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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남은 실 짜투리
짜고 남은 실 짜투리 ⓒ 박명순
어쩌면 우리 서로 원했던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한 코 한 코 고리를 지어 단이 쌓여갈 때마다 미움은 뭉개지고 사랑의 싹이 텄다. 사랑의 싹을 엮어 내 마음을 담아 모두 드리리. 목도리의 포근함이 당신의 목을 감쌀 때마다, 며느리에 대한 야멸친 마음도 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리겠지.

드디어 생신 날 저녁, 조촐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 온 가족이 모였다. 온 가족이라야 매일 밥숟갈 부딪치며 사는 우리 식구가 전부지만, 찾아오지 않는 다른 자식들에 대한 미움을 접고 아주 오랜만에 어머니는 아이처럼 선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들의 축가와 케이크 컷팅이 모두 끝나자 돈 봉투와 함께 식탁 밑에 꼭꼭 숨겨 두었던 꾸러미를 내밀었다. 상장을 주고받듯, 얼떨결에 내민 어머니의 두 손이 멋쩍었다. 까르르 한바탕 웃음이 봇물처럼 터졌고, 어머니는 목에 두른 목도리를 연방 만지작거렸었다.

서랍 속에서 처방전을 찾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잘 있을 줄 알았던 목도리는 아무도 모른단다. 내 공로가 물거품이 되는 게 속상한 것보다, 내게 미안해 할 어머니가 먼저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울상을 지으며 며칠 동안 끌탕을 했다.

"아이고, 분명히 내 옆에 있는 그 늙은이가 들고 갔을 거야. 왜 남의 것을 탐하고 그래. 그러니까, 늙으면 다 죽어야 한다니까."

"차라리 잘 됐어요, 어머니. 또 짜 드릴게요. 어차피 어머니한테 색깔도 잘 안 어울리고. 제가 잘 몰라서 너무 두껍게 짰어요. 담엔 아주 촘촘하고 얇게 짜 드릴게요. 그 할머니한테 어머니가 선물한 거라 생각해요. 알았죠?"

"내가 에미한테 미안해서 그렇쟈."


사랑이 별건가. 서로 걱정하고 미안해 하는 이런 마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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