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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콘서트를 가진 아우라 연주장면. 무대 한 켠에 메트로놈을 작동시킨 채 연주하는 모습이 이채로왔다
ⓒ 김기
산발한 머리를 치렁치렁 내려뜨린 채 한 여성이 어둠 속에서 나와 낡은 여행가방을 열어 무대 위에 쏟아놓고는 이윽고 무심하게 악기를 연주한다. 얼핏 복장으로 봐선 펑키한 음악이 나올듯한데 막상 들려오는 음악은 조성이 익숙지 않은 현대음악 풍이다. 대관절 어떤 음악인가 팸플릿을 들쳐봤더니 제목이 독특하다 못해 괴이할 정도다. 연주곡목이 '박테리아의 첫 번째 생각'이다.

그런 후, 또 한 여성은 무뚝뚝한 걸음으로 무대로 걸어 나와 보랏빛 구슬이 담긴 사각 어항에 길게 물을 쏟는다. 그것도 자기 음악의 일부라는데 제목은 '마녀의 구슬'이란다. 앞서 두 여성에 비하면 음악이 낯선 조성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라 해도, 다른 한 여성이 철사를 구부려 만든 전등을 멀찍이 걸어놓기만 한 채 연주한 곡은 대단히 일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 곡의 제목은 '그러나'이다.

이들 세 가지 정경은 올해로 세 번째 리사이틀을 갖는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 세 멤버들이 전과는 달리 자신들이 직접 작곡(혹은 구성)한 곡을 단지 음악만이 아니라 퍼포먼스와 오브제를 통해서 표출한 것들이다.

▲ '박테리아의 첫 번째 생각'을 쓰고 연주한 경소
ⓒ 김기
혜인은 짧고 그래서 뭔가 숨어있나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러나'를 썼다. 경소는 '박테리아의 첫 번째 생각'을 쓰고 가장 길고 스토리를 담은 퍼포먼스를 곁들였다. 설현은 가장 음악에 가깝다고 인정할 수 있는 물과 어항을 이용한 퍼포먼스와 함께 '마녀구슬'을 쓰고 연주했다.

'아우라'라는 단어는 20세기 초중반에 등장한 예술용어로써 다른 것과 비견되지 않는 예술 자체의 독특하고도 고고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에는 항상 아우라에 대한 욕망과 동시에 어떤 부담도 존재해왔다. 젊은 음악가들이 남들과 다른 음악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우선 칭찬할 일이다.

근래 젊은 국악인들이 아우라 보다는 대중친화력에 전력을 기울이는데 반해 한쪽에서는 이렇듯 엉뚱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것도 분명 필요한 요소이다. 물론 아우라를 추구함에는 필연코 뒤따르는 고독을 감수할 각오는 필연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다.

▲ 구슬이 담긴 사각어항을 앞에 두고 자신이 쓴 '마녀의 구슬'을 연주하는 설현
ⓒ 김기
애초 데뷔 콘서트를 연말에 한 <아우라>는 3년째 계속 같은 때에 음악회를 열고 있다. 묘한 고집이다. 올 콘서트는 박한규가 작곡한 '시간이 없다'를 제외하고는 멤버들이 직접 쓴 곡과 지난 연주에 썼던 기존 곡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유일한 신곡 '시간이 없다' 는 무대 한 켠에 사각철망 위에 속도 116에 맞춘 메트로놈을 올려놓고 연주해서 시선을 끌었다.

그 외에 임지선의 '또 다른 세상에는_세 번째 이야기'와 조용욱의 '집 잃은 비둘기' 그리고 임준희의 '세대의 25현 가야금을 위한 순간'을 포함해서 총 7곡을 연주했다. 문화일보홀에서 19일 저녁 8시에 연주를 시작한 <아우라>의 세 번째 콘서트에서는 분명 <아우라>만의 아우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연주를 마치고 경소는 "각자 자기 곡을 써서 발표하자는데 동의하고 준비했는데, 막상 펼쳐놓고는 그 동안 몰랐던 서로의 다름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그렇지만 그 차이가 앙상블을 위한 중요한 동기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설현은 "이번에는 아우라 플러스알파를 보여주고자 했다"며 "그것이 퍼포먼스와 오브제인데 그것은 음악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플러스를 청중에게 선물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평소 대변인처럼 모든 말을 해온 혜인은 어쩐 일인지 이번 연주에서는 말을 아꼈다.

▲ 가장 정적인 모습를 보인 혜인의 자작곡 '그러나' 연주 모습
ⓒ 김기
최근 <주몽> <대조영> 등 고대사의 남성 영웅들을 중심으로 한 사극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인지를 높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 전쟁영웅 이야기가 아닌 기생 황진이를 다룬 드라마가 오롯이 약진하고 있어 흥미롭다. 우리사회가 이제는 경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성의 배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 현재의 한국문화 기상도는 치우친 정도를 벗어나 상업성 일변도임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음반시장이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쇠락한 대중가요시장이지만 그조차도 기초음악의 형편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특별한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기초예술음반이 제작되어 팔리는 숫자는 대단히 미미하다. 특히 국악음반시장은 암울하기만 하다.

요즘 국악인들은 더 이상 '우리 것이니까, 당연히!'를 외치지 않으려 한다. 대중이 다가와주길 바라는 대신에 대중에 맞는 음악으로 무장하고 외롭게 음악시장에 몸을 던진다. 그런 시도와 세월이 더해져 근래 들어서는 희망적인 소식들도 간간히 들리고 있다. 그러나 앞서 TV드라마의 예처럼 우리의 문화환경이 다양성을 안배하는 현상은 가야금 앙상블 <아우라>의 세 번째 리사이틀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국악대중화는 현대 들어 국악계의 숙원이자 지상목표로 인식되고 있고,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민족음악의 당위이다. 그렇다고 모두 대중적 음악에 매진하는 것까지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 흐름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또 다른 발상으로 음악에 대한 고민을 견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 가야금을 활로도 연주하는 등 아우라의 가야금 실험은 독특하고 진지하다
ⓒ 김기
국립국악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까지 거의 십 년을 함께 생활해온 동갑내기 세 처녀의 가야금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녀들이 가벼운 수다보다는 진지한 수행의 침묵 같은 음악을 선택한 동기는 그 실력에서 발로한 욕심으로 볼 수 있다. 그 욕심이 내년 여름에는 뉴질랜드 아트 페스티벌에 초청받게 했고, 빠르진 않지만 그녀들의 음악이 서서히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이번 연주회 포스터, 팸플릿 어디에도 그녀들의 사진은 찾아볼 수 없다. 3명을 모아서 건조한 사진 한 장 찍자고 하자 농담 식으로 한 마디 건넨다. "우린 얼굴은 포기했어요"한다. 비슷한 또래의 다른 가야금 팀을 의식한 듯하나, 이미 그녀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본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덧붙이는 글 | 아우라 멤버들은 이번 연주회 홍보물 모두에서 자신들의 성 씨를 뺀 이름만으로 표기했다. 기사도 그들의 의지를 존중해 성을 뺀 이름만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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