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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일본의 후지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전차남>.
ⓒ 후지TV
실화를 바탕으로 해 2005년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이야기 <전차남(電車男)>. 지난해에는 소설에 이어 드라마와 영화가 국내에 상륙했다.

연애라곤 해본 적 없는 한 남성이 사랑을 시작하면서 '독신남(獨身男)'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게시판에 도움을 청하고, 누리꾼들은 그를 '전차남'이라 부르며 진심어린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전차남'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내내 '지지집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왜 '전차남'을 도왔을까?

"인터넷은 '자원 봉사'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차남'을 돕는 누리꾼들의 모습은 '인터넷에서의 이타주의'가 여실히 드러난 사례다. 만약 오프라인 상이었다면, 서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역시 생면부지인 '전차남'을 돕기 위해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패트리샤 월리스는 자신의 저서 <인터넷 심리학>에서 "인터넷 (심리) 공간은 공격성이 많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타성 또한 많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누리꾼들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커뮤니티의 운영자 등으로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는 "인터넷이 자원 봉사의 측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전차남>에서 '전차남'에게 도움을 주는 '독신남 게시판'도 이름 그대로 '독신남을 위해' 운영자가 만든 공간이다.

▲ 영화 <전차남>에서 '전차남'을 돕는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
ⓒ MK픽쳐스
그렇다면, 이렇게 인터넷에서 이타 행동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패트리샤 월리스는 이타 행동에는 여러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데, 인터넷에서는 '사람의 수'와 '유사성', '익명성' 등 때문에 남을 돕는 행동이 더 잘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패트리샤 월리스의 <인터넷 심리학>

패트리샤 월리스의 <인터넷 심리학>은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심리를 고찰하는 책이다.

이 책은 2001년 출간돼 이후 급변한 인터넷 환경은 찾아볼 수 없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 행동 심리', '인터넷에서의 이타주의', '인터넷상에서의 성 정체성' 등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인터넷 심리를 온전히 담고 있다.

실제로 한림대 '인터넷 미디어 전공'의 여러 강좌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메리랜드 대학에 있는 로버트 스미스 경영대학원의 '지식 정보 경영 연구소' 소장이다.
/ 이덕원
① 사람의 수

먼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같이 있는 사람의 수'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책임감도 더 커져 남을 도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같이 있는 사람의 수가 시시각각 변하는데다, '실제' 참여자 또한 명확하지 않아 사람들이 작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실제로 드라마 <전차남>에서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 중 '한신 타이거즈 광팬'은 갑자기 컴퓨터가 고장 나자 "전차(전차남)는 '내 도움'을 필요로한다"며 불안해한다. 같은 맥락에서 같이 있는 사람의 수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내가 도와야 한다'고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② 유사성

또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 돕는다고 한다. 특히 인구통계학적 속성이 불분명한 인터넷에서는 태도와 관심이 중요한데,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만나는 같은 공간만으로도 자신과 유사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전차남>에서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이 '전차남'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도 '유사성'에 기인한다.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은 대부분이 독신남인데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게다가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에서지만 공통적으로 폐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③ 익명성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익명성'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문제나 관심사가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면대면 관계에서 벗어나 인터넷에서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지지집단으로 적합하다고 한다.

<전차남>에서 '전차남'도 사랑을 시작하며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폐쇄적인 '오타쿠'의 특성상 주위에 의논할 만한 사람이 없을 뿐더러, 있더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익명성이 보장된 '독신남 게시판'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것이다. 역시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이 '전차남'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것도 인터넷의 익명성 덕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꾼들은 '또 다른 전차남'을 도와

▲ '내공(마일리지)'이 안 걸려도 돕는다.(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오늘날의 인터넷은 분명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와 같다. 인터넷에서 드러나는 사람들 이면의 '공격성'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의 얼굴은 이렇듯 이타주의의 모습이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꾼들은 인터넷 곳곳에서 '또 다른 전차남'을 돕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판이나 포털사이트의 서비스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말이다.

인터넷 검색기업 구글(Google)의 대표 '에릭 슈미트'는 "인터넷은 처음으로 자기 힘을 실험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다. 더욱이 훗날의 인터넷은 후자의 따듯한 얼굴만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 까닭이다.

'2005년 일본 최고의 문화상품' <전차남>
드라마 <전차남>, 종영 후에도 '특별 편' 이어져 여전히 인기

'2005년 일본 최고의 문화상품'. <전차남>에 자주 붙는 수식어다. 소설에 이어 영화와 드라마, 만화, 연극으로 만들어져 하나같이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에 소설과 영화 모두 밀리언셀러가 됐고, 이후 후지TV에서 방영된 드라마도 매회 평균 2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차남>은 일본 웹사이트 'Ch2'의 '독신남(獨身男)'이라는 게시판에서 2004년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야기는 '애니메이션·게임 오타쿠(마니아보다 한 분야에 심취해 있는 사람)'인 남성이 우연히 지하철에서 취객으로부터 미모의 여성을 구하고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연애경험이 전무한 그는 '독신남 게시판'에 도움을 청해 누리꾼들에게 용기를 얻고,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다.

지난해에는 국내에서도 케이블.위성TV '온스타일'을 통해 드라마가 방영된 데 이어 영화도 개봉하면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이토 미사키(에르메스 분)와 이토 아츠시(전차남 분) 주연의 드라마 <전차남>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일드(일본드라마) 마니아'의 증가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드라마는 종영 후에도 '특별 편'이 이어져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종영 1년여만인 지난 9월 방송된 특별 편 '최후의 성전'이 방송된 데 이어 마지막 장면을 보면 추가 '특별 편'도 제작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이덕원

태그:#전차남, #인터넷 이타주의, #인터넷, #독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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