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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황장엽, 서울 한복판에서 '남한 정권교체' 외치다

▲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최근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남한내 반좌파세력의 대동단결'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대학교육관 건물에 100여명의 학생이 모였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특별강연을 듣고 '북한 인권운동, 대학 내에서 가능한가'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갖기 위한 자리였다.

@BRI@황장엽 전 비서는 이날 강연에서 "내년은 우리 민족의 갈림길이 되는 중요한 해이므로 청년학생들이 잘 투쟁해야 한다"면서 "대선에서 친북·반미 세력들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 김정일 체제를 벗어나 남한으로 망명한 철학자가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이 아닌 남한의 정권교체를 공공연히 외치는 시절이 온 것이다.

황 전 비서는 구체적으로 "내년 대선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후보는 뽑아선 안된다"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떠드는 자들은 아주 위험한 자들이다"고 말해 정부·여당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인권청년학생연대(대표 김익환)가 주최한 이날 워크숍의 주제는 '북한인권·민주화의 과정에서 대학생의 역할'. 참가자들은 특별강연 뒤에 '북한 인권운동, 대학 내에서 가능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자유주의대학생네트워크 대표인 이복화씨(명지대 정외3)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찬양하며 이들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좌파학생운동 그룹이 북한 인민들이 김정일 독재정권 하에서 절망 속에 죽어가는 것을 못본 척하고 있다"면서 한총련, 민노학위 등 진보좌파 학생운동권이 주장하는 북한문제의 한계를 비판했다.

고려대 서창캠퍼스 차기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김중일씨(고려대 북한학과 2)는 "학생회장 선거에서 한미FTA 문제 등 한총련 좌파세력 논리의 허구성을 깨뜨리는 데 주력해 승리했다"면서 이씨의 좌파학생운동 비판에 공감을 표시했다.

박지혜 LINK 서울대표는 "북한 인권 문제는 더 이상 북한, 남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국제사회 전체의 '지구촌 과제'"라며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대학생 네트워크 형성방안을 제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워크숍을 마치며 '대학생 북한 인권 결의문'을 발표하고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애정과 우려를 표명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유독 북한 주민들의 극심한 고통에만 침묵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때 10만명까지 추산된 '주사파'로 가득찬 대학가는 이제 북한인권 문제를 토론하고, 북한인권 문제를 내건 후보가 학생회장에 당선되고, 나아가 세계 대학생 네트워크 형성방안을 논의할 만큼 시대가 변한 것이다.

[장면 2] 전향 386그룹, '북한 관리' 방안을 논하다

▲ '북한관리' 방안을 토론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창립 7주년 기념토론회. '전향 386그룹'이 주축인 뉴라이트 그룹은 김영삼 정부 이후 10년 만에 다시 '북한 붕괴론'을 부활시켰다.
ⓒ 오마이뉴스 김당
이튿날인 21일 서울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대표 한기홍) 창립 7주년, <데일리NK> 창간 2주년 기념식과 정책토론회가 약 300여명의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상임고문인 황장엽 전 비서는 이날 기념식에도 참석해 격려사를 했다. 류근일 <데일리NK> 상임고문도 격려사를 했다.

기념식에 이어 2부행사에서는 '북한정권 붕괴 가능성과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발표자와 토론자의 열띤 토론과 참석자들의 질문으로 4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다케사다 히데시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주임연구관은 김정일 이후의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이 가운데 내부 붕괴로 반(反) 김정일체제가 성립하는 시나리오(Hard Landing)와 내부 이변으로 김정일 체제가 종료되어 통일되는 시나리오(Hard Crash)가 실현된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고 전망했다.

김일성종합대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국민대 역사학과)는 "동유럽에서 볼 수 있듯이 체제 위기는 너무 빠른 속도로 전개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북한체제가 언제 무너지기 시작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바로 지금 이러한 급변사태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벌써 늦었는지 모른다"고 역설했다.

김영환 <데일리NK> 논설위원은 '북한체제 붕괴 시나리오'를 주제로 북한정권 붕괴 과정의 전망과 '북한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북한은 모든 권력과 권위가 김정일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김정일의 사망은 북한체제 붕괴의 가장 가능성 높은 길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북한은 김정일의 권력유지 및 국방과 관련된 기능을 제외하고는 국가 대부분의 정상기능이 마비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하게 되면 후계체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도 어렵고, 후계 자체도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체제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근거를 제시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을 겸하고 있는 김 위원은 80년대 중반 서울대 재학 시절에 '강철 시리즈'로 운동권을 지도한 '주사파의 대부'로서 김일성 주석을 두 번이나 면담했으나, 90년대 중반 자신의 사상적 오류를 반성하고 이른바 '전향 386그룹'의 리더로 변신해 지난 10년간 북한 문제를 연구해 왔다.

이와 같은 전망은 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에 유행했던 '북한 조기붕괴론'을 연상시킨다. 10년만에 다시 북한 관리 방안을 논의할 만큼 '북한 붕괴론'이 부활해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전향 386그룹'을 주축으로 한 뉴라이트 진영을 중심으로 해서.

[장면 3] 부시, 탈북자 강철환과 김성민 만나다

▲ 부시와 강철환씨의 만남. 지난해 6월 부시 대통령은 '요덕스토리'로 유명한 강씨의 수기 <평양의 수족관>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아 강씨를 백악관에 초청해 40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서울에서 '북한정권 붕괴 가능성과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를 토론하기 1주 전에 일본에서는 '2006년 북조선인권침해 계발주간'(12월 10-16일)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북한 민주화 및 인권 전문가들이 초청되었다.

이번 북조선 인권주간에는 ▲북조선 민중의 구출을 목표로 내건 일본 내 반북 활동그룹인 RENK가 주최한 북조선 최근 동향 발표회 ▲북한 영상 상영과 심포지엄 ▲북한에 의한 국제적 납치의 실태와 해결책을 논하는 국제회의 ▲북한인권대사 회의 등이 열렸다. 한 대표는 '북한인권대사 회의'에 패널리스트로 참가해 최근 탈북자 실태와 북한인권문제 해결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북한인권 문제를 매개로 한 국제연대는 이미 일본과 미국은 물론 유엔에서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지난해 9월에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고발한 창작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미국 공연이 '디펜스포럼' 재단의 주도로 성황리에 성사되었다. 이런 일련의 흐름에는 국내 NGO(비정부단체)의 국제연대 활동과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등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이를 테면 북한민주화네트워크와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 등 북한민주화·인권운동 단체들이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히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고 국제 NGO와의 연대활동을 강화해온 덕분이다.

그러나 북한민주화·인권운동에 불을 질러 국제사회의 일상적 연대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증인'인 탈북자들, 특히 정치범수용소 출신의 탈북자들이 '살아있는 증거'였다.

지난 2005년 6월 13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폭로한 강철환씨(당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를 백악관으로 공식초청해 40분간 대화를 나누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부시는 '요덕스토리'로 유명한 강씨의 수기 <평양의 수족관>(The Aquariums of Pyongyang)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아 강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가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문제보다는 인권문제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 40분간의 면담은 공교롭게도 부시가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지 사흘 뒤에 이뤄졌다. 그래서 부시가 강철환씨를 더 환대함으로써 노 대통령에게 '물을 먹였다'는 뒷얘기가 그럴 듯하게 전파되었다.

황장엽 전 비서는 당시 "세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우리 강철환 동지를 만나주고 고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것은 우리 탈북자들의 자랑일 뿐 아니라 북한의 독재 통치 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2300만 동포들에게도 커다란 힘을 주는 사변이라고 생각한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부시는 2006년 4월에도 북한군 장교 출신의 탈북자 김성민씨(자유북한방송 대표)를 탈북자 김한미양 가족과 함께 백악관으로 초청해 만났다. 김씨는 이후 지난 8월 부시 대통령 앞으로 e-메일을 보내 워싱턴에서 열리는 뮤지컬 <요덕스토리> 공연에 참석해줄 것과 황장엽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의 미국행이 이뤄지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대학가와 시민사회 그리고 국제사회의 변화된 흐름을 보여주는 위의 세 가지 장면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북한 붕괴론'이다. 그런 전망을 근거로 황장엽 전 비서가 대학생들에게 '반좌파세력의 대동단결'을 주문할 만큼 대학생들이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전향 386그룹'이 '북한 관리' 방안을 토론하고, 미국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수상한 시절'이 된 것이다.

물론 10년 전에도 북한 붕괴론은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다. 그 당시 붕괴의 징후는 소련 및 동구권의 붕괴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 그리고 식량난이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북한을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했다. 그러나 당시의 붕괴론은 대분히 '희망' 섞인 전망이었음이 드러났다.

반면에 10년 만에 '부활'한 북한 붕괴론은 그 징후를 사회주의 시스템의 붕괴와 후계 체제의 미비 그리고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읽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북한민주화운동은 인간의 권리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임을 슬로건으로 내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같은 뉴라이트 계열의 북한민주화·인권운동 단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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