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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중략)……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 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 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 정호승 <서울의 예수> 중에서


우리 집안은 대대로 서울 사람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언제부터 서울에 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조부 이상부터 서울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이쯤이면 오리지널 서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어렸을 적과 비교하면 서울은 너무 달라졌고 비대해지고 황폐해졌다.

서울에서 살려면 얼마가 필요한가

서울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서울시의 총인구는 1029만 7천 명이다. 대략 우리나라 인구 5명 중에 1명은 서울에 사는 셈이다. 서울의 주택보급율은 2000년 77.4%에서 2005년 89.7%로 12.3% 증가했다지만, 아직 자가 점유율은 44.6%다.

주거전용가구 322만3천 가구 중 52.6%(169만3천 가구)가 전세나 월세 및 사글세 가구인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들 임차가구의 평균 전세금은 7191만 원, 월세 26만 원, 사글세 32만 원이라고 한다. 특히, 서울지역 아파트의 평균 전세금이 1억2998만 원으로 2000년(7683만 원)보다 69.2% 상승했다.

2006년 3/4분기 서울시 전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19만2천 원, 월평균 지출은 259만 원으로 60만2천 원의 흑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통계자료로 보자면 적어도 서울에서 내 집은 고사하고라도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 먹고 살려면 최소 1억3천만 원의 전세자금과 월평균 260만 원은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계소득은 올해 3/4분기의 통계니까 비교적 정확하다 하더라도, 아파트 가격이나 전세금은 2005년 말의 통계이므로 최근의 부동산 광풍을 생각하면 훨씬 상승했음이 틀림없다.

집이라도 가지고 애들 제대로 교육시키고 조금 풍족하게 살려면 그 이상을 벌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래저래 서울에 살기란 고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서울은 재미있는 지옥인가

나 같은 사람이야 서울에서 태어나 잠시 인천에서 근무한 몇 년을 빼고는 서울을 떠난 적 없으니 죽으나 사나 서울에 뿌리 박고 살아야 한다. 어쨌든 이렇게 서울이 비대해지고 수도권 도시마저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은 지방에 딱히 먹고 살 만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과 서울 아니면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15년 전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잠시 근무할 때 느낀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변변한 일자리가 보이지 않더라는 점이었다. 몇 군데의 대기업과 거기 딸린 하청업체 빼고 젊은이들이 취직할 데라고는 유흥업소와 작은 서비스 업종 점포들뿐이었다.

나 같아도 이 정도라면 그곳에서 사는 걸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기회가 없는 중소도시에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무엇 하러 눌러앉아 있겠는가. 지방경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지방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문제와 교육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살기 위하여 사람들이 몸부림치는 것은 서울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TV에서 귀농하거나 산간벽지로 내려가 사는 분들을 소개하고는 하는데, 부럽기도 하고 서울 사람으로 조상대대로 살던 서울을 떠나 언젠가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분들이 '희귀한 사례'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TV나 여려 매체에 소개되는 것이리라. 나 역시 살아온 기반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여느 다른 서울에 사는 사람들과 같은 형편이기 때문이다. 지옥 같은 서울에 살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예전 영국에 갔을 때 여행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 자꾸 생각난다.

"여기는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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