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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꼴찌 아닙니다
저, 꼴찌 아닙니다 ⓒ 박명순
중1 딸아이가 드디어 1학년을 총 마무리하는 기말고사를 끝냈다. 1학년 총원 344명중 공동 141등을 하면서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기쁘고 벅차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지 않은 가정이 없으랴만, 그동안 맞벌이 한답시고 아이의 학습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7살 무렵, 속셈학원을 보낸 것이 취학 준비의 전부였다.

남들 다 하는 학습지는커녕, 구구단과 한글만 겨우 떼고도 아이는 별 무리 없이 학교생활을 해 나갔다. 큰 돈벌이가 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아이 뒷바라지 하는 게 낫다고들 했다. 그런 주위 만류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일이 바빠 선택할 여지 또한 당연히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니, 비교대상이 없어 공부의 중요성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덕분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성적이 반에서 최 하위권에 머물렀다.

심상치 않은 주변 분위기에 겁을 먹기도 해서 한때 수학 과외를 시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학습 진행 상황을 집에서 자주 점검하지 않으면 무늬만 공부일 뿐 알맹이가 없었다. 놀지도 못하고 애만 고달프게 하는 것 같아 그마저 얼마 못가 그만두었다. '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이 대책 없는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이렇게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다 드디어 중학생이 되자, 아이 부모 모두 마음이 바빠졌다. 물론 그동안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공부가 갑자기 재미있어질 리 만무했다. 주변에서 권하는 대로 과목별로 명품 참고서를 고르고 문제집도 샀다. 틈나는 대로 '공부의 필요성'을 열변했고, 아이는 힘겹지만 따라와 주는 듯했다.

이때를 놓치면 공부와는 영영 담 쌓을 것 같은 불안함에 남편과 나도 옆에서 열심히 도왔다. 다행히 아이는 1학기 평점 중간순위까지 올라왔고, 우리 부부에게도 어렴풋이나마 희망이 부풀었다.

옆에서 같이 호흡하고 지켜보니, 아이의 잘못된 공부습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불성실한 노트필기였다. 공부에 열정을 가지지 못한 딸애는 귀한 수업시간 선생님 말씀을 깊이 새겨듣지 못했다. '조금 더 일찍 습관을 바로 잡아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노트 필기법'부터 가르쳤다.

@BRI@우리 부부는 모든 공부의 기본은 '학교수업'이라고 생각해왔다.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학원을 다녀도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학원도 다니지 않으면서,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가 좋은 성적 낼 리는 만무하다. 공부가 타고난 아이는 가르치지 않아도 대부분 수업에 집중한다.

그러나 보통아이의 부모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교육에의 의지다. 시중에 얼마나 많은 참고서와 문제집들이 널려 있는가. 공부할 의지만 있다면 손만 뻗어도 사방에 두루 널려 있지 않은가. 인터넷 교육 콘텐츠와 EBS 교육방송이 있어 벽지에서도 학원 한 군데 다니지 않고도 유명대를 진학하는 세상이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끝으로 우리는 식탁 앞에 둘러앉았다. 고군분투한 딸아이를 격려하고자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던 한 해, 터질 듯 여드름 꽃망울을 이마에 단 딸아이가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냈다. 자신이 목표한 성적에 미치지 못해 잠시 의기소침해 하던 아이가 말했다.

"아빠, 다음엔 좀 더 열심히 할게요."

사실, 아이 공부 덕분에 올 한 해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 속 끓이는 것에서 벗어나, 크게 짚어주는 남편이 있어 든든했다. 그리고 '공부'라는 화제를 놓고 대화가 되는 아이의 현재가 고맙다.

공부는 단지 핑계일 뿐, 이로써 우리는 부모 자식 간 대화의 통로를 열어 놓은 셈이다.

덧붙이는 글 | 강요하는 '공부' 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공부'가 되면서 사이가 더욱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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