 거의 위먼관에 닿을 무렵 다시 비포장길이 나타난다
위먼관 가는 길. 거의 위먼관에 닿을 무렵 다시 비포장길이 나타난다 ⓒ 오창학
한 낮의 햇살에 아랑곳없는 흙덩이. 더위와 햇살뿐이겠는가. 2천 년 세월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온 흙덩이다. 한대 이후 양관과 더불어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던 위먼관. 낮 더위에 노랗게 익은 사방 20여m 높이 10여m의 토성을 넘어서면 비로소 실크로드의 또 다른 영역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하여 옛날에도 위먼관을 넘는 것을 출새(出塞)라 하지 않았던가.

호탄 지역의 옥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옥문(玉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관문은 한대에 설치된 것으로 8세기 혼란기의 당대엔 이곳에서 세력을 잃고 둔황 동쪽으로까지 밀려갔다.

위먼관
위먼관 ⓒ 오창학
현장은 서역북로를 이용해 인도로 들어갔다가 서역남로를 이용해 당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위먼관을 거쳐 나가 양관으로 들어온 셈이다. 반면 혜초는 바닷길을 이용해 광동지역에서 인도로 들어갔다가 인도를 비롯해 서역 여러 지방을 4년간 순유하고 서역북로를 통해 당에 귀국했다. 그렇다면 귀국 때는 위먼관으로 들어왔다는 말인데 727년 11월 상순에 안서도호부가 있는 쿠차에 닿았으니 728년엔 이곳을 지났을 것이다.

쿠차 이후 언기를 거쳐 장안에 들어온 건 확실한데 안타깝게도 언기 이후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정확한 경로와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위먼관이 지금의 안시(安西) 지역으로 물러난 것은 고선지 이후의 당 쇠퇴기이니 혜초가 지날 수 있는 곳은 지금의 저 관문밖에 없다.

옥문관, 님 그리는 장안 여인의 탄식을 듣다

위먼관, 2천년 세월을 견디고 오늘도 서 있다
위먼관, 2천년 세월을 견디고 오늘도 서 있다 ⓒ 오창학
위먼관에 서면 이태백 자야오가(子夜吳歌) 중 가을 노래(秋歌)가 들린다. 천 년을 넘어선 여인의 탄식 소리.

長安一片月 장안 하늘에 한 조각 달
萬戶搗衣聲 집집마다 다듬이질 소리
秋風吹不盡 가을바람 끝없이 불어오는데
總是玉關情 모두 옥문관으로 향하는 정이여
何日平胡虜 어느 날에나 오랑캐를 평정하여
良人羅遠征 낭군은 원정에서 돌아오려나.


그 먼 세월의 간극을 넘어 '옥문관'에 징병 나와 있는 낭군을 그리워하는 장안 여인의 감정이 진솔하게 묻어난다. 위먼관처럼 복원입네, 보수입네하고 요란한 손때를 묻히지 않은 오래된 폐허만이 간직한 힘이다.

지금은 수비병 대신 검표원이 자리를 대신하는 퇴락한 관문이건만 내게는 여전히 서역으로 나서는 관문이다. 그 때문에 도로를 따라 유원으로 돌지 않고 위먼관을 나서 막하연적으로 들어서려 하는 것이다.

아, 우리는 이번 여행길 내내 몇 번의 경계를 넘었던가. 북방 민족의 터전에 차를 내려 옛 영화의 중심지 뤄양과 시안에 들고, 몽고인들의 사막지대를 지나 옛 중화의 세력권 끝인 위먼관에 이르렀다. 이제 저 문을 넘어서면 또 한 번의 진정한 '출새(出塞)'가 이루어진다.

위먼관 유물전시관 식당. 둔황 서남부 사막 지대 유일의 휴게시설이다
위먼관 유물전시관 식당. 둔황 서남부 사막 지대 유일의 휴게시설이다 ⓒ 오창학
새로운 출발에 앞서 단독주택 규모의 유물전시관을 둘러보고 식탁 두 개가 놓인 내부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딸은 문 밖 수레에서 기념품과 서적을 팔고 아주머니는 식당에서 음식을 하며 아저씨는 입장료와 화장실 이용료를 징수하는 위먼관 유일의 휴게 시설이다. 아니 둔황 서남부 사막 지대 유일의 휴게시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화장실 이용료가 1위안으로 물가 또한 최고가다. 이제껏 5마오(0.5위안)가 표준공시가라 생각했던 처지라 에릭님이 왜 이리 비싸냐 물으니 주인아저씨가 항변한다. 물도 안 나오는 이 외딴 곳에 달랑 떨어져 살며 고생하는 비용은 왜 생각 안 하느냐고.

음식값은 당연 갑절이다. 어디 여기 말고 배설할 수 있으면 하고, 먹을 수 있으면 먹어보라는 마음 같다. 이 드넓은 사막에 오로지 이 집 한 채가 독점이니 구매자로선 선택권이 없지. 그냥 취사를 해서 먹을까 했지만 칼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감내하며 먹을 마음이 안 생긴다. 어차피 막하연적에 들어서면 매끼가 취사이니 벌써부터 서두를 이유도 없다.

오후 3시 10분. 드디어 출발. 한(漢) 장성 방향으로 나아가 야단지모성 가는 초입에서 도로를 벗어나 사막에 들어서면 된다. 우습다. 천지사방이 온통 사막뿐인 이곳에서 도로 위는 사막인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사막으로 길 아닌 길을 나서다

검표원들이 입장료를 요구하며 막아선 한 장성 방향 진입로
검표원들이 입장료를 요구하며 막아선 한 장성 방향 진입로 ⓒ 오창학
시동을 걸고 위먼관을 벗어나려는데 한 장성 방향 진입로를 검표원들이 틀어막고 이곳에 진입하기 위한 입장료를 요구한다. 무슨 소리? 원래는 위먼관 오는 초입에서 입장권을 샀어야 한단다. 우리가 둔황에서 양관으로 직접 진입했고 양관에서도 사막을 관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매표소가 있는지조차도 몰랐다.

우리는 사막을 건너기 위해 진입하는 것이므로 한 장성 입장료를 지불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길을 막고 비껴줄 태세가 아니다.

"차 돌려서 우회하겠습니다."

2호차에 무전을 날렸다. 이들과 입씨름하고 있을 시간도 없고 욕심쟁이 같아 밉살스러운 마음도 든 까닭이다.

사막을 우회해 위먼관을 벗어난다
사막을 우회해 위먼관을 벗어난다 ⓒ 박재익
애초 왔던 방향으로 차를 돌려 사륜 기어를 넣고 사구를 치고 올라 사막으로 진입했다. 통쾌하다. 사막마저도 길을 따라 움직여야 했던 점이 아쉽던 터에 네 바퀴 굴림 자동차가 한껏 능력을 발휘한다.

지표면이 두툼한 모래로 덮인 연약지반이고 구릉과 구덩이가 많아 차체의 요동이 심했지만 강성스프링과 토션바 그리고 프로콤프 사의 서스펜션으로 튜닝한 하체가 별 무리 없이 받아준다. 먼지를 일으키며 둔덕들을 헤쳐나갈 때 흡사 모래의 파도를 가르는 한 척의 쾌속정이 된 느낌이다.

현재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잖아?

"오늘날 모험이라는 말은 시대 정신에 맞는, 훌륭하게 상품화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관광 산업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사이비 모험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모험이란 계획될 수도 없고 예약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물며 모험을 사고 소비한다는 것은 전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모험이란 '모든 게 갖춰진' 여행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진정한 모험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미지수와 불확실함이다."

스펜 헤딘 이래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타클라마칸 사막을 도보로 횡단한 부르노 바우만이 그랬다. 그의 글을 접하고 십분 공감했더랬다. 그러나 난 그와 같은 전문 탐험가도 아니요, 심지가 굳은 이도 못 되는지라 '예측 가능하고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는 모험'을 계획할 수밖에.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동생이 물었다. 꼭 지금이어야겠냐고. 내년이면 중국 내 자동차 여행이 가능해지고, 또 한 두 해만 더 기다리면 충분한 여행 자금도 생기지 않겠느냐는 그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에 살고 있지 않은 양 오로지 내일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게는 지금, 바로 여기가 중요하다. 현재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욕망과 호기심, 표현가능성들과 일치하는 일을 언젠가 한번쯤 해 보기 위해 언제까지나 기다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실은 이 또한 바우만의 '말'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기도 하다. 내 욕망과 호기심, 표현가능성들과 일치하는 일을 해보기 위해 언제까지나 기다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인간이란 자연 앞에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 오직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를 동원해서야 나는 감히 저 자연 속으로 들어설 마음을 품은 것이다. 사막 300km 횡단에 1박 2일, 혹은 2박 3일을 예상하고 있지만 두 차 모두 각각 20L의 물통과 다량의 생수통 그리고 철봉씨를 포함해 7인이 일주일간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과 부식을 적재하고 있다.

또 백구의 짐칸에는 아이솔레이터를 활용해 분산 충전되는 보조배터리가 부착되어 있다. 인버터(차량용 12V를 220V로 전환시켜주는 장치)를 이용해 촬영기기를 충전하고 노트북을 사용한다거나 실수로 전등을 켜놔도 사막에서 차량이 방전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차량이 2대니 점프선을 이용해 시동하면 될 일이지만 윈치를 사용할 일이 많을 경우 유용하다.

다만 연료가 문제다. 둔황에서 양관 거쳐 위먼관에 이르기까지 150Km를 주행했다. 연료탱크의 1/4이 비었다. 본격적으로 사막에 들어서기도 전에 예비연료통 한 캔씩을 각각 소모해야 할 모양이다. 애초 계획엔 위먼관 근처의 오아시스에서 한 번 더 가득 채운 후 떠나는 것이었는데 이제 와 보니 그건 언감생심이었다. 달고 다닐 땐 그렇게 짐스럽더니 막상 필요에 닥쳐 예비연료통들을 더 확보해 오지 않은 게 아쉽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아.

다시 포장된 도로에 오른다. 대체 사막의 어디까지 도로가 뻗어 있는 것일까? 이곳에서 70여Km 떨어진 야단지모성과 주변 오아시스 때문에 만든 길일 게다. 아쉽지만 이제 이 도로를 버리고 북쪽 사막의 모래땅에 바퀴를 넣어야 한다.

메마른 사막에 눈물을 떨구다

막하연적 사막 횡단 직전 다시 엔진이 과열된 2호차 파라곤. 각혈처럼 냉각수를 토해낸다
막하연적 사막 횡단 직전 다시 엔진이 과열된 2호차 파라곤. 각혈처럼 냉각수를 토해낸다 ⓒ 오창학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후방의 2호차에서 무전이 온다.

"2호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급히 차량을 세우고 쫓아가보니 또 엔진 과열이다. 지난 번 고비사막에서 과열되었을 때와 같은 증상이다.

마치 각혈하는 폐병환자처럼 냉각수를 거푸 토해내고 있다. 녀석이 안쓰럽다. 연식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아니 한국에서 과열현상이 생겼을 때 판단을 했어야 하는데 이역만리 타향의 오지까지 끌고 온 것이 무리였다.

냉각수 누수 문제는 아니다. 그 점은 오늘 아침도 분명히 점검을 마쳤다. 써머스텟 문제? 아니면 워터펌프? 라지에터?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의 냉각팬 속도가 정상이니 팬클러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두 번의 과열 모두 사막지대에서, 사륜을 넣고 알피엠을 높여 주행한 후에 일어났다. 그렇다고 차가 과열될 수 있는가.

속이 상한다. 이 여행을 위해 1년 반을 준비했다. 고비사막을 지나고 타클라마칸을 일주해 아얼진 산맥을 넘는다. 티베트 아래 '하늘길'로 진행해 내몽고 땅까지 아우르는 중국 구간 실크로드를 일주하겠다는 계획. 이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내 30대의 정점에서 긋는 삶의 획이다. 그러한 여행의 중심에 무보급 막하연적 사막 횡단이 있다.

그런데… 지금, 그 꿈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발목이 잡혔다. 엔진이 과열되어 결함이 생긴 차를 끌고 사막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물러나야 할 것인가?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해야 한다. 엔진 열이 내리고 다시 주행 가능하다 해도 이 상태론 사막의 모랫길을 헤쳐 나갈 수 없다. 반드시 다시 과열될 것이다. 양관 근처 사막에서 새삼 느꼈지만 자력이동이 아닌 견인으로는 사막의 사구를 오를 수 없다. 그렇다면 사구 하나 오를 때마다 1호차가 먼저 올라 2호차를 윈치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사막을 노려보는데 눈이 뜨거워진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막하연적 사막 횡단의 꿈을 접어야 한다
사막을 노려보는데 눈이 뜨거워진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막하연적 사막 횡단의 꿈을 접어야 한다 ⓒ 오창학
만약 사막의 정 중앙에서 2호차가 퍼진다면 이 모랫길을 헤쳐 견인하는 동안 1호차도 과열을 면치 못 할 것이다. 대지온도 62도, 시동 꺼진 차내 온도 42도. 이 가운데 정비를 담당하신 자포님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차량의 열기를 식히느라 동분서주한데 나는 백구 뒤에서 사막만 노려보고 있다.

2호차 파라곤의 엔진 열은 다행스럽게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내 눈은 자꾸 뜨거워진다. 기어이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돌아서야 한다. 안타깝지만 여기서 다시 둔황으로 돌아가 차량을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시도할지 문제는 그 다음에 결정할 일이다.

침통한 표정으로 둔황을 향해 차를 돌리는데 아내가 위로의 말을 한다.

"좋게 생각해요. 어쩌면 저 고장의 의미가 어떤 계시였는지도 모르잖아."
"…."
"사막에 들어서기 직전에 차가 고장이 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만약 사막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면…."
"…."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여행에 대한 내 열정을 누구보다도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고맙다.

둔황의 정비공장에서 점검 중인 파라곤. 써머스텟 이상으로 진단이 나왔는데......
둔황의 정비공장에서 점검 중인 파라곤. 써머스텟 이상으로 진단이 나왔는데...... ⓒ 오창학
사막의 포장도로 100Km 가량을 달려 둔황 시내에 있는 정비소로 들어왔다. 외국 차량에 대한 호기심까지 더해 필요 이상의 인원이 달라붙어 내린 진단명은 '써머스텟 이상'이었다. 이것이 기능하지 못해 냉각수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탓이란다. 그래서 아예 써머스텟의 개폐막을 뜯어버리는 것으로 조치를 했다.

이제 이것으로 2호차 엔진과열을 고친 것일까? 더 이상의 문제는 없을까? 사막을 넘을 수 있을까? 아니면 312도로를 타고 하미로 가야 하나. 고민의 시간은 밤으로 미룬다. 아직은 오늘 넘지 못한 사막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이 서지 않을 것이므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자동차여행 포털사이트 '알브이라이프(http://www.rvlife.co.kr)'에도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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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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