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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아침에 동네 오봉산에서
ⓒ 장승현
작년 7월 어느 날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처럼 참담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난 병마와 싸우면서 참으로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도 이처럼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에게 아니, 어디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암이라는 존재가 내 운명에 딱, 나타난 것이었다.

위암. 현재 인류한테 제일 무섭다는 병이 나한테도 나타나다니, 정말 힘이 들었다. 어떻게 그 상황을 추슬러야 할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한테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게 제일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난 될 수 있으면 사람들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다. 함께 목조주택 일을 하던 후배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형, 형이 무슨 이순신이야. 알리지 말라고 하게."

@BRI@내가 제일 두려운 게 사람들이 보통 암에 걸렸다고 하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보통 암에 걸렸다고 하면 금방 사람이 죽는 것처럼, 심지어 무슨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었다.

죽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는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게 삶에 대한 희망일 것 같았다. 어떤 철없는 후배는 전화를 하더니, "형, 언제까지 산대?"하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고는 한동안 말을 못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놈도 참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얼마 못 산다고 해도 당사자한테 그 소리를 묻는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알지를 못했다.

소문은 밑바닥에 흐르는 물처럼 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걱정하는 전화와 병실에 병문안이 끊이질 않았다. 무려 병실에 던져놓고 간 돈만 해도 600만원이 넘어 병원비를 하고도 남을 정도의 온정이 모이기도 했다.

참 그러면서도 사람들한테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죽어서도 이처럼 사람들이 슬퍼하고 걱정을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고맙기도 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할까?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내 가족들과 형제들은 내가 없어지면 얼마나 슬퍼질까?

사람이 먹고 싸고 하는 게 이처럼 중요한 줄이야...

병원에서는 나의 병이 위에 유문부, 위와 소장이 연결되는 부분에 위암이 생겼다고 했다. 그 부분에 위궤양과 함께 나타난 위암 때문에 우선 위를 삼분의 이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위를 잘라내고 소장과 직접 이어내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실에 올라가는 건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 수술이야 내가 살아오면서 50여 번은 해왔으니까. 그러나 이번에 나타난 위암이라는 놈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수술을 하고 나서 한동안은 힘이 들었다. 사람의 장기 중에서 위라는 걸 삼분의 이를 잘라내니 밥을 먹는 데 힘이 들었다. 사람이 먹고 싸고 하는 게 이처럼 중요한 줄은 이번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먹고 잘 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위암은 다른 암보다 완치율이 높다고 한다. 그렇지만 암이란 5년이 넘어야 완치되었다고 본다. 얼마 전에는 어떤 정치인이 15년이나 지나서 암이 재발해 죽은 적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정말 암이란 무서운 병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암을 키우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암이란 생각을 할 때마다 앞이 캄캄하고 두렵기도 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다. 아니 어려서부터 죽음이라는 걸 많이 생각을 해봤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죽음을 생각해보진 못했다.

처음 병을 알았을 때 내가 죽는다는 게 너무나 억울했다. 내가 좀더 살아야 하는데,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남아 있는데, 너무나 아쉬운 생이었다. 처음에는 2년만 아니 5년만, 10년만 더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삶을 더 치열하게 살지 못하고 알차게 살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

나에게도 2007년이라는 시간이 있구나!

이젠 수술한 지 6개월이 지나갔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처음 항암치료 받고 방사선 치료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한 것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되었다. 요즘은 현장에 다니며 망치질이며 집짓는 일을 다시 하고 다닌다. 밥도 거의 한 공기씩 먹고, 몸무게도 7킬로그램이나 빠졌었는데 요즘은 3킬로그램 정도 다시 복원하고 있다.

퇴원하면서 병원에서 2007년 2월에 검사날짜를 예약했다. 이 예약 날짜를 보고 너무나 고마웠었다. 나에게도 2007년이라는 시간이 있구나. 그때까지 살 수 있구나.

2007년이라는 새해에까지 내가 살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그런데 이젠 2007년의 새해를 넘겼고, 얼마 있으면 또 다른 2008년이 되니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요즘은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죽음이 온다면 담담하게 맞이하자.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내가 그 운명이라는 걸 버틴다고 해봤자 인간의 능력으로 한계가 있으니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안에 평화가 오고 좀 더 당당해졌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내 욕심인 것 같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내가 더 살아야 한다는 것도 욕심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 내 삶을 더 아름답고 멋있게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그놈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때는 자신있게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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