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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순
내 아이가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늦은 6살 무렵이었다. 설령 그보다 더 일찍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6살 되던 해, IMF로 인해 나라 경제 사정이 안팎으로 곤두박질칠 때였던 1998년으로 기억된다. 좀더 섬세한 엄마였다면 그보다 훨씬 앞서서 아이의 손놀림을 예의 주시 했을 텐데, 생각해 보니 참 무심한 엄마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때부터 아이가 일주일에 한번, 선생이 방문하는 학습지를 시작했는데, 처음 몇 장은 선생과 함께 공부하고 남은 부분은 아이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물로 남았다.

매일 일정량을 꼬박꼬박 해야 학습효과가 좋다는 말에 퇴근 후 저녁상을 물린 후 아이가 숙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연필이 왼손에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마음에서 갈등이 생겼다. '오른손으로 바꾸어 주어야 하나? 아냐, 왼손도 흔치 않다는데…. 게다가 논리적 두뇌 발달에 좋다고 하니까, 걍 냅 둬?'

결정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오른손잡이니 왼손 쓰는 이의 불편함을 알 리 없지만, 아이 자신이 인생을 살다가 불편하고 힘들면 스스로 바꾸겠지 하는 생각이 더 앞섰기 때문이다. 그 후로 방문하는 선생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오른손으로 쓰기를 권유했으나 모른 체 외면해 왔다.

@BRI@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그 부분은 현실로 다가왔다. 유독 글 쓰는 속도가 느렸으며, 글씨 모양도 비뚤고, 줄에 맞춰 쓰지 않아 담임으로부터 지적당하기 일쑤였다. 5학년인 지금도 글씨를 퍽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갈등을 불러일으킬 만큼 속도가 늦지도 않으며 글씨체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

나는 글씨를 꼭 잘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는 하나, 글씨보다 내용과 생각의 알참 쪽에 무게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라 크게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쓰기'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컴퓨터가 있지 않은가. 굳이 불편한 '아날로그'를 고집하지 않고 '디지털시대'에 맞추어 살아가면 될 뿐이다.

다만, 아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때 모든 생활 도구나 사회 시설들이 오른손잡이 위주에서 오는 불편함을 잘 견딜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집에서야 식탁 앞 자리배치도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정해 주고, 밥공기와 국 대접, 수저와 젓가락의 위치도 왼편에 두어 배려하지만. 사회에 나가서야 스스로 불편함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직은 아이가 왼손을 사용하는 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므로 조급해 하지는 않지만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왼손과 더불어 오른손을 쓸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일 것이다. 짜인 틀 안에 자신을 맞출 게 아니라, 자신의 틀 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불편은 겪을수록 대처하는 요령도 생기는 법 아닌가.

남들보다 유난히 감성적인 내 아이, 궁금한 것도 아주 많다. 아직도 글씨가 곧잘 줄넘기를 하고 마우스를 잡은 왼손이 어설퍼 보이긴 해도, 나는 내 틀 안에 아이를 가두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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