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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의 소파에 누워서 자는 취객.
지구대의 소파에 누워서 자는 취객. ⓒ 김재경

7평 남짓한 공간에 은행 창구처럼 테이블과 긴 소파가 있다. 소파는 이미 만취한 취객 차지가 되었고, 테이블에는 혈기 왕성한 남성이 목소리를 높인다. 길가에 쓰러져 있던 취객이다.

사건사고가 많은 안양지구대 사무실의 밤풍경이다. 이날 경찰은 112신고를 받고 길가의 취객을 지구대에 데려왔다. 그냥 두면, 동사의 우려가 있어서 데려왔다고 한다.

그의 신분을 확인하는 동안 늙수레한 박물장수가 머리에 이고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들어와 대소쿠리와 체·키·주걱 등 잡다한 생활용품들을 소파에 던져놓고 안으로 황급히 들어간다.

"아자씨! 나 화장실 좀 갈라요…. 아이고, 으~메, 문이 안 열려."

그는 꽝꽝 사정없이 샷시를 두드린다. 안양역전에 있다보니 하루에도 수없이 드나드는 인파로 화장실은 이미 공중 화장실 수준. 때때로 제때 물을 내리지 않아 지린내가 진동하고, 업무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한다.

취객에 화장실 이용객에... "공권력도 힘들다"

@BRI@하루 3교대 근무를 하는 지구대의 하루는 택시요금 시비, 교통사고 처리, 음주단속, 미아·가출인 신고 접수, 폭력, 술값 시비, 도난, 변사체 처리. 주워온 핸드폰·지갑 주인 찾아주기 등등 쉴 틈 없는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112신고센터로 사건이 접수되면 5분 이내에 신속한 출동하는 것이 목표지만,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때는 3대의 순찰차로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사건현장에 출동하면 패싸움이 비일비재하고, 서로 맞았다고 주장하는 고성만이 난무하다. 경찰도 현장을 보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다고.

어쩔 수 없이 쌍방 피해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계급장 떼이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빈병을 깨서 위협하거나 흉기 들고 난동부리며, 의자 집어 던지고 경찰 멱살잡는 것은 허다한 일상이라고 한다.

지구대에 연행되어 와서도 큰소리치며 "나 아무개인데 너 두고보자"고 하는 협박에 이젠 만성이 되었다고 말하는 경찰들이다. 제일 기분나쁠 때는 부모를 욕할 때라고.

경찰들은 "자식보다도 어린 청소년한테까지 듣는 폭언은 이미 만성이 되었지만, 민주경찰은 폭력을 쓰진 않는다"며 "CCTV 화면으로 상황 보면 얼마나 가관인지 모른다"고 허탈해 했다.

지구대에서 만난 한 경찰은 "군인은 가상훈련이지만 우리는 실전이다"며 "공권력을 무시해도 되는 걸로 아는 시대가 개탄스럽다, 공권력이 약해지면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한탄했다.

"공권력 무너지면 피해자는 국민이다"

최근의 사건을 몇 가지 더 들어보자.

얼마 전에는 부도를 낸 사람이 잠적하자 월세를 못 받은 주인이 자물쇠로 문을 잠궜다. 납품업자는 자물쇠를 열고 경찰 입회하에 가게 물건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민사관계에서 경찰이 개입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법적 절차를 밟으라고 했지만 그는 "야! 너희는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잖아, 왜 이걸 해결 안 해주냐"며 항의했다.

그러나 시민 제보와 지구대의 발빠른 대응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엔 안양9동에서 "수상한 사람이 베란다를 타고 올라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즉시 출동했지만 이미 2층이 털린 후였다. 주변을 탐색하는데 용의자가 가스배관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는 경찰이 온 낌새를 채고 뛰어내려 인근 학교 뒤편으로 도망갔지만 경찰은 결국 용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쳐다봤다고 시비걸고 어깨 부딪혔다고 싸우고, 지구대의 90% 정도는 술기운에 객기를 부리는 취객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술 마시다가 시비가 발생됐는데, 회칼을 휘두르며 경찰에 대항하기도 했다.

범인을 검거하는 형사들.
범인을 검거하는 형사들. ⓒ 안양경찰서
1년 365일 휴일없는 지구대

112신고센터와 지구대가 가장 바쁜 시간은 모두가 잠든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특히 연말이나 연휴 전야의 금. 토요일은 밤마다 반복되는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경찰들도 서서히 지쳐간다.

순찰차에 동승해 1년 365일 휴일 없는 지구대의 면모를 체험한 시간은 밤 11경이다. 순찰차 안에서는 "서른하나. 00고시원 업무방해…" 등 경찰만의 고유음어로 출동 지령이 계속되고 있었다.

"삼성래미안 아파트 열 살 아이가 3시에 나갔다는데 아직도 안 들어왔다네요."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즉시 출동하여 무인시스템 벨을 눌렀다. 집에 있던 어린이가 "엄마는 동생 찾아 안양역으로 갔어요"라고 말한다. 곁에는 방송을 듣고 나온 한 주민이 걱정스레 서성인다.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찾아보겠으니 지구대로 오세요"라며 차를 돌린다.

이럴 때는 아이의 인상착의를 전 지구대에 알리고, 그래도 못 찾을 경우 전국미아 찾기 센터에 등록하게 된다고 한다. "사건사고가 아니면 친구 집이나 pc방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기자에게 설명하는 도중 "아이를 찾았다"는 전화가 왔다.

지구대를 나오며 "국민의 인권과 권리도 보호되어야겠지만, 공권력이 존중되어야 한다"던 일선 경찰관의 목소리가 귓전에 메아리친다.

경찰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늘어갈수록 사기가 떨어짐은 물론이고, 공무집행방해 외엔 여기에 딱히 대응할 뚜렷한 방법이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하는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연합교육신문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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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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