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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바구니까지 받쳐 놓고 열심히 귤을 따는 이현수
플라스틱 바구니까지 받쳐 놓고 열심히 귤을 따는 이현수 ⓒ 이종일

지난 11월 중순부터 말까지 보름 동안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만 했습니다.우리 아들 현수와 딸 현경이 그리고 마누라까지 제주도 외할머니 댁에 갔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현경이의 아토피가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름에 잠깐 내려갔을 때 아토피가 싹 없어진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다시 보내보기로 한 것 입니다. 주변의 환경이 아토피를 심하게 만든다고 해서 공기 좋은 제주도에서 지내면 정말 나아지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나무에까지 올라가서 귤을 따는 이현수!
이제는 나무에까지 올라가서 귤을 따는 이현수! ⓒ 이종일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현수와 현경이 외할머니 댁은 제주도의 대부분의 농가가 그러하듯이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귤 농사를 짓습니다. 외할머니 댁 마당에도 귤나무가 많이 있고 지금 딱 귤을 따는 시기라서 여름에만 내려가서 파랗고 작은 귤만 보았던 현수 현경이에게 노란 귤이 달려 있는 귤나무를 보여주고 직접 따는 것을 체험시키고자 보냈습니다. 외할머니 일손도 도와 드리고 겸사 겸사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조그만 놈들이 얼마나 도와 드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손자 손녀가 내려와서 조잘 조잘 거리면 힘이 더 나실 것 같았습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심각하게 귤을 따는 이현경!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심각하게 귤을 따는 이현경! ⓒ 이종일

보낼 때는 한 일주일 정도를 예상하고 보냈는데 보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루에 한번씩 통화를 하지만 그 때마다 마누라는 여기 조용하고 공기 좋고 살기 좋다고 말하면서 은근히 더 있기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현수와 현경이는 전화를 하면 “아빠 빨리 회사 끝나고 제주도로 오세요”“ 아빠! 제주도로 빨리 데리러 오세요” 하면서 아빠를 그리워하는데 마누라는 오랜만에 휴가를 받은 듯 좋아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평상시에는 퇴근하면 아파트 현관문 여는 소리만 나면 “아빠~”하고 큰 소리로 부르면서 뛰어나오던 놈들인데 언젠가부터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깜깜한 적막뿐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아빠한테 매달리고 아빠 몸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놈들이 언젠가는 보이지 않으니 참 허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빠! 놀아줘~”“ 아빠! 안아줘~”“아빠! 피곤하셨죠?”“ 아빠! 옷 벗으세요” 이렇게 재잘대면서 아빠를 반기던 놈들인데 전화로 목소리만 듣고 있으려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빠차만 타고 다니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현수와 현경
아빠차만 타고 다니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현수와 현경 ⓒ 이종일

잠 자고 먹는 것은 할머니가 알아서 어지간히 챙겨주시겠지만 아빠 없는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이 놈들도 아빠처럼 아빠를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렇게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현수가 태어날 때 제주도에서 태어나 한달 정도 떨어져 있었고 자라서는 하루 이틀 정도였는데 보름이라는 긴 시간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제주도 외할머니 댁은 시골이라 애들에게는 그렇게 놀만한 시설이나 장난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뭐하고 지내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서귀포시내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을 보기도 하고 근처 공원에 가서 놀기도 하고 풀밭에 가서 강아지 풀도 뽑아보고 귤도 따보고 아빠가 걱정한 것과는 달리 나름대로 재미있게 지낸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는 못 보는 텔레비전도 할머니 연속극도 못 보게 하면서 만화영화만 아주 실컷 보았다고 합니다.

먹기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하고 바쁜 현수와 현경
먹기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하고 바쁜 현수와 현경 ⓒ 이종일

올라오겠다고 비행기표를 예매하는데 주말에는 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3일 더 연장을 하게 되었고 수요일 날 저녁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제주도가는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아서 조금 가격이 낮은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보통 타는 비행기에 절반가격에 왕복을 했습니다.

올라오는 전날에 제주도에서 비행기 바퀴가 고장나서 불시착하는 장면을 보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적은 비행기에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려다가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올라온다고 하니까 전날 저녁에 집에 들어가도 왠지 훈훈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서 빨리 내일이 오고 저녁이 와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전화가 와서 벌써 도착했다고 합니다.

차를 세우고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가니까 현수와 현경이가 엄마와 함께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몰래 다가가 “이현경!” 하니까 “아빠~”하면서 소리를 치면서 안기는 겁니다. 누가 보면 진짜 오랜 기간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 것이 아닌하는 착각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얼굴을 보니 여전히 건강했습니다.

“아빠 안보고 싶었어?” “ 아니 많이 많이 보고 싶었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전히 이현경은 조잘 조잘 아빠한테 얘기를 해줍니다. 오랜만에 한 가족이 모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약간 그을린 것 같기도 하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현경이 아토피도 없어졌습니다. 일시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없어진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현수와 현경이가 딴 귤을 정리하시는 할머니! 이 귤도 함께 올라왔답니다
현수와 현경이가 딴 귤을 정리하시는 할머니! 이 귤도 함께 올라왔답니다 ⓒ 이종일

공항에서는 마누라 얼굴이 보이지 않더니 집에 오니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말 안 해도 속으로는 삐졌을 겁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부부가 그냥 잘 수는 없었지요

아무튼 아빠 혼자서는 기러기 아빠의 심정을 일백 번 헤아리면서 지내야만 했던 보름이었지만 현수와 현경이 그리고 우리 어부인께서는 공기 좋은 곳에서 맘껏 뛰어 놀고 휴가를 다녀왔으니 만족합니다.

멀리 가족을 보내고 혼자서 지내시는 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렇게 견딜 수 없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보름 동안의 이별이 이러한 철 없는 생각을 싹 가시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주 일백 번 골백 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푸른 풀밭에서 강아지풀과 노는 이현수!
푸른 풀밭에서 강아지풀과 노는 이현수! ⓒ 이종일

이번의 보름 동안의 이별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어려워도 즐거워도 항상 가족은 붙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헤어지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돌아서기 전에 한 번 더 심사숙고 해야 합니다. 가족은 소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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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PB로써 고객자산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내 증권방송 앵커 및 증권방송 다수 출연하였으며 주식을 비롯 채권 수익증권 해외금융상품 기업M&A IPO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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