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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산타 활동이 끝나면 이제 마을 골목길에서 만나는 옆집 삼촌으로 그 아이와 다시 만나게 된다.
ⓒ 김형우
우리 마을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이의 이야기. 크리스마스가 '산타의 날'인 줄 알았다는 그 아이는 크리스마스의 진짜 주인공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사실 진짜 놀랄 일은 그 아이의 오해 그 자체가 아닐지. 설상가상으로 예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고아와 과부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툭 자르며 아이가 던진 한마디가 압권이었다.

"아… 이웃산타요!"

이웃산타.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시 강북구 곳곳에는 '이웃산타'라 칭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올해로 여섯 번째 맞는 이웃산타 활동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이웃 주민들이 직접 찾아 나서는 활동이다.

지난 12일 강북구 지역 주민 100여 명이 이웃산타가 되어 300여 가정 아이들의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집을 찾아 나섰다. 6년 전 서너 명이 시작한 작고 의미 있는 활동이 강북 시민사회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 것. 하여 우리 마을의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산타, 이웃산타의 날이 되어 버린 듯하다.

사라진 골목을 되찾기 위한 '이웃 산타'의 노력

@BRI@올해는 그간의 이웃산타 활동을 계기로 결성된 '좋은마을공동체이루기'라는 틀로 좀 더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강북구의 방과후공부방, 풀뿌리단체, 주민모임 등이 이웃산타 활동과 이를 통해 발굴된 아이들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돌보기 위해 뜻을 모았다. 그래서 올해는 참여 단체가 위치한 거점 별로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접근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실 이웃산타 활동은 좋은 마을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일 뿐이다. 그래서 이웃산타를 통해 발굴된 아이들을 위해 방학교실을 열거나, 지역 복지 사업과 연결될 수 있는 적절한 통로를 찾아주고 있다. 특히 '사랑의 책 배달부'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 가고자 한다.

이는 결국 마을의 좋은 이웃, 좋은 이모와 삼촌이 되어 주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어떻게 '마을 살이'를 되살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하나의 대답이다.

골목길.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진 마을의 대표적인 자취가 아닐까. 아이들이 뛰놀던 골목길은 없어지고 대신 주차장 또는 차도만 남았다. 골목길이 사라지면서 아이들 또한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변에 어떤 아이가 살고 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졌다. 골목에서 노는 이웃 아이의 점심을 옆집 아줌마가 먹여주고, 버릇없이 구는 아이를 부모대신 혼내주던 마을 문화도 골목길과 함께 사라졌다.

이렇듯 이웃산타 활동은 사라진 골목길을 되찾기 위한 매우 인위적(?)인 노력이다. 골목길에서 서로 만나 인사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 어찌 보면 참 보잘 것 없는 꿈일 수 있다. 하지만 골목 위에서 새롭게 재편되는 관계는 그 어떤 행정적 지원보다 촘촘하고 일상적이며 지속가능하다고 믿는다.

마을의 삶으로 전화할 때 '이웃'이 될 수 있어

▲ 지난 12월 12일, ‘2006 이웃산타 발대식’을 수유리교회에서 진행하였다
ⓒ 김형우
▲ 좋은마을공동체이루기 수유5동모임에서 참여자 신청과 모금을 위해 거리 홍보를 하고 있다.
ⓒ 김형우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예수께서 물으셨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강도 만난 자를 스쳐 지나간 사제와 지식인은 갈 길을 멈추고 정성껏 치료해준 사회적 소수자, 사마리아인의 행보와 비견되었다. 그들에게 길은 목적지를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사제와 지식인의 걸음이야말로 전형적인 도시의 걸음이다.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는 이름 없는 행인들의 걸음. 그러나 마을을 마을답게 수놓는 골목길은 느리게 걷는 이들의 걸음으로 채워진다. 걸음을 늦춰야 마을의 골목길에서 마주칠 이들을 눈으로 주목할 수 있다. 그러 다음에야 오늘 만난 옆집 아이를 위해 하루의 작은 순간을 부담 없이 내어 줄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도시적 삶에서 마을의 삶으로 전환할 때 우리는 이웃이 되는 하나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예수야말로 아름다운 '마을 살이'로 초대 했던 선구적인 풀뿌리 운동가로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 이웃산타 참가자들이 동사무소나 학교에서 추천받은 아이들의 주소를 확인하며 집을 찾고 있다.
ⓒ 김형우
다음은 이웃산타를 통해 조사된 가정 사례이다.

#사례1
차가운 바닥은 아이들이 갖고 논 장난감과 먹다 남은 음식물, 전깃줄 등으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3학년 현지(가명)는 1학년인 동생 현석(가명)과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낸다.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는 엄마의 말씀 때문이다.

밤 10시 현재, 어른은 없다. 엄마는 식당일로 밤 11시나 돼야 집에 들어온다고 한다. 유리 조각도 흩어져 있다. 좀 전에 현석이 놀다 깼다고 한다. 함께 방문한 이웃산타 삼촌이 부리나케 청소해 주었다. 현석이가 밥을 많이 먹는데도 키가 잘 안 큰다고 걱정하는 현지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사례2
은하의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그전에 집을 나가셔서 못 본 지 오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는 위암, 자궁암 수술 후 기도의 힘으로 전전긍긍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작년까지 일을 하셨으나 몇 가지 수술 후 일을 못하고 계시다.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데 서류 상 딸이 있다는 이유로 그마저 금액이 줄었다고 한다. 바닥이 매우 차가웠다. 은하는 이가 많이 썩었고 비만이다. 몸을 잘 돌볼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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