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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12월은 매듭달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마지막, 즉 끄트머리 달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왠지 허전하면서도 분주한 달이기도 하다. 이때만 되면 난 내 손을 쳐다본다. 내 손에 쥐어진 게 무에 있나 싶어서이다. 몇 십 년을 그렇게 바라보지만 늘 빈손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해오름달(1월)에 마음먹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지만 육신의 세포만 줄어들었음을 느낄 뿐 삶의 손금들만 가득 찬 빈손이다. 빈손을 쳐다보다가 그래도 뭔가 정리는 해야 할 성싶었다.

@BRI@그런데 이번엔 나만이 아닌 아이들과 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게 무얼까 생각하다 책을 생각했다. 아이들이나 나나 올 한 해 몇 권의 책은 읽었으니 함께 갈무리할 공통분모로는 제격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이리 와 봐."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불렀다.

"아빠, 왜?"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들며 궁금한 얼굴을 내민다. 아빠가 아이들을 함께 부를 땐 대부분 뭔가 준다거나 함께 하고자 할 때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빠가 너희들 선물주려고."
"무슨 선물? 또 뽀뽀 선물 주려고 그러지?"

눈치 빠른 아들 녀석이 지레 뽀뽀 타령으로 기선을 제압한다. 뽀뽀 선물은 그만 사양하겠다는 표시이다.

지금까지 아들 녀석은 아빠한테 숱하게 뽀뽀 선물을 받아왔다. 공부를 게을리할 때도 공부하면 선물 준다고 해놓곤, 그 선물로 볼에 뽀뽀 50번을 해주든가 아님 책 한 권 읽으면 선물 준다 해놓고 진한 뽀뽀 두 번 해 주든가 하는 식으로 선물을 주었다.

그러면 녀석은 '또 뽀뽀' 하면서도 싱글벙글 좋아했다. 물론 딸아이에게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들 녀석이 뽀뽀가 아닌 다른 걸 원하고 있다는 표시를 간접적으로 한 것이다.

"아냐. 이번엔 뽀뽀 선물 아냐. 좀 더 좋은 선물 줄 거야."
"정말이지. 우리가 원하는 거 줘야 돼. 뭐 하면 줄 건데."

선물이란 말에 애가 탄 녀석들이 할 일이 뭐냐고 묻는다. 딱히 무슨 선물을 줄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아 일단 할 일부터 이야기했다.

딸아이가 삐툴빼툴 연필로 적은 책 목록
딸아이가 삐툴빼툴 연필로 적은 책 목록 ⓒ 김현
"올 1년 동안 읽었던 책을 정리하는 거야. 지금까지 읽은 책은 얼마나 되는지 정리하면 돼."
"그럼 줄거리도 써야 돼?"

책을 정리하자는 말에 딸아이가 줄거리까지 쓰라고 할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묻는다.

"아니. 그냥 책이름하고 글 쓴 사람 이름만 적으면 돼. 그리고 책 읽은 것은 20일까지 읽은 것으로 할 거야."
"우리만 하는 거야?"
"아빠도 엄마도 할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녀석이 연필과 종이를 쥐어들더니 책꽂이를 훑으며 자신들이 읽었던 책이름과 글쓴이 이름을 적기 시작한다. 그러자 조용하던 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그런 모습을 보고 밤에 웬 책사냥이냐며 은근히 남편을 쳐다본다.

밤 10시가 넘도록 책 목록을 적던 녀석들이 책 다섯 권씩을 뽑아들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잠 잘 시간에 왜 책을 들고 가냐고 하니 둘이 서로 마주보고 키득거리더니 '우리 잠 안자고 책 읽을 거야' 한다. 둘이 은밀한 모의를 한 것 같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아내가 '아유 못 말려. 그 아빠에 그 아이들이라니' 하며 웃는다.

"웃지 말고 당신도 책 목록 적을 생각이나 하라고. 당신만 빠지면 왕따 당하니 왕따 당하지 말고."
"나야 읽은 책이 몇 권 안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근데 나도 선물 주는 거야?"
"글쎄. 당신은 읽은 정도 봐서 생각해 봐야지. 그러니 20일까지 열심히 읽으라고."
"암튼 못 말려요."

그러면서 허브 차를 내놓는다. 차를 마시면서 아내 몰래 손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빈손이다. 하지만 거기엔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과 막 책 목록을 작성하다가 책을 빼들고 방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 빈손은 허무한 빈손이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로 꽉 찬 손이 아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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