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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뜨개 수세미를 선물로 주었어요. 쓸 때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생각날 것 같네요.
손뜨개 수세미를 선물로 주었어요. 쓸 때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생각날 것 같네요. ⓒ 이승숙
성탄 전날 밤에 동네를 다니면서 찬송을 불러주는 좋은 풍습이 강화에는 아직 살아 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집인데도 그 교회 학생들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면 찾아와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 우리 식구들은 한동안 옛날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여기 맨 처음 이사 왔을 때, 그 때 아버지는 섬에 계시고, 우리끼리 외롭게 지냈잖아요.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생각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에 와서 노래 불러 줬잖아요. 나는 그게 너무 기억에 좋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조산교회를 좋게 생각해요."

딸이 이리 말하자 아들도 한 마디 건넨다.

"그래 맞아 누나. 그 때 그 캄캄한 밤에 들려오는 노래 소리가 참 좋았어. 꼭 이사 온 우리를 반겨주는 거 같은 그런 마음이 들더라."

"너네들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교회도 안 다니는 우리 집에, 외딴 우리 집에 일부러 찾아와서 노래 불러주는데 내 마음이 다 찡하더라. 그 때 눈이 오지 않았냐?"

"맞아요 어머니, 그 때 눈도 오고 추웠는데 그런데 와줬어요."

2000년 5월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집은 동네와는 좀 떨어져 있는 외딴 집이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도로도 동네를 거쳐서 다니는 게 아니라 우리 집만 다니는 길이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 가까이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더구나 우리는 교회를 안 다니는 집이었기 때문에 동네 속으로 섞여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그들

강화에는 교회가 무척 많다. 동네마다 교회가 다 있다. 강화 본토박이들은 대부분 교회를 다닌다. 그런데 우리처럼 이사 들어온 사람들은 교회를 안 다니는 집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본토박이들과 잘 섞이지를 못 한다. 새로 이사 들어온 사람이라 해도 교회만 나가면 금방 융화가 되었을 텐데 농사도 짓지 않고 교회도 안 다니니까 동네와 같이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를 하고도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과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생각지도 않게 찬송대들이 와줘서 우리는 무척 고마웠다. 한밤중에 들려오던 찬송가 덕분에 그 해 겨울 우리는 참 따뜻한 마음으로 겨울을 보냈던 거 같다.

그 뒤로 해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면 우리 식구들은 과자를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어디 놀러 나갔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일부러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빈 집에 와서 노래 불러주고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당에 불을 켜놓고 기다려주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들이 왔다. 밝은 목소리로 성탄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새해 인사까지 챙겨 주었다. 그리고 또 선물을 주었다. 올해는 달력과 손뜨개 수세미를 주었다.

"그 수세미는 세제 안 묻혀도 잘 닦이는 수세미입니다. 잘 쓰십시오."
"아이고 이런 걸 다 주시고… 고마워요. 잘 쓸게요."
"언제 시간 나시면 저희 교회에도 한 번 놀러 오세요."

대학생인 듯해 보이는 청년이 그리 말했다.

30년만에 풀린 궁금증

개화기 신문물은 강화를 거쳐서 들어왔지요. 그래서 강화에는 교회가 많아요. 우리 동네 교회인 '조산교회'도 역사가 백 년이 더 된 교회랍니다.
개화기 신문물은 강화를 거쳐서 들어왔지요. 그래서 강화에는 교회가 많아요. 우리 동네 교회인 '조산교회'도 역사가 백 년이 더 된 교회랍니다. ⓒ 이승숙
예전 내가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큰 축제였다. 특별한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골 동네에선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교회에서 하는 전야제가 큰 볼거리였다. 그래서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도 구경하러 가곤 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길을 가다가 큰 별을 보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장면이라든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을 만들어 두고 연극을 하는 게 그렇게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엔 온 동네 사람들이 교회로 구경을 와서 교회 안 마룻바닥은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그 날 밤, 꿈결인 듯 희미하게 찬송가가 들려오곤 했다. 엄마가 대문간으로 나가셔서 치사를 하는 말도 들렸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큰 소리로 남기고 그들은 골목길을 내려갔다.

다음 날 아침에 엄마한테 물어보면 한밤중에 와서 노래 불러주고 갔다고 하셨다. 교회에 안 다녔던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노래를 불러주러 동네를 다니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30여 년만에 풀렸다. 옷을 단단히 껴입고 목도리에 모자까지 눌러쓴 고등학생과 대학생 또래의 청년들이 한밤중에 찬송을 불러주러 동네를 다녔던 것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들려오던 따뜻한 노래 소리를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계속 듣고 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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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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