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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의 일출.
정해년의 일출. ⓒ 조도춘
@BRI@2007년 정해년(丁亥年)이 시작됐다. 전날 미리 맞추어 둔 알람이 새벽 6시 잠을 깨운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가야산(광양 중동 497m)으로 출발했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가야산 주차장에는 이미 차량이 만원이다. 갓길까지 차량들이 점령된 지 오래인 듯싶다. 아직도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 사람이 많다. 산길에는 가로등이 군데군데 있지만 손전등 없이 오르기는 캄캄하다.

새해 해돋이를 꼭 보자고 아들 민주(12)와 약속한 터라 어두운 산길을 사람들의 행렬 꽁무니만 보고 열심히 산을 올랐다. 아이들은 지쳤는지 길가에 앉아 더 이상 오르기를 거부하며 투정을 한다. 엄마는 지친 아이의 팔을 끌어당겨 보지만 지친 아이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한참 잠 잘 시간인데 엄마의 욕심에 해돋이를 보러가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인다.

중간쯤 오르자 민주는 지쳤는지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7시가 지나자 마음이 급해진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중간쯤에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각기 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나는 못 볼 것 같아, 자기만 보고와." 길모퉁이에 앉아 아쉬움에 전화 통화를 하는 아가씨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연인인 모양이다.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가야산 정상'.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가야산 정상'.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 조도춘
민주와 헤어진 지 20여 분 만에 정상에 이르렀다. 새해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오른 사람들로 정상은 '사람의산'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조금씩 들어가 겨우 해맞이 자리를 잡았다.

해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해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 조도춘
동쪽 하늘은 회색빛 뿌연 구름으로 덮여 있다. 땀 흘려 오른 산행이 허사로 끝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새벽 3시부터 오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추위도 잊은 채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기다림의 눈초리가 동쪽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7시 35분이 되자 일부 사람들은 구름 속에 해가 이미 떠올랐다고 포기하고 가려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생겨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을 위하여 해는 그의 온전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을 위하여 해는 그의 온전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 조도춘
일출 중 잠시 다시 구름 속으로 숨은 해.
일출 중 잠시 다시 구름 속으로 숨은 해. ⓒ 조도춘
7시 40분이 되자 구름 사이로 둥근 해의 모습이 레이스에 가려진 수줍은 새색시 얼굴처럼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카메라가 셔터 터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붉고 둥근 해는 곱다. 분명 어제 졌던 그 해가 아닌 듯싶다. 새해가 저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감동적이다.

광양 모 회사 사람들의 일출 산행.
광양 모 회사 사람들의 일출 산행. ⓒ 조도춘
산악회에서 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산악회에서 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 조도춘
감동도 잠시, 붉은 해는 광채를 내는가 싶더니 구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한해의 소원의 빌기 위해 찾았던 많은 사람들은 썰물 빠지듯 빠져 나간다. 모 회사는 단체로 산행을 해 회사의 번영과 사원의 친목을 도모한다. 산악회에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정상 빈자리를 이용해서 산제를 지낸다. 돼지 입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하다. 한해의 복을 비는 회원들의 어깨에는 소원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찜통 두개, 큰 나무주걱 "500그릇의 떡국통입니다."
찜통 두개, 큰 나무주걱 "500그릇의 떡국통입니다." ⓒ 조도춘
새벽 3시에 나와 떡국을 준비한 단체도 있다. 70년생으로 똘똘 뭉친 '가람회'. 회원인 이건재(37)씨는 "새해 복을 빌러 오는 사람들에게 떡국 먹고 더 힘내시라고" 새해가 되면 실시하여 오던 게 벌써 4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50명의 회원이 참석해 500그릇의 떡국을 준비했는데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작년에 말썽 부렸던 조그만 주걱 대신 올해는 커다란 나무 주걱을 준비했다. 내년에는 찜통도 3개로 더 늘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예정이란다.

정상에서 다시 상봉한 민주.
정상에서 다시 상봉한 민주. ⓒ 조도춘
"아빠~"

민주가 왔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얼굴에 땀자국이 많이 났다. 등산하는 데 많이 힘이 든 모양이다. 산 중턱에서 새 해는 보았고 소원은 5가지나 빌었단다. 2가지는 가족을 위한 소원이고 3가지는 자신을 위한 소원이란다. 같이 손잡고 새해를 맞이하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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