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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실은 유모차를 끌고 도시락 배달에 나섰습니다
도시락을 실은 유모차를 끌고 도시락 배달에 나섰습니다 ⓒ 이상욱
날씨는 자꾸만 추워지고 뉴스에서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안타까운 얘기가 들려옵니다. 지난 13일 인턴기자 두 명이 직접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 찾아 나섰습니다.

서울시 도봉구 방학2동에 있는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열 다섯분의 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65세 이상 되신 분들 가운데 생활 보호대상자, 독거 노인들에게 이 도시락은 배달됩니다.

오전10시 30분. 이혜남(72) 할머니께서는 오늘도 어김 없이 유모차를 끌고 복지관으로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복지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약 2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일요일을 제외한 6일 동안 한 끼의 도시락을 네 가정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혜남 할머지는 형편이 좋지 않지만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도시락 배달로 조금씩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 일을 하면서 건강도 좋아졌고,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만난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홀로 살아가시는 노인 네 분의 집안 사정을 훤히 아십니다. 이들에게 이혜남 할머니는 이웃입니다. 이혜남 할머니에게 매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날도 할머니는 따뜻한 밥과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유모차에 싣고 네 분 할머니의 집으로 향합니다.

#1. 이영순(가명·70) 할머니, "내 소원은 고통 없이 죽는 것"

이영순(가명 70) 할머니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영순(가명 70) 할머니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이상욱
이혜남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10분 정도 골목길 사이로 걷다 보니 어느새 이영순 할머니 집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 도시락 왔어요."

이영순 할머니는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계십니다. 방에 들어가 앉으니 방바닥이 꽤 차갑습니다. 날씨가 춥지만 난방비가 만만치 않아 전기요로 대신 버틴다고 하십니다.

시민단체인 '환경정의'가 지난 9~10월 저소득층 밀집 거주지역의 199가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하층에 사는 가구가 55.3%에 이른다고 합니다. 햇볕도 잘 안들고 환기도 안되는 지하층에 살면서 저소득층은 없던 병이 생기고, 앓고 있던 병이 더 악화되기도 합니다.

이영순 할머니 집 장롱 위에는 약봉지만 족히 세 박스가 넘게 있습니다. 최근 4가지 병이 겹쳐 먹어야 할 약이 늘었답니다. 그런 이영순 할머니에게 소원은 병이 낫고 고통 없이 죽는 것입니다.

이영순 할머니에게는 아들 둘, 딸 둘이 있지만 찾아오는 자식이 없습니다. 다들 형편이 어려워 찾아오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전화 한 통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하신가 봅니다.

"자식들이 나한테 먼저 전화 안혀. 내가 만날 먼저 허지."

그 얘기를 듣고 계시던 이혜남 할머니도 한마디 하십니다.

"그동안 자식들 뼈빠지게 다 뒷바라지 해주면 뭐혀. 나중에 커서 잘 되면 다들 부모 모른 척 하는데 ..."

#2. 김옥자(가명·74)할머니,"내가 죽으면 우리 어머니는 어떠켜"

다음은 아흔넷이 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김옥자 할머니 집입니다.

얼마 전 암이 재발해 폐암 수술을 받은 김옥자 할머니에게는 자식 걱정보다 더한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병이 악화돼 아흔넷 어머니를 모시기 힘들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아까 약 먹다가 목구멍에 막힌겨. 그래서 막 사방을 헤맸는데 하두 고생시려워서 정말 앉아서 딱 죽었으면 싶었다니깐. 근데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떠켜. 안되자녀…."

김옥자 할머니는 딸 명의로 되어있는 빌라에서 현재 살고 계시지만 현재 압류가 되어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 탓에 병원비는 할머니에게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다행히 사회복지사의 소개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3. 최명옥(가명·78) 할머니, "이렇게 얘기하니까 얼마나 좋아"

이해남 할머니와 함께 도시락을 배달합니다
이해남 할머니와 함께 도시락을 배달합니다 ⓒ 이상욱
지하 단칸방에 사시는 최명옥 할머니는 우리에게 따뜻한 커피를 주십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 셋이 있는데 일자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하십니다. 최명옥 할머니는 올해 2월까지는 양말 뒤집는 일을 하면서 한 달에 20만원씩은 벌었지만 이제는 허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가씨(기자를 가리키며)만할 때 끝발 날렸었는데. 기술 하나 끝내줬었거든. 근데 지금은 다 늙어서 손가락이 쥐어지지도 않아."

양말 뒤집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며 젊은 시절의 얘기를 꺼내십니다. 미군 담요 가지고 학생복을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꽤 손재주가 좋으셨답니다.

"이렇게 사람들 만나면서 지껄이니까 얼마나 좋아. 건강해지는 것 같고. 근데 혼자 있으면 계속 누워있으니까 더 아픈 것 같아."

일을 나가시고 없는 한 할머니의 집이 쓸쓸해 보입니다
일을 나가시고 없는 한 할머니의 집이 쓸쓸해 보입니다 ⓒ 이상욱
네 번째 방문한 할머니는 일을 가셨던 터라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부엌에 도시락을 두고 나왔습니다. 네 분의 식사를 다 돌고 나니 벌써 1시가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혼자 점심을 드시겠다는 이해남 할머니를 붙잡고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은 비싸다며 결국에는 들어간 곳은 자장면 집. 추울 땐 따끈한 우동이 최고라며 우동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함께 점심을 먹으니 기분이 좋다고 하십니다.

"집에 가면 혼자 먹어야 하는데 같이 먹으니까 좋네 그려."

늘어나는 독거노인들

보건복지부에는 독거노인 수를 83만여명으로 추정하고 습니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되지 못한 노인은 30여만명에 이릅니다. 지난 3일에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3동의 한 단칸방에서 혼자 지내던 85세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복지부는 독거노인 도우미 파견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만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 군에서는 늘어나는 저소득노인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독거노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지원하고, 작은 배려와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은 정말 요원한 일일까요?

13일 하루 동안 만났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계속 귓가에 울립니다.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계속 찾아왔으면 좋겄어 그려."

"함께 관계 맺는 이웃이 필요하다"
[인터뷰]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김세진 재가복지팀장

- 도시락 배달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서울시의 독거노인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한 끼당 2천원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도시락 한 개당 1500원을 후원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고 일요일은 교회에서 후원을 받고 있다."

- 도시락 배달 사업의 목적은.
"1998년 복지관이 개관할 때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일이다. 도시락 배달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자원 봉사자들은 도시락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홀로 사시는 분들에게 안부도 묻고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 '나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눔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밥 한 끼 더해서 이웃에게 베푸는 것, 무슨 일이 없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나눔이다."

- 독거 노인에 대한 정부 지원 가운데 아쉬움점이 있다면.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참 애매하다. 어느 동네는 수급자의 혜택을 받는데 어느 동네는 그렇지 않다. 독거 노인에 대한 복지 혜택이 좀 더 폭넓게 제공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거 노인들 문제를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이웃간의 '관계'를 맺는 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진정 그들이 바라는 것은 도시락이 아니라 같이 먹어줄 '사람'이다." / 이진선

덧붙이는 글 | 이진선, 이상욱 기자는 <오마이뉴스>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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