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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지구상에서 위도상 15~20도의 아열대지역 이상의 지역에서 나타나는 기후 현상이다. 물론 지역마다 겨울에 느끼는 온도와 추위의 정도가 다르며 기상현상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열대지역에도 겨울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온도와 추위의 정도가 여타 지역과 다를 것이다.

겨울은 흔히 상대적으로 낮은 기온과 추위와 눈 등으로 나타나며, 잎새들이 낙엽되어 떨어진 벗은 나목들을 생각나게 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도 겨울의 주요 관심사의 하나다. 우리에게 겨울에 기억되는 익숙한 말들과 기억들은 군밤, 군고구마, 화롯불, 메밀묵과 찹쌀떡, 눈사람과 눈싸움, 썰매와 스키, 크리스마스와 선물, 파란 보리밭과 수숫대 화살, 불깡통과 대보름, 연날리기 등 수없이 많다.

@BRI@그런데 많은 경우 겨울은 봄이나 여름에 비해 움츠려들고, 만상의 활동성이 적은 계절, 생산과 탄소동화작용이 적은 계절로 이해되고 있다. '침묵하는 겨울' 또는 '내 인생의 겨울'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겨울은 조금은 비활동적이고 약간 어스름한 시간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젊은 날 흔히 '무슨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다. 겨울의 쌀쌀하고 명징한 날씨와 푸른 하늘을 좋아했다. 특히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 조금의 망설임이나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 청명한 날을 좋아했다.

이때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목표를 정하고 곧추 걸어가거나 달려간다. 망설이거나 서성거리는 사람을 이 추운 날에는 보기 힘들다. 많은 세상사로 망설이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찬 이 겨울날은 결정하고 행동하고 뛰게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실내에 들어와 따끈한 한 잔의 차를 손에 들고 묵상하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이 겨울은 우리에게 준다.

겨울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어쩌면 우리들에게 깊은 사색과 침묵과 침잠의 시간을 갖게 하는지 모른다. 겨울은 겉으로 왕성하게 성장하는 여름보다는 내적으로 명상하고 침묵하며 치열하게 뿌리에서 가지, 줄기로 영양을 공급하는 나목처럼 안으로 성장하는 시간인지 모른다.

찬연히 꽃필 봄날을 위해 겨울은 또 그렇게 깊은 기다림과 어둠의 시간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며, 긴 기다림 없는 사랑과 성취가 어디 있으랴? 오랜 내적 기다림과 축적과 연마와 인고의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은 조용히 자라고 빛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겨울의 미학은 무엇보다도 기적처럼 내리는 저 첫눈의 화려한 군무에 있을 것이다. 천군만마가 질풍처럼 달려오는 듯한 수많은 정령들의 내려옴과 대기를 흔들고, 춤추며, 뛰놀고, 흔들거리고, 손뼉치고, 노래하는 저 첫눈, 그 함박눈의 휘황한 춤사위는 진정 겨울의 위대한 서사시일 것이다.

'백설부'에서 김진섭은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니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였으니, 부드러운 설편(雪片)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지를 때, 우리는 어찌된 연유(緣由)인지 부지중(不知中) 온화하게 된 마음과 인간다운 색채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내리는 눈발에서 의기소침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사람이고 강아지고 모두를 뛰놀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눈은 가지고 있다. 더러운 것을 덮고 추한 것들까지도 아름답게 꾸며 삼라만상을 거듭나게 하는 위대한 힘과 창조적 신비를 보여준다. 내리는 눈발은 모두를 용서하고 되돌아 보게한다. 더 관대하고 더 너그럽게 물상과 사람을 대하게 한다. 그래서 미당은 내리는 눈발에서 "괜찮다"란 수없는 노래들을 발견한 것이리라.

정지용의 '향수'는 시골의 겨울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을 겨울의 정취로 제시하고 있다.

고교시절에 배운 김종서의 시조는 겨울을 뚫고 용솟음하는 장부의 기개를 보여주며 두 손을 불끈 쥐고 미래를 응사하던 기억이 새롭다. "삯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애라."

그러나 누구도 겨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그것이 봄과 여름을 위한 성숙과 기다림을 전제할 때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셀리는 "계절의 나팔소리/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고 봄을 그리는 겨울의 마음을 노래했다.

4계절은 각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겨울은 내밀한 성장과 기다림의 계절이며 힘과 역량을 비축하고 개화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흰눈과 나목처럼 자연과 더 가까이 알몸으로 만나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중앙일보>(밴쿠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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