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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리그 선수들
ⓒ 장승현
어느덧 시골로 이사한 지 5년이 되었다. 처음 시골로 이사할 때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중 하나가 아이들 교육 문제였다. 앞서 대안학교니, 시골학교니 많은 고민들을 했다. 과연 현 제도권교육이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쳐야 하는 교육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야 하는 교육인지 많은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BRI@결국 귀향했다. 아이들은 내가 졸업한 시골학교로 진학시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첫째 놈을 유치원에 보냈다. 다섯 살 때였던가. 내가 35년 전 다녔던 학교의 병설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얼마나 감격을 했는지 아내는 모를 것이다. 35년 전에 불렀던 '오봉산 줄기'로 시작하는 교가를 아이 병설유치원 입학식에 가서 불렀던 기억은 지금도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 병설 유치원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전체 아이들이 12명이었는데 그중 다섯 살짜리 아들 또래는 전체 두 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아주 어린 아이이거나 5명이나 되는 1년 위 형아들이었다. 그 또래들 사이에서 아이는 치이기 시작했다. 계속 치이면서 노는데 흥미를 잃었다. 형아들한테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존심 세며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가 그 틈에서 생활하기란 힘들었다.

▲ 슛하는 석광군
ⓒ 장승현

▲ 오버액션하는 성욱군
ⓒ 장승현
그래서 아내의 학원이 있는 읍내 큰 학교로 옮겼다. 입학을 하고 2년 동안 읍내 학교에서 다녔는데 성욱이는 읍내 학교에서도 적응을 못했다. 결국 2년 만에 다시 이곳 시골학교로 전학을 왔다. 아이의 의사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콩나물 같은 읍내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 월드컵에서 배운 성안군의 수비자세
ⓒ 장승현
시골학교는 반 학생수가 10여 명 정도였고, 컴퓨터는 아이들 숫자대로 있었다. 읍내 학교마냥 공부를 시키지 않고, 아이가 마음껏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시골학교에는 잔디구장이 있어 아이들이 축구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전학을 하자 큰아들 성욱이는 금방 아이들과 친해졌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라 오자마자 축구모임을 조직했다. 전교생이 60명 정도로 별로 축구를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3학년 성욱이가 오고부터 전교에 축구붐이 일기 시작했다.

▲ 슛하는 성안군
ⓒ 장승현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여자아이들 빼면 축구경기 할 인원은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두 모으는 것도 모자라, 유치원 다니는 막내 성안이까지 포함시키기도 했다.

한 가지 문제는 성욱이가 전학한 후 학교 주변에서 학원을 하는 후배한테 항의를 받은 일이다. 학원도 안 다니는 성욱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축구하는 바람에 학원 문 닫게 생겼다고 투덜댄 일이다.

연기리그 주축(?) 선수들

▲장성욱(10세) 3학년. 빨강 유니폼. 연기리그 1위(자칭). 축구 경력 6년. 공격수로 개인기를 조금 부림. 특기는 성깔이 있어 축구할 때 자기가 대장임 ▲장석광(10세) 3학년. 연두색 유니폼. 연기리그 3위. 맨발의 선수. 알고 봤더니 내 초등학교 동창 아들임 ▲이홍주(10세) 3학년. 노랑 유니폼. 연기리그 랭킹 2위. 미드필더로 장성욱과 콤비. 힘이 좋고 주력이 좋음 ▲장성안(7세) 유치원생. 작은 연두색 유니폼. 연기 2부리그(유치원에서 2위, 참고로 유치원은 남자가 셋, 다섯 살 포함). 후보 선수, 형아들이 축구할 때 사람이 없으니까 여기저기 끼워 넣기 선수임. 주력은 운동회 때 달리기 3위(4명이 뛰었음, 물론 상을 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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