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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똑같은 요구를 하더라도 그 이유와 명분이 다르면 그에 맞춰 다르게 살피는 게 순리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 재선의원 5명과 강봉균 정책위 의장은 차원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강 의장이 색깔론을 꺼내 들었다면 재선의원 5명은 현실론을 거론하고 있다.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이 통합신당을 추진하면 '도로 열린우리당'이 된다는 논리다.

당내 조직기반이 확고한 두 사람이 통합신당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면 외부인사가 참여할 리 만무하고 그러면 결국 통합신당도 '그 밥에 그 나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자기모순에 빠진 정동영 전 의장

@BRI@대표 캐릭터를 바꾼다고 실체가 바뀌느냐는 반론을 내밀 수 있지만 접자. 더 주되게, 먼저 짚을 주장이 따로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의 대응논리다.

정동영 전 의장은 YTN,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선의원들의 주장에 반발했다. "누가 누구를 배제하고 포함시키고 하는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재선의원 5명은 그저 그들의 입장을 표명했을 뿐이다. 당의 이름으로, 또는 당원의 대표로 2선 퇴진을 '명령'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전적으로 정 전 의장의 자유의사에 달렸다.

그런데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똑같은 이유 때문에 정 전 의장이 '자가당착'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

정 전 의장은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서 있는 게 당의 상황을 정리하고 정체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틀을 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재선의원들의 요구와 똑 같다. 이유도 동일하다. "열린우리당이 처한 안팎의 현실적 조건"이 그 이유다.

정 전 의장에게 물어볼 게 생겼다. 정 전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하는 권리를 누구로부터 부여받았는가?

알맹이 같은데 포장 다르게 한다고 바뀌나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런 반문이 날아들 것을 예상했을까? 정 전 의장은 한마디 더 걸쳤다. "당의 중진들과 의견을 나눈 결과"라고 했다. 그 결과 "대통령이 옆으로 비켜 서 있는 것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공통분모를 확인했다"고 했다.

재선의원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재선의원의 주장은 '그들만의 것'이지만, 정 전 의장의 주장은 '공통분모가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정 전 의장의 주장은 보편타당한 것이고 상대적으로 대표성을 띠는 것이 된다.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원로원' 체제를 채택하지 않은 이상 몇몇 중진들의 의견도 그저 그들의 의견일 뿐이다. 아무리 확장해도 여러 개로 쪼개진 당내 의견그룹의 일부, '원 오브 뎀'에 불과하다.

'미꾸라지 화법'은 거두는 게 낫다. 좀 더 솔직하게, 원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이다.

"불과 2년 8개월 전에 국민의 전폭적인 기대와 지지를 받았는데 지금은 열린우리당의 '열'자도 듣기 싫다고 한다. 이렇게 된 책임자가 나다. 지금은 '내 탓이오'라고 해야 할 때이며,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정 전 의장이 한 이 말에 핵심이 담겨있다. 책임 질 일이 있으면 2선 퇴진을 하는 것이고, 아니면 남는 것이다.

노무현·정동영에게 '책임 고지서'를 날려라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의 2선 퇴진을 요구하는 재선의원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물러나기'를 주문하는 정 전 의장 모두 책임을 구체적으로 거론해야 한다.

두 전·현직 의장의 어떤 과오가, 그리고 노 대통령의 어떤 과오가 당을 망쳤는지를 조목조목 들고 그에 맞는 책임 분량을 제시해야 한다.

원칙이 그럴 뿐 아니라 현실 또한 그렇다. 정 전 의장 스스로 왜 나보고 물러나라 하느냐고 반박하는 형국이고, 노 대통령 또한 국정 수행에 큰 과오는 없었다고 연일 강변하는 상황이다.

현실을 들먹일 게 아니라 책임을 따져야 한다. 아주 구체적으로 책임을 따져야 한다. 그래야 '원칙있는 국민 신당'이 '질서있게' 추진될 수 있다.

누가 뭘 잘못했는지를 규명해야 새로운 노선과 새로운 리더십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에 관해 재선의원들은 별 말이 없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은 밝혔다. 이런 진단을 내놨다.

"불필요한 내부 투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난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찍었다가 돌아선 유권자들을 인터뷰했더니 이념적 개혁노선과 분열적 내부투쟁, 즉 실용 대 개혁 논쟁을 이유로 들었다. 이제 다시 실용개혁 노선으로 가야 한다."

'이마'가 문제였으니 '마빡'으로 하자는 정 전 의장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은 지난 해 12월 28일 긴급조찬회동을 갖고 '원칙있는 국민의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전당대회에서 평화개혁세력과 미래세력이 대통합을 결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참으로 희한하다. 고백하는 듯 하더니 고집한다. 실용 대 개혁 논쟁이 문제였다고 하더니 다시 실용개혁 노선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정 전 의장이 운위한 '실용개혁 노선'이 이전의 '실용노선'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현재로선 '이마'를 '마빡'으로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주장을 에둘러 밝히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태그:#정동영, #정동영 퇴진, #강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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