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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씨 같은 포근한 날이 지속되더니 어제(6일)부터 눈발이 거세지고 바람이 분다. 낮엔 눈이 내렸다 그쳤다 하더니 밤이 되자 어둠 속을 활개 치는 나방들처럼 허공을 맴돌더니 이내 차창에 부딪쳐 소멸하고 만다.
그 눈발을 헤치고 걱정과 우려하는 마음을 갖고 직원 동료의 아들 돌잔치에 갔다. 가까이 살고 있어 아내도 안면이 있는지라 온 식구를 대동하고 가는데 내심 걱정이 되었다. 10년이 넘은 고물차(내 애마)가 제대로 잘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1년 전에도 처제 집에 갔다가 살짝 쌓인 눈에도 차가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받은 적이 있어 다음 날 타이어를 교체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요즘도 눈이 와 빙판길이 예상되면 차를 놓고 다녔다. 이번에 초저녁이라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 축하를 해주고 여덟 시가 못 돼 밖으로 나오는데 도로엔 이미 눈이 상당히 쌓여 있었다.
아이들은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함성을 지르고 그 밤에도 눈을 뭉쳐 던지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내도 걱정이 되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괜찮겠어? 좀 더 일찍 나올 걸 그랬나봐."
"괜찮아. 도로만 얼지 않았으면."
눈이 많이 와서인지 도로는 한산했다. 운전하는데도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거의 다 와서 발생했다. 15도 정도 기울어진 큰 도로에서 차는 멈춰 서서 제자리걸음만 했다. 앞차가 멈춰서는 바람에 잠시 멈추었다 출발하려 했지만 바퀴는 헛바퀴질만 해댔다.
그렇게 한 20분 동안 헛바퀴질을 해대자 아이들은 집에 언제 가냐며 재촉하고 아내는 "괜찮겠어?"만 연발하며 날 쳐다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보다 못했는지 아내가 차에서 내려 밀겠다고 한다.
"내가 뒤에서 밀어볼게."
"관둬. 민다고 되겠어? 다시 한 번 해보지 뭐."
뒤로 약간 후진한 다음 다시 출발을 하려 하지만 여전히 헛바퀴만 돌고 매캐한 냄새만 풍겨왔다. 잠시 차에서 내려 바닥을 밟아보니 얼음이 얼려 있었다. 주변엔 내 차 외에 다른 차도 붕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헛바퀴질로 붕붕거리면서도 내 차 옆을 지났다. 내 차보다 작은 차도 도로를 박차고 올라갔다. 트럭도 지나갔다.
'아니, 저런 차도 다 지나가는데 내 차는 이게 뭐야.'
속으로 중얼중얼 해보지만 속절없었다. 눈발은 계속 퍼붓지, 차는 제자리걸음이지, 보다 못했는지 아내가 차문을 열고 내리더니 밀어보겠다고 한다. 관두고 타라고 해도 "혹시 알아?" 하곤 내려 버렸다.
아내는 뒤에서 차를 밀고 난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뭔가 이상해 밖으로 나가니 아내의 입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것도 많이.
"아니 당신 왜 그래? 왜 입에서 피가 나?"
"넘어졌어."
"넘어지다니. 언제?"
"조금 전에."
"그런데도 계속 밖에 있었던 거야? 피가 이렇게 나는데도?"
"피 나는 건 괜찮은데…. 이빨이 나간 것 같애. 멍멍해."
"어디 봐?"
가까이 가 아내의 입술을 보니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피는 계속 흘러 겉옷을 적시고 있지만 아낸 입술보다 이가 더 아픈지 금방 눈물을 흘릴 듯 울먹였다.
"이빨 한 번 봐봐."
아내의 이를 보니 겉으론 이상이 없었다. 그러면서 살짝 이를 안에서 밖으로 미니 톡 소리가 나며 제자리를 잡았다. 땅바닥에 이를 부딪치면서 이가 틀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내를 보니 웃음도 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론 왜 그리 융통성이 없을까 싶어 화도 나고 심경이 복잡했다.
"일단 차에 타라고. 다쳤으면 부르던가 해야지 미련스럽게 그게 뭐야."
아내를 차에 태워 피를 닦아주곤 10미터 정도 뒤로 후진을 했다. 그리곤 아내로 하여금 피를 보게 한 그곳을 우여곡절 끝에 빠져나와 집에 와 보니 아내의 입술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아내의 입술을 바라보고 상처 연고를 발라주면서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내가 더 말리지 않고 그대로 나가게 했나 싶어서였다.
다음 날(7일), 일찍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잠자고 있는 안방에 들어가 입술을 보니 부기가 더 올라와 있었다. 그런 아내의 입술을 보고 "당신 입술 예쁜 오랑우탄 입술 같애"라고 말했더니 피식 웃으며, "당신이 내 이빨 보상해" 하고 농담을 한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만져주며 미안해 하자 밥해야겠다며 일어나려 한다.
"아침밥 해야지."
"그만 둬. 내가 할게."
밥을 하러 일어나려는 아내를 계속 침대에 있게 한 다음 아침밥을 짓는데 아내가 다친 것은 내가 잘못해서 다친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면서 이가 흔들려 밥을 못 먹는 아내를 위해 깨죽을 쑤었다.
"자 조금 먹어 봐. 씹지 말고 그냥 삼키라고."
한 입 대보던 아내가 이가 시리다며 못 먹겠다고 한다. 억지로 두어 숟갈 떠 먹이고 있는데 아이들이 다가와선 자기들도 밥 안 먹고 죽 먹겠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녀석들아, 너희들은 엄마가 아프면 '엄마 많이 아파? 괜찮아?' 뭐 이런 말은 안 하고 너희 먹을 것만 찼냐?"고 타박을 주었더니 그때서야 "엄마 괜찮아? 엄마 많아 아파?"하고 묻는다.
결국 아내가 먹을 죽은 아이들이 먹어버렸다. 오늘 아내는 밥다운 밥을 한 끼도 못 먹었다. 점심엔 미숫가루를 타 주었더니 빨대로 빨아먹었다. 여전히 입술은 퉁퉁 부어 있고, 이는 감각이 없다며 내일 병원 갈 일을 걱정하고 있다. 이를 뽑으라고 할까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