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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진 곳은 이불처럼 눈이 숲을 덮고 있다
응달진 곳은 이불처럼 눈이 숲을 덮고 있다 ⓒ 김선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수종사는 부연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유명하다. 덕분에 수종사는 늘 사람들도 붐빈다. 그것은 겨울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종사를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을 것이고, 수종사 절 앞마당에서 바라다 보이는 두물머리의 정경이 빼어나게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삼정헌'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수종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매력중 하나이다.

수종사 일주문으로 향하는 정갈한 흙길
수종사 일주문으로 향하는 정갈한 흙길 ⓒ 김선호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수종사를 찾았다. 지난여름에 다녀왔으니 어느덧 반년이 흘러 다시 찾은 셈이다. 수종사는 운길산의 품에 안긴 절이다. 그러니 수종사는 그냥 수종사가 아니라 '운길산 수종사'이다. 그러니 수종사에 가기 위해선 운길산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BRI@수종사를 가기 위해 운길산을 걷는 일과 '수종사만'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바위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같아서 '수종사'가 되었다는 이 아름다운 절을 기어이 자동차를 타고 가야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산길은 등산로 초입부터 포장도로가 생겨났다. 지난해 겨울에 왔을 때 한창 공사 중이더니 일년이 지난 지금 말끔한 포장도로가 완성되었다. 차량들의 진입이 더 원활해졌으므로 당연히 차량행렬이 늘었다.

오가는 자동차 행렬을 보고 있으려니 이곳이 도로인지 산길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니 산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은 이쯤에서 옆길로 새야 한다. 그러면 거기 활처럼 휘어지고 한사람이나 겨우 비켜갈 수 있을 정도의 조붓한 산길이 보인다. 낙엽이 푹신하게 밟혀오는 작은 오솔길이다. 마음도 한결 여유를 찾게 되는 길이다. 무릇 산사를 찾아가는 마음이 이렇듯 한가로워야 되지 않을까 싶다.

계단길은 언제나 쉽지 않다
계단길은 언제나 쉽지 않다 ⓒ 김선호
간간히 마주쳐 오가는 이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게 되는 길이다. '안녕하세요' 라는 평범하지만 살가운 인사들이 오간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일찌감치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아주머니가 던진 한마디 말이 신선하게 들리는 길. 비로소 들려오는 산새소리에 기쁘게 감응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에돌아가는 산길이 다시 포장도로와 만나는 지점은 '운길산 일주문'을 바로 앞에 둔 곳이다. 산길 양옆에 주차해둔 차량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자동차의 진입도 거기까지다. 이제는 신성한 경내로 진입하는 일만 남았으니 '정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주문을 지나치면 다시 한번 길은 갈림길로 나눠진다. 수종사로 직행할 것이냐, 이왕에 온 거 운길산 정상에 한번 서볼 것인가로.

산 능선이 물결치듯 이어져 있는 운길산 정상에서
산 능선이 물결치듯 이어져 있는 운길산 정상에서 ⓒ 김선호
얼른 차를 마시자는 아이들을 달래 운길산 정상으로 향한다. 지난여름의 운길산 정상은 짙푸른 녹음으로 가려 조망이 시원치 않았다. 수종사 앞마당에서도 한강과 어울린 주변 경관이 장관을 이루겠지만 운길산 정상에서 보는 두물머리는 또 어떤 장관을 보여 줄지 궁금했다.

정상으로 가는 이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다. 게다가 계단길이다. 그러나 숨이 차오른다 싶을 즈음, 첫 번째 조망대를 겸한 쉼터가 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한강은 뿌연 물줄기가 마치 회색 띠를 두른 것 같다. 한강의 유장한 흐름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조망이 시원하니 답답한 속내가 환하게 뚫리는 느낌이다.

다도를 배울때는 진지하게
다도를 배울때는 진지하게 ⓒ 김선호
숨가쁘게 올라온 계단길에 비하면 대체로 수월한 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머지않아 헬기장이 보이고 얼마 안 있어 정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역시 겨울이라 조망이 시원하다. 여전히 뿌연 안개에 싸인 듯하지만 한강의 흐름이 한눈에 잡힐 듯 훤하게 드러난다. 주변의 산 능선도 여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쓸쓸한 한편, 뭔가 단단함을 안으로 품고 있는 듯한 결연함이 느껴진다. 겨울산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운길산 정상을 내려와 드디어 수종사 삼정헌이다. 수종사의 차맛은 너희들이 어찌 그 맛을 알겠니, 싶은 아이들에게도 인기다. '다도'라는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별함이 아이들을 사로잡는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두 아이는 서로 다도법을 익히기라도 할 것처럼 앞장서 차를 우렸다. 다행히 다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사람들도 쉽게 다도를 익힐 수 있도록 '차를 다리는 요령'이 적힌 안내서가 탁자에 놓여 있다.

수종사 앞마당에서 두물머리를 바라보다
수종사 앞마당에서 두물머리를 바라보다 ⓒ 김선호
안내서에 씌어진 대로 따라서만 하면 '수종사 삼정헌' 특유의 특별한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삼정헌에서 마시는 차를 기대하고 운길산 정상길을 잘 따라와 준 아이들에게 전권을 위임한다. 가만히 지켜보니 안내서를 따라 하는 아이들의 손놀림이 제법이다. 차 맛은 여전하다. 삼정헌 아래 석간수의 수량이 줄어 괜한 걱정을 했었다.

삼정헌은 수종사가 운영하는 무료다실이다. 삼정헌에서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두물머리는 바로 눈앞에서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앞, 수종사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삼정헌에서 차를 마시고 불전함에 작은 정성을 보탠다. '차가 참 맛나기도 하고 다음에 와서 또 마셔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고 제안한 아이의 의견대로.

일주문 들머리 있는 국수파는 집, 산막처럼 생긴 내부가 따뜻하다
일주문 들머리 있는 국수파는 집, 산막처럼 생긴 내부가 따뜻하다 ⓒ 김선호
수종사 경내를 한바퀴 돌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차의 향기가 여즉 입안에 남아 있으니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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