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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북스
"마침내 모두, 그림과 액자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글은 1898년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의 첫 번째 전시회가 열린 직후 <독일 미술과 장식>이라는 잡지에 실린 논평의 일부다. 그림 액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평이다.

그림 액자는 서적의 장정(裝幀:책의 겉장이나 면지(面紙), 도안, 색채, 싸개 따위의 겉모양을 꾸미는 일)과 비교된다.

액자와 장정은 한 시대의 양식, 삶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문화지표로 작용하는 데, 특히 액자는 그림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항상 그림의 중앙으로부터 외부로 이동하다가 액자와 맞닿는 곳에서 멈춰서거나 훌쩍 뛰어 넘어 버리고 만다.

이는 액자의 중요성이나 예술적인 면에 대해 미술사적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미술 평론가들은 미술가의 작품만을 평론할 뿐 액자를 논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외려 그림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릴 우려 때문에 기피할 지도 모른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파기 마련이다. 그래서 액자 전문가가 직접 액자의 중요성을 외치고 나섰다. 약 30여년간 액자 장인으로 활동한 W.H.베일리가 출간한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는 그림의 '생사여탈권'을 쥔 액자이야기다.

저자는 뉴욕에서 활동했던 미술 액자 전문가로 현재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뉴욕 LIM대학에서 전시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세잔, 반 고흐, 피카소 작품의 액자를 디자인하는 베테랑이다.

그는 액자의 기능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관람자와 그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이라고 소개한다. 너무 크거나 장식이 과도한 액자는 그림을 압도해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초라한 작품으로 전락시킨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액자가 왜소하고 장식이 지나치게 단조로우면 그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조언하고 있다.

중재자로서의 액자의 역할은 그림 속으로 관람자를 초대하면서 일단 경계 안으로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시선을 그림 안에 묶어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액자는 관람자의 눈과 마음이 그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올 미술계의 새로운 코드로 부상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동생인 게오르그와 협업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집안이 금세공업을 하는 관계로 클림트의 그림에는 금박패턴이 많이 등장한다. 동생이 액자를 만들었음직한 <유디트Ⅰ>은 그림과 액자가 일체형인 독특한 양식의 작품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액자는 동생이 만들었겠지만 모양은 형의 주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같이 화가 자신이 직접 액자를 디자인하는 경우도 많은데, 에드가 드가 <판화 수집가>, 조르주 쇠라 <포즈를 취한 여인들>, 한나 글룩 <자화상>, 피에트 몬드리안 <구성 B(흰색과 붉은색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 <머리에 구름을 가득 담고 있는 한 쌍>, 제스퍼 존스의 <평면 위의 무용수들>이 그것이다.

디자인으로만 성이 차지 않아서 직접 제작에 나선 화가들도 있다. 이때야말로 그림과 액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일부 화가는 실제 액자를 사용하는 대신 캔버스 위에 액자를 그려 넣는 방법으로 그림의 주제의식을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 <과일 정물>
빈센트 반 고흐 <과일 정물> ⓒ 빈센트반고흐박물관
대표적인 것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의 <과일 정물>로 동생 테오를 위해 그린 정물화다. 현존하는 고흐의 작품 중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액자다. 그의 그림 액자는 소장자의 저급한 취향과 무지, 전쟁 등으로 모두 파괴됐다. 이 액자에서 고흐는 액자가 그림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림을 담는 용기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해석했다.

자세히 보면 두 가지의 다른 황색 계열 물감을 사용하면서 직사각형 모양의 격자무늬로 리듬감을 주었다. 이 같은 붓질은 관람자의 시선을 그림 속 정물로 이끌고 들어가 평화로운 가을 낮에 잘 익은 과일을 즐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액자와 그림의 행복한 동거’라고 표현한다.

저자에 따르면 액자의 개념은 이미 선사시대에 존재했다. 밝은 낮 시간 동굴에서 밖을 내다 볼 때 입구 틀에 둘러싸인 풍경은 액자의 존재와도 같다는 개념이다. 실질적으로 그림에 틀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초기 기독교 시대라고 한다.

당시 성상화(이콘, icon)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틀이 교회의 번성과 맞물려 부를 과시할 목적으로 제작되면서 발전한다. 르네상스 시대 ‘전시’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작품에 액자를 두르는 일은 유행처럼 이탈리아를 기점으로 전 유럽에 이어 무역로를 따라 러시아, 소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 퍼져 나가 오늘에 이른다.

이 책에는 이러한 선사시대 틀의 개념에서 초기 교회시대의 이콘을 보관하는 장치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써의 테두리, 그리고 궁극에는 그림과 행복한 동거를 위해 관람자의 시선을 잡아두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발전한 액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 읽고 나면 그림 보는 '제2의 눈'이 뜨여질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파리에서 달까지>의 저자 애덤 곱닉은 책 서문에서 “액자는 그림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자백하는 만드는 훌륭한 탐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베일리가 이렇게 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나와라. 나와라! 너는 포위됐다!"

덧붙이는 글 |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글쓴이 :  W.H. 베일리 
옮긴이 : 최경화(이화여대대학원 미술사학과 졸)
펴낸곳 : 아트북스 
펴낸날 : 2006. 6. 23 
쪽 수 : 139쪽 
책 값 : 1만7000원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 액자를 보는 새로운 눈

W. H. 베일리 지음, 최경화 옮김, 아트북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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