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고건 전 총리가 16일 오후 대선불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고 전 총리 지지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하지 못하도록 고 전 총리의 기자회견장 입장을 가로막자 고 전 총리가 차에 오른 채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통령 선거전에서 벌써 한 유력 후보가 뜻을 접었다. 고건(GK) 전 국무총리가 보름여 침잠하더니 대선 불출마라는 결단 아닌 결단을 내렸다. 여러 가지 벽과 압력을 견디지 못해서 중도하차한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잠룡들이 탈락하거나 연대할지 올 한 해 동안 펼쳐질 대 드라마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GK의 불출마 선언은 요동치는 대선 정국의 한 단면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상당 기간 국민 여론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해 온 후보였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는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면서 스스로 내려 앉았다.

고건 "국회의원들이란 참 알 수 없는 사람들"

@BRI@내가 최근 그에게서 직접 들은 사퇴의 변은 간단하지만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현실정치의 벽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들이란 참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끝까지 저울질하고 재보고 실천을 안한다."

이 말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재 여권의 다수 국회의원들이 창조적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따라 강남가기 식으로 대세 관망 수준에서 헤매고 있다는 얘기다. 이때 여권이란 열린우리당과 함께 민주당 등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치세력을 총칭한다.

정치철학에 따라 목표를 설정한 뒤 그것에 합당한 실천수단을 강구하고 그것을 이행함으로써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창조적 정치이다. 그러나 지금의 여권이 나아가는 방향은 뜻있는 정치인들에 의해 조형되는 게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대세 추종에 불과하다.

현실정치란 무엇보다도 경쟁상대를 쓰러트릴 줄 아는 투사형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럴 듯한 정책 능력이나 전문성도 일단 경쟁에서 이기고 자기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는 곳이 정치판이다.

인격과 덕망이니, 양보나 살신성인 같은 것은 윤리의 영역에서나 미덕이지 정치판에서는 패배의 신호일 뿐이다. 체면차리지 않고 자기 앞에 큰 떡을 끌어다 놓을 줄 알아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를 윤리의 영역에서 분리시킨 마키아벨리야말로 현실주의의 시조였다.

그래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예측성과 불확실성에 지배돼 있는 것이 현재의 여권 상황이다. 제아무리 참신하고 경륜을 갖춘 지도자가 있다 한들 이런 곳에 들어오려 할 리가 없다.

피땀을 흘려도 그만큼 성과가 나올지 말지 알 수 없는 게임에 몸 던지는 사람은 바보 아니겠는가. GK는 자신이 현실정치에 맞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또 다른 인물인들 나서려 하겠는가. 이 점에서 여권 정치인들은 크게 성찰해야 한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기성 여권 정치인 모두가 살신성인 정신으로 기득권을 던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선거는 하나마나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당을 창당하는 것과 정권을 재창출하는 길은 차원이 다르다. 정체성이 분명한 정당을 뿌리내리는 것이 목표라면 대중적 지지를 핵심으로 한 정권 재창출 기획은 그 보다 후 순위로 밀려난다. 여기서는 원칙과 선비정신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일단 수구 보수진영으로 넘어갈 경우 민주개혁 정당을 발전시키는 일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상황이다. 그래서 정권 재창출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상인적 현실감각이 더 중요하다.

"정치활동 뒷받침할 재정이 없어"

그는 또 "정치활동을 뒷받침할 만한 재정능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바로 정치자금, 돈 얘기다. 정치인들은 '선거라는 전쟁에서 싸우는데 필수인 실탄이 돈'이라는 얘기를 지금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실제로 돈이 없으면 기본 인력, 조직, 활동력을 얻어낼 수가 없다. GK 진영에는 상근 보좌진 인력이 취약했다. 다른 대선 주자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엉성했다.

정부나 정당은 기본적인 시스템이 상시적으로 가동된다. 그래서 모든 이슈에 대해 그때 그때 진단과 처방을 담은 논평이나 성명서 같은 것이 나온다.

그러나 GK 진영은 그런 기본적인 메시지조차 제대로 발표하지 못했다. 그 일을 담당할 상근 인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영역별 조직을 꾸리지 못한 진영으로서는 공중전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필수적인 인력이었다.

GK는 "그럴 만한 재정능력이 없어…"라고 실토했다. 일정한 수준의 국민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돈을 갖지 못해서 나서지 못했다면 이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고쳐야 할 것이다. 돈 안드는 정치 공영제를 완벽하게 확립하든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정치자금을 적절히 조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많은 장외의 기대주들이 돈 때문에 들어오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문제를 법제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해결하지 않고서는 유망주를 모셔 올 수 없을 것이다.

독자적인 제3당 창당으로는 안돼

ⓒ 오마이뉴스 이종호
GK는 불출마의 세 번째 이유로 대통령선거를 위해서 또 하나의 정당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정치세력의 대통합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GK 진영의 일부 인사들은 독자 창당을 건의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국회의원들이 관망만 하고 있으니까 각 지역별로 결성된 자발적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정당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생 정치세력이 기성 정당의 방식으로는 앞서 있는 기성 정당들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구 정치권과 다른 방식으로 국민의 눈에 띠어야 한다.

거대 정당이나 카리스마적인 권력자가 오랫동안 정치를 독점한 이후엔 국민들이 언제나 기성 정당과 다른 탈정치적인 흐름을 희구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었다. 프랑스에서 드골 대통령이나 일본에서 거대 자민당의 강력한 집권 이후 등장한 '국민연합'이 좋은 예일 것이다.

GK는 제3당을 창당해서는 대선에서 이길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1992년 국민당이나 2002년 '국민승리 21' 같은 정당이 바로 대선 정국에서 제3당에 해당한다. 미국에서도 양당제로 정립된 민주당과 공화당 이외에 제3당 후보는 대통령 선거에서 다수 득표를 한 적이 없다.

여권, 창조적으로 국민후보 만들어 집권 경쟁해야

GK 불출마는 결과론이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우선 그는 정치철학과 실천 영역에서 자신의 지지기반과 이질적이었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강행 때 드러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그의 발언이 한 증거다. 그는 햇볕정책을 이제 가을햇볕 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의 지지자들 중엔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북한이 비록 핵 실험을 강행했지만 햇볕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 그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른 게 현실이었다. 당시 GK의 논평은 자신의 지지자들의 시각과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층을 새로이 자신의 지지자로 얻은 것도 결코 아니었다. 한마디로 집토끼 잃고 산토끼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결과였다.

지난해 말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국무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였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을 때 그에 대응한 것도 같은 결과를 낳았다. 기존의 지지자들은 떨어져 나갔지만 새로운 득표는 없었다. 일각에서는 기왕 하려면 강하게 대항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여권은 막연하게나마 기대해 왔던 유력 후보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대안 인물을 찾는데 허둥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론 지금 여권도 정치의 베테랑들인데 그럴리는 없다. GK의 일을 거울삼아 더 이상 시행착오가 없는 후보를 만들어내야 한다.

▲ 김재홍 의원
통합당은 반드시 기성의 정당처럼 조직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국민후보를 중심으로 범양심세력이 함께 손잡고 대선을 치를 수 있는 연대기구면 될 것이다.

여권의 국민후보는 철학과 실천 면에서 민주개혁 진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집토끼는 확실하게 지키고 산토끼를 새로이 잡을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말처럼 쉬울 리 없지만 모두가 깊이 성찰하면서 합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재홍 시민기자는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경기대 교수 출신으로 현재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