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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2006년의 마지막 날. 내 발걸음은 어느새 평택 대추리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5월 평택미군기지건설반대 시위를 영상으로 보았다. 얼마나 울었던가. 흘린 눈물을 간직하며 나는 꾸준히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실천 없는 창백한 나의 관심. 한 해를 돌아보다 불현듯 나는 부끄러워졌고 그런 마음이 들자마자 평택으로 하루빨리 달려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대추리로 향하고 있었다. 택시 안 라디오에선, 후세인이 처형되고 이라크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상했다는 소식이 흘러 나왔다. 지구 곳곳에서 평화가 깨지는 소리, 아니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를 평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대추리로 들어서는 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혼자 가는 거라 가뜩이나 소심해져 있던 나는, 대추리 입구에서 전경들이 택시를 세우곤 다가오자 두려움을 느꼈다. 무서워하지 말자, 몸서리 한번 치고 나는 애써 마음을 편히 가졌다.

▲ 평.화를 택.하라
ⓒ 장윤미
▲ 평화예술마을 대추리
ⓒ 장윤미
"혼자 왔어?"
"네"
"독불장군이구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껄껄 웃으신다.

"들어와서 밥 먹어."

눈 녹듯 긴장이 풀린다. 이 곳 대추리 사람들의 인사는 "밥 먹고 가"다. 그들의 인심을 한아름 얻고 내 마음은 풍성해진다.

한 할머니는 밥을 먹고 있는 내게 "어디서 왔느냐" "처음 온 거냐" 연신 물으시며 마지막에 한 마디 하신다. "와줘서 고맙다." 밥숟가락을 넘기는데 목이 콱 멘다. 오길 정말 잘했구나.

일찌감치 밥을 실컷 얻어먹고 커피까지 마시곤 도둑고양이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나는 너무나 늦게 왔다. "여기 사람들 힘 다 빠지고 나서야 왔느냐"고 웃으며 말하시던 한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이곳 저곳 부서진 집들. 밀물에 쓸려나간 흙두꺼비집처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막무가내로 철거된 집들은 온갖 집안 살림들을 토해 놓았다. 그 더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여미며 마음이 아파졌다.

▲ 철거된 집들
ⓒ 장윤미
▲ 주인에게 전해지지 못한 우편물들
ⓒ 장윤미
하지만 사라져가는 삶의 흔적 위에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덧칠하고 있었다. 대추리 입구에 적힌 평화예술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담벼락의 시들, 그림들, 박물관에 도서관까지, 지킴이들이 직접 꾸민 집들도 이 곳은 관광을 위한 하나의 문화마을 같았다.

▲ 국경없는 평화의 봄을 바라며
ⓒ 장윤미
▲ 담벼락에 그려진 농사짓는 할아버지 그림
ⓒ 장윤미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잊지 않도록 기록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눈물겹고 아름다웠다.

▲ 대추리 사람들 박물관 내부
ⓒ 장윤미
▲ 한사람, 한사람 지켜주고픈 소중한 삶
ⓒ 장윤미
날이 저물면서 담벼락의 글귀와 그림 그리고 건축물에 노을이 섬세하게 스며들며 만드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 대추리에 노을이 지는 풍경
ⓒ 장윤미
대추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연일 노인정에 모여 있다. 거기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나누며 위로한다. 그나마 연말에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김지태 이장이 석방된 것이다. 이장님의 어머니는 "지태가 구속됐을 때 내가 흘린 눈물이 양동이 하나도 넘을 거야, 석방되니 마음이 아주 좋아졌어"하시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렇게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정신없이 나누는 사이 꿀과 설탕에 달콤하게 졸인 고구마 맛탕이 한 솥 나왔다. 따뜻한 노인정 방안에서 고구마에 시원한 물김치를 들이키며 오래도록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잠시 한 할머니가 이야기 도중 보였던 고인 눈물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대추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모든 사람들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평화를 위협받고 있는지도. 자본과 폭력 앞에선 우리 모두가 소수자다.

그래도 그들은 삶을 긍정한다. "미군기지 건설이 5년 늦춰졌으니 우선 지금은 이렇게 오순도순 즐겁게 살고 그때 가서 앞날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뭐"하며 소탈하게 웃으신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아무 선물도 준비해오지 못한 나는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이 말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꼭 맛있는 거 사올 테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이런 내 말에 "맛있는 건 무슨, 그냥 와서 주는 거나 맛있게 먹고 가" 하시는 할머니들.

이곳은 사람 사는 곳이다. 그들이 꾸려나가는 것은 삶이다. 국익의 논리로 파괴된 집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삶이 지속되고 있는 곳 평택 대추리. 지속되는 삶을 통해 존재를 가치 있게 하는, 더 나은 것을 위한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

2007년 새로운 시작의 해가 떴다. 아마 평화를 택하는 희망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뒤늦은 나의 실천이 늦지 않았길 바라며 희망이 있는 그 곳에, 황새울 들녘에 노을 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나의 기도를 보탠다.

▲ 황새울 들녘에 노을 지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주세요
ⓒ 장윤미
▲ 대추리의 하늘을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떼.
ⓒ 장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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