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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의 <나루를 찾아서>.
박창희의 <나루를 찾아서>. ⓒ 서해문집
'나루'는 옛사람들의 교통편이자 삶의 거처였고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건네주는 삶이 있고 건너가는 삶이 있다. 뱃사공이 있고 나그네가 있으며 보내는 이와 맞는 이가 있다.

나루에는 이편과 저편을 오가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얹혀 있다. 나루는 치열한 전쟁과 사람들 간 부대낌이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다정다감한 공간인가 하면 냉엄하고도 삼엄한 공간이기도 했다.

박창희의 <나루를 찾아서>에 나와 있는 '배를 본다'라는 표현과 '바리', '배추렴'이라는 표현에 애착이 간다. 배를 부린다고 하지 않고 '배를 본다'고 하며, 배의 왕복 횟수를 가리켜 '바리'라 한다(153쪽). '배추렴'은 '뱃삯'을 의미한다(215쪽).

이들 부부는 뱃사공 일을 '배 본다'라고 표현했다. 뱃사공의 배포가 실린 말이다. 배를 몬다, 끈다, 돌린다, 운영한다고 하지 않고 '본다'는 것은 강을 보고, 사람을 보고, 나루의 오늘과 내일을 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159쪽)

뱃사공 최보식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 중간에 전하고 있는 부분이다. 최씨 부부는 낙동강의 마지막 현역 뱃사공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태워 나르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다. 강물과 함께 해온, 그러나 어느덧 옛일로 저물어가는 그런 삶 속의 사람이다.

이처럼 이 책은 현대문물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의 현장에서(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리'일 것) 한쪽으로 비켜나 있는 사람들의 회한도 함께 전해준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하고 시작되는 가요 속에 나오는 처녀 뱃사공의 사연도 엿들을 수 있다.

@BRI@사연은 1953년 초가을 경남 함안군 대산면 악양나루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항기씨와 윤복희씨의 선친인 윤부길씨가 악양나루에서 만난 20대의 젊은 처녀로부터 애절한 사연을 듣고 노랫말로 풀어낸 것이라고 한다.

노래 속의 '처녀 뱃사공'은 박말순(당시 23세)씨와 정숙(당시 18세)씨 자매라고 하는데 모두 작고했다. 군에 갔다는 오빠 박기중씨도 한국전쟁 때 전사했다고 한다. (중략) 정확히 말하자면 노랫말을 '낙동강 강바람에~'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윤부길씨는 그걸 알면서도 낙동강의 지류(남강), 그 지류의 지류(함안천)라 하지 않고 대중성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낙동강을 끌어다댄 것으로 보인다. (240~241쪽)

나루에는 시가 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의 시 '나그네')도 있고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른"(이호우의 시조 '달밤') 시조도 있고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신경림의 시 '목계장터')도 있으며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한용운 시 '나룻배와 행인') 하는 시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퇴계와 농암의 시도 있다. 물론 더욱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경별곡'에 '송인'에 '공무도하가'까지도 연결될 것이다.

퇴계와 농암은 닮은 점이 있는 듯하다. 고향으로 물러나와 자연을 즐기기를 좋아했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퇴계는 나룻배 타기를 몹시 즐겼고 농암은 영남의 거유(巨儒)들과 더불어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만큼 나루와 나룻배는 풍류와 흥취가 있는 공간이기도 한 셈이다.

나루는 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는 곳, 민족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에서 지내는 '가야진용신제'는 신라와 가야가 맞서던 삼국시대 이전부터 행해진 유서 깊은 제의라고 한다.

가야진용신제는 단순한 전통문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민족 고유의 시제(時祭)와 기우제의 전통이 계승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지극한 애향심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국토 사랑의 정신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의 가야진사에는 가야와 신라의 전통이 머물러 있고 낙동강 나루터신이 모셔져 있다는 점에서, 낙동강 문화의 원형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다. (78~79쪽)

제1부 '역사의 물줄기'를 통하여 나루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면, 제2부 '나루터 사람들'을 통해서는 나루와 삶을 같이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제3부 '이 사연 저 풍경'에서는 나루와 나루 주변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명소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제2부가 인상 깊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박창희 / 펴낸날: 2006년 12월 15일 / 펴낸곳: 서해문집 / 책값: 1만 3500원


나루를 찾아서

박창희 지음, 서해문집(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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