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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 환구단 터에 남아 있는 석고(돌북)
소공동 환구단 터에 남아 있는 석고(돌북) ⓒ 이승철
"지금까지 이 팔각정이 조선호텔의 부속건물인 줄 알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환구단을 찾았을 때 이곳에 처음 들어와 보았다는 한 50대 남성의 말이다. 정말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지나치면 조선호텔의 부속 건물 정도로 착각하기 쉬운 고색창연한 팔각건물은 다름 아닌 환구단의 황궁우다.

서울 시청 앞 광장 건너 빌딩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서 눈여겨보거나 일부러 찾지 않으면 알아보기도 어려운 소공동의 환구단(圜丘壇).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곳. 그런데 그 천자는 왕이 아닌 황제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황제가 존재했던 일이 있었던가. 하긴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고구려와 부여에서도 황제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한다.

그럼 이 환구단이 그 시절의 유적이란 말인가. 그건 아니다. 그럼 언제 만들어진 유적일까. 바로 조선조 말, 환구단은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1897년 광무 원년에 황제의 즉위를 앞두고 쌓았다. 단이 완성되자 고종은 10월 11일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이 단에 직접 나아가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일제에 의해 헐려버린 '환구단'

"황제폐하 만만세!"

황제 즉위식 날, 만조백관과 백성들의 만세소리가 드넓은 궁궐과 도성에 넘쳐흘렀다. 이제 왕이 아니라 과거 명나라나 청나라의 황제와 동등한 황제로 즉위했음을 하늘에 고하고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환구단은 바로 황제의 제국, 대한제국의 탄생을 하늘에 고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조선호텔의 부속건물이 아닌 뜻 깊은 역사유적, 3층 팔각의 황궁우
조선호텔의 부속건물이 아닌 뜻 깊은 역사유적, 3층 팔각의 황궁우 ⓒ 이승철
이렇게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행사는 농경문화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이미 고대 고조선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시대 때는 국가적인 행사로 치러졌으며 고려시대는 성종2년 서기 983년에 처음 시작하였으나 계속되지 못하고 설치와 폐지가 되풀이 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 세조2년에 다시 제도화하여 10년 가까이 시행되다가 1464년 세조 10년에 시행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그것은 명나라와 청나라로 이어진 중국 황실의 간섭과 압력 때문이었다. 하늘에 직접 제사를 올리는 것은 황제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권위의식 때문이었다.

고종황제의 즉위를 앞두고 쌓은 이 단은 모양이 둥글게 쌓은 형태여서 원구단이라고도 불렸는데,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은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환구단은 오래 존속되지 못했다. 우리 국권을 수탈한 일제 역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자기네 천황의 몫이라면서 이 환구단을 헐어버렸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지금 서있는 조선호텔의 전신이다. 이런 수난을 거쳐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은 팔각정이라고 부르는 황궁우와 석고 3개 뿐.

조선왕조가 마지막 불꽃처럼 피워 올렸던 '환구단'

시청앞 광장 건너 환구단 시민광장 표지
시청앞 광장 건너 환구단 시민광장 표지 ⓒ 이승철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황궁우는 1899년에 세워진 3층의 8각 건물이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팔각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석고는 광무6년인 1902년에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 세운 것으로 이름 그대로 돌로 만들어진 북 모양의 조형물이다. 3개의 돌로 만들어진 북은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몸통에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럼 저 돌북은 상징물이네요. 실제로는 울릴 수 없는... 그럼 마음속으로라도 하늘까지 쿵쿵 울려야지, 호호호, 정말 멋진 조형물인데요."

석고 앞에서 안내문을 읽은 젊은 여성들 둘이 나를 돌아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그들도 3층 팔각건물인 황궁우가 조선호텔의 부속건물인 줄 알았다고 한다.

황궁우 앞으로 들어가는 문은 작고 낮은 문이었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 조금 전 석고 앞에서 안내문을 읽고 석고를 마음속으로 울려야겠다던 젊은 여성들 둘 역시 그 문 앞에서 키 재기를 해본다.

안내문에는 성스러운 곳이니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들어가라는 뜻으로 문을 작고 낮게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문 옆에는 환구단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라고 요구하는 일부 인사들의 뜻을 전하는 글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고 낮은 출입문, 문앞의 여성들과 비교해 보세요
작고 낮은 출입문, 문앞의 여성들과 비교해 보세요 ⓒ 이승철
500년 역사의 조선왕조가 마지막 불꽃처럼 피워 올렸던 역사적인 유적 환구단. 오랜 역사가 있는 전통의식이었으면서도 인근의 외세와 침략에 의하여 계속되지 못하고 시행과 단절을 반복하다가 스러진 우리역사의 가슴 아픈 영광과 상처의 흔적이 바로 이 환구단이다.

"돌북이여! 하늘까지 쿵쿵 울려라. 백두산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과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저 일본이 숨소리 죽이고 잠잠해 지도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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