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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남대봉 부근 구상나무에 핀 상고대입니다.
치악산 남대봉 부근 구상나무에 핀 상고대입니다. ⓒ 서종규
은혜 갚은 꿩 이야기가 있잖아요? 우리가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옛날이야기이요. 아니 동화책에서 읽었던 동화겠지요. 보통은 까치가 종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치악산에 올라보면 까치가 아니고 꿩이 종을 쳤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답니다.

치악산에 있는 상원사라는 절이 있어요.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1100m 높이에 있는 상원사의 종을 꿩이 쳤다는 것입니다. 전설 속의 절은 그리 크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 종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은혜 갚은 꿩의 이야기로 치악산 상원사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절이 되었지요.

강원도 어떤 선비가 과거를 보려고 치악산 근방을 지나고 있었다지요. 커다란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는 순간, 활을 꺼내 구렁이를 쏘아 죽이고 꿩을 살려 냈답니다. 계속 길을 가던 선비는 어두워졌는데 민가를 만나지 못하다가 멀리서 불빛이 보여 달려갔답니다. 그 곳에 어떤 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답니다. 자고 있는데 몹시 답답하여 눈을 떠 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몸을 칭칭 감고 있었지요.

남편 구렁이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상원사에 있는 종이 세 번 울리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구렁이 아내의 말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희마하게 세 번의 종소리가 들렸구요. 살아 난 선비는 다음 날 아침에 상원사에 달려갔더니 종 아래에 꿩 세 마리가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은혜 갚은 꿩 이야기

치악산 상원사 종각의 종은 꿩이 치던 그 종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치악산 상원사 종각의 종은 꿩이 치던 그 종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 서종규
1월 18일,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 친구 2명과 함께 그 은혜 갚은 꿩 이야기가 살아 있는 치악산에 올랐답니다. 작년 1월 치악산 비로봉에 올랐는데, 1년 만에 다시 국립공원 치악산 등반에 나선 것입니다. 금년에는 금대매표소에서 상원사 - 남대봉 - 향로봉 - 국향사에 이르는 13km 코스를 잡았답니다.

198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강원도 치악산은 가을단풍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본래 붉을 적(赤) 자를 써서 적악산이란 이름으로 불려왔답니다. 그런데 상원사의 꿩 전설에 연유하여 꿩 치(雉) 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천지봉(1086m), 시명봉(1187m) 등으로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14km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답니다. 시명봉은 입산이 금지되어 있어서 등산을 할 수 없지만 나머지 봉우리들을 연결하는 능선을 타고 가다보면 강원도 원주, 횡성, 영월 지방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국립공원 치악산 능선의 겨울 모습입니다.
국립공원 치악산 능선의 겨울 모습입니다. ⓒ 서종규
오전 11시 금대매표소를 출발하여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은 겨울 산 그대로였습니다. 사실 겨울 산행은 그 산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온통 벌거벗은 나무들이 시커멓게 서 있는 모습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소나무나 구상나무들이 있어서 푸름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 나무들마저 거의 검은 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답니다. 하여 사진기를 들이대면 대부분 메마른 풍경만 찍혀 나온답니다.

물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라면 환상의 설경을 접하겠지요. 아니 눈이 내린 다음날, 맑게 쏟아지는 햇살을 튀기는 눈과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루는 겨울 산의 모습은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겠지요.

상고대란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들이 나무에 서리처럼 붙어 있어서 흰 눈꽃의 세상을 이루는 풍광을 말한답니다.
상고대란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들이 나무에 서리처럼 붙어 있어서 흰 눈꽃의 세상을 이루는 풍광을 말한답니다. ⓒ 서종규
눈이 아니래도 1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게 되면 상고대라는 눈꽃이 피어 있답니다.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들이 나무에 서리처럼 붙어 있어서 흰 눈꽃의 세상을 이루는 풍광을 말한답니다. 이 눈꽃들이 나뭇가지에 두툼하게 감싸여 내려 녹다가 다시 얼어서 하얗거나 투명하게 된 것이지요. 상고대의 풍광으로 유명한 곳은 단연 덕유산, 태백산, 무등산, 소백산 그리고 이 치악산이랍니다.

겨울 날씨가 갑자기 풀리는 바람에 치악산 능선의 상고대는 그리 장관은 아니었답니다. 그보다 능선에 오르는 길에 날리는 싸락눈을 맞았답니다. 쨍쨍 쏟아지는 햇살과 푸른 하늘에서 무슨 싸락눈인가 우리들은 의아해했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상고대가 녹아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1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게 되면 상고대라는 눈꽃이 피어 있답니다.
1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게 되면 상고대라는 눈꽃이 피어 있답니다. ⓒ 서종규
이미 쌓여있는 눈 위에 상당히 많은 상고대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소리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답니다. 상고대의 환상적인 하얀 세상은 아니었지만 상고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남대봉 정상으로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오후 1시, 남대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도착하여 다시 옆으로 500m 정도 돌아가니 상원사가 나타났습니다. 높은 산 정상에 절이 세워져 있다는 것도 신기하답니다. 차도 오를 수 없는 산 정상 부근에 세워진 사찰들이라니.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니겠지요.

겨울 산행의 맛

은혜 갚은 꿩의 이야기로 치악산 상원사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절이 되었지요.
은혜 갚은 꿩의 이야기로 치악산 상원사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절이 되었지요. ⓒ 서종규
상원사 입구에는 약수터가 있어서 등산객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었겠지만 겨울이라서 얼어 있었답니다. 대웅전 앞에 은혜를 갚은 꿩 이야기를 기록한 '보은의 종 유래비’가 세워져 있었고, 종각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종각을 위하여 보시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검은 돌이 있었는데, 그 돌에 새겨진 사람 이름 앞에 무슨 아파트에 사는 아무개라는 것을 보면 종각의 종은 꿩이 치던 그 종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상원사를 둘러 본 뒤 다시 남대봉으로 향하였습니다. 남대봉에는 아직 상고대의 눈꽃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풀려버린 날씨 때문에 상고대 눈꽃의 장관은 아니었지만 향로봉으로 쭉 이어진 능선에는 아직도 흰 눈꽃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답니다.

환상적인 눈꽃 산행은 아니었지만 아쉬움을 조금 씻어 준 상고대를 따라 향로봉으로 향하였습니다. 능선으로 이어진 길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답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뒤를 따라 발자국을 내 디뎠습니다.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천지봉(1086m), 시명봉(1187m) 등으로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14km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답니다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천지봉(1086m), 시명봉(1187m) 등으로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14km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답니다 ⓒ 서종규
오후 4시 향로봉에 오르자 멀리 비로봉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뿌연 기운이 감싸고 있어서 맑게 보이지 않았답니다. 작년 비로봉에 올랐을 때,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어떤 여인을 만난 기억이 새롭습니다.

향로봉에서 비로봉을 향하지 못하고 국향사로 내려갔습니다. 어쩌면 겨울 산행은 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든지 모릅니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등산화 바닥에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요.

몸에 걸친 거추장스러운 것을 몽땅 다 벗어 버린 듯한 겨울 산행의 맛을 느끼며 보은사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있었습니다. 보은사에서 국향사를 거쳐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는 포장된 도로였답니다. 등산하다가 포장된 도로를 걷는 생경함을 속웃음으로 지으며 우리들은 해가 남기고 간 긴 꼬리를 밟으려 내려갔습니다.

상고대의 풍광으로 유명한 곳은 단연 덕유산, 태백산, 무등산, 소백산 그리고 이 치악산이랍니다.
상고대의 풍광으로 유명한 곳은 단연 덕유산, 태백산, 무등산, 소백산 그리고 이 치악산이랍니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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