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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 장면
ⓒ 부에나비스타 소셜 크럽
쿠바의 첫 인상은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를 통해서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의 음악인들과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운이 빠질 때 보면 가슴속에서 어떤 희망 같은 것이 피어오르곤 한다. 쿠바는 꿈 하나만을 믿고 버티어온 사람들의 나라로 다가왔다.

영화 속의 음악인들은 오랫동안 음악을 하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 봉쇄 때문이었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시작되자 쿠바는 절대 궁핍에 몰렸고 클럽들도 폐쇄되었다. 쿠바 최고의 가수는 거리에서 구두를 닦았고 쿠바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만져보지도 못했다. 라이쿠더와 빔밴더스의 제안으로 그들은 다시 모여 음악을 복원했고, 세계무대에 쿠바음악이 건재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부에나시스타 소셜클럽 멤버들은 유독 미국에서 공연하고 싶어 했다. 마침내 그들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했고 쿠바 국기를 휘날렸다. 자신들을 최악의 상태에 몰아넣었던 미국에서의 공연은 공연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들의 노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절대 굴하지 않은 쿠바의 불패선언이었다. 그들의 노래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자만이 갖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영화는 아바나의 대형 벽화를 비추며 끝난다. '혁명은 영원하다.'

이상주의자, 희망을 찾아나서다

▲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 유재현
유재현의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은 아직도 사회주의 혁명이 '진행 중인' 쿠바에 관한 기록이다.

1959년 쿠바에서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를 중심으로 한 혁명이 일어났다. 이 쿠바혁명은 친미독재정권을 무너뜨렸고, 쿠바는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코 앞에 존재하는 쿠바는 15년 넘게 미국의 정치적 압력과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다. 극심한 식량난과 기본 생필품을 제대로 수급할 수 없는 곤란 속에서도 국민의 대부분은 사회주의 노선이 옳다고 믿고 '자기의 방식'에 신념을 갖고 있다.

굶주리면서, 해어진 옷을 입고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쿠바의 사회주의는 야만적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해결책일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을 유재현은 쿠바 전역을 직접 찾아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쿠바에서 많은 희망을 본다. 그는 무엇보다도 쿠바가 '평등'을 실현하려는 면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다니면서도 나는 특별히 그늘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밝고 명랑했고 어른들은 무심했다. 물자부족을 칭송하거나 행복이 마음에 있다는 따위의 거짓을 늘어놓으려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단 한 가지는 사람들이 저마다 모두 평등하다고 믿고 또 현실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불만에 가득 차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해진 옷을 입고, 해진 신발을 신고 있는 사회는 모두가 멀쩡한 옷과 신발을 걸치고 있는데 단 한 사람만 남들보다 턱없이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사회보다 행복한 사회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언제나 평등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몇 해 전 민주노동당에서 이 슬로건을 내걸고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랐을 것이다. 도대체 가능하기라도 한 일이야? 네버(never)! 그러나 쿠바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실시되는 나라다. 국가재원은 없지만 제도로서 가능한 일이었다.

유재현은 관타나모에 갔다가 쿠바의 무상의료 현장을 보고 감탄한다. 이른바 '기적의 수술'이라고 불리는 의료 프로젝트다. 이는 카리브해와 중남미 지역에 사는 맹인이나 시력장애 환자들을 쿠바로 불러들여 눈을 뜨게 한다는 인도주의 프로젝트이다.

자금은 베네수엘라가 대고 쿠바에서 병원과 의료진, 환자와 보호자들의 숙식을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는 라틴 아메리카의 시각장애인 10만 명에게 빛을 주어 말 그대로 기적을 선물해 왔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의 풍요한 국가에서 날아온 작가는 '기적의 수술' 앞에서 놀라울 뿐이다. 자본주의는 과연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제도인가? 작가가 던지는 물음 앞에 우리는 할 말이 없어진다.

"자본주의란 말하자면 눈먼 심봉사를 위해 심청이 몸을 팔아야하는 체제다. 그 속에서 인도주의란 허영에 불과하다."

갑자기 한 방송사가 주관한 '눈을 떠요'라는 방송이 떠오른다. 방송사의 행운이 닿지 않았다면 그들은? 국민소득 2만 불,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쿠바의 의료제도가 비교된다.

사회주의의 뒷골목, 쿠바의 암시장

쿠바는 생필품을 배급제로 나눠주는 나라다. 모든 것이 모자라므로 평등하게 나눠 갖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부족한 물자는 암시장을 만들어 냈다. 작가는 쿠바의 암시장을 보면서 작가는 '혁명인 진행 중인 나라'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산 라파엘 거리의 국영식당에서 튀긴 닭다리를 먹고 내민 음식 값의 일부는 종업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닭을 팔아야 할 국영 상점에서 엉뚱하게 비닐봉지에 담긴 분유를 팔고 있었다. 여덟 살 미만 어린아이에게 배급되어야 할 분유였다.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도 열심히 도둑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작가는 암시장의 문제가 단지 물자의 부족이나 상업적 거래의 한 형태로 보지 않는다. 암시장의 태동은 불평등의 징후이고, 사회주의의 변질의 신호임을 불안한 눈길로 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인간이 이타와 도덕을 향해 걸어가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평등과 민주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다. 암시장의 논리란 이기심과 불평등의 논리이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도덕성은 인민의 수준에서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경제위기는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배급은 정상화되었고 풍족하진 않아도 식량위기는 극복했다. 그런데도 암시장은 없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틈만 나면 국영창고를 터는 인민들이 줄을 선다. 물론 아직도 어렵다. 풍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극단적인 위기에서는 탈출했는데 왜 암시장은 변함없이 건재하고 있을까."


이상사회의 실현은 어렵다. 도덕적 가치에 최우선을 두는 인간, 그리고 사회제도가 함께 갖추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쉽게 탐욕에 물들고, 아무리 좋은 제도도 성장의 논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다. 작가는 불안한 눈으로 쿠바를 바라본다.

유토피아는 가능할까?

쿠바 사회주의가 변치 않을 것인가? 에 대한 불안은 몇 가지 있다. 피델 카스트로 사후 중국식 개방으로 치달을 가능성, 이중 경제로 인한 모순, 곳곳에 자리한 암시장, 농산물 생산의 인센티브제… 등 쿠바에는 조금씩 자본주의가 스며들고 있다.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이기심, 탐욕과 경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다.

@BRI@희망의 근거로 그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 쿠바와 뜻을 같이 하는 이른바 좌파정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점을 든다. 작가는 쿠바가 비틀거리면서도 결국 목표를 이뤄낼 것이라 기대한다.

"혁명이 모욕당한 이 시대에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대륙이 되어가고 있다. 쿠바는 그런 라틴아메리카에서 지도적 위치로 부상하고 있다.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쿠바. 그런 국가가 차지한 위치로는 기이할 정도인데 이것은 지난 40여 년간 코앞에 있는 초강대국의 핍박과 맞서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사회주의를 지켜온 나라로서 가지는 이념적 지도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바람에 쿠바는 이념적 지주 역할 뿐 아니라 현실적 협력관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체 게바라의 꿈이 티셔츠에서 벗어나 라틴 아메리카의 땅에 입을 맞추게 될 지 누구도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그 꿈이 가장 현실에 근접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소득 2만 불을 말하지만 유례없이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생율의 나라다. 이 수치는 돈이 결코 행복을 말해 주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쿠바는 못사는 나라다. 인구의 대부분이 해진 옷을 입고 다니는 나라. 그러나 우리의 풍요가 자부심으로 연결되기는 힘들다는 것을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달러로 환산된 수치만으로 그 나라를 평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평균임금 1만 2천원과 217만 5천원 사이에 181배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한 아이의 교육비에 1억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하는 사회와 한 푼도 지출하지 않는 사회 사이에는 몇 배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외진 두메산골의 보건소에 의사와 치과의사, 간호원 한명을 두는 사회와 의사를 찾기 위해 읍으로 도시로 향해야 하는 사회 사이에는 몇 배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작가는 '겨우 몰락을 면하고' 살아난 지구 반대편의 이 이상한 나라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우리에게 있을까? 라고 묻는다. 그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다.

유재현의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은 단순한 기행서가 아니다. 우리의 오늘을 묻고 인간에게 바람직한 사회는 과연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묵직한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유재현의 다른 책 <메콩강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역시 지역과 사회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유재현 지음, 강(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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