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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먹음직스럽게 진열된 홍게
먹음직스럽게 진열된 홍게 ⓒ 김현
"엄마! 영덕 게 왔어. 영덕게… 우리 영덕게 사 먹자."
"야, 그 비싼 걸 어떻게 먹어. 호두과자 사 먹으라."
"에이, 엄만 맨날 안 사준데. 세 마리에 만 원이래."

@BRI@아이들이 태권도 도장에 갔다 들어오자마자 엄마한테 영덕게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아파트 창을 열고 보니 영덕게라고 쓰인 글씨가 큼지막하게 보이고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애들이 먹고 싶다는데 그냥 사주지 그래. 날도 추운데."
"당신은 항상 애들 편이어서 큰일이야. 그러니까 아빠한테 말하면 다 되는 줄 알지."

아내는 투덜거리면서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아들 녀석에게 준다. 그러자 아들 녀석은 '야호~!' 환호성을 지르며 금세 겉옷을 걸치더니 누나와 아빠의 손을 잡아끈다. 늘 개구쟁이처럼 행동하지만 귀염성만은 누나보다 더해 가끔 침대 위에서 레슬링 하듯 뒹굴곤 하는 아들 녀석의 행동을 보니 절로 웃음이 인다.

게를 파는 아파트 앞 한 쪽에는 호두과자 장수가 있다. 며칠 전 호두과자를 사러 나갔던 아들 녀석은 봉지 없는 호두과자를 두 손에 가득 들고 온 적이 있었다. 장사가 끝나서 팔지 않는다며 아저씨가 집에 가 아이들 줄 요량으로 남겨놓았다며 그냥 한 줌 쥐어줬다는 것이다.

김이 무럭무럭...찜통에 게를 익히고 있다.
김이 무럭무럭...찜통에 게를 익히고 있다. ⓒ 김현
하얀 김 속에서 붉은 영덕대게(실은 홍게이다)가 먹음직스럽게 나열되어 있다. 얼마냐고 하니 작은 것은 세 마리에 만 원, 좀 나은 것은 두 마리에 만원, 좋은 것은 세 마리에 이만 원이라 한다.

"아저씨 이거 진짜 영덕게 맞나요?"

예전에 영덕게라 해서 사먹었다가 살은 없고 껍데기만 아작아작 씹었던 기억이 있어 물었더니 아저씨가 허허 웃는다.

"말이 영덕게지 영덕게는 아니에요. 독도를 중심으로 동해안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데 영덕 집하장으로 모이니까 그냥 영덕게라고 하는 거죠. 이건 홍게예요. 드셔보세요. 그래도 맛이 있을 겁니다."

게가 이렇게 커요
게가 이렇게 커요 ⓒ 김현
그러면서 큰 것이 살이 더 있을 거라며 큰 것을 권한다. 만 원을 주고 두 마리를 들고 집에 오자마자 뜯는데 살이 꽤 통통하다. 아내가 가위를 가져오더니 커다란 다리를 자르고 갈라서 아이들에게 준다. 맛있다며 쩝쩝거리고 먹던 딸아이가 불쑥 "엄마는 왜 안 먹어?" 하고 묻는다.

"너희들 먹게 하려고 못 먹는 거지. 어서 많이 먹거라. 엄만 나중에 먹을 테니."
"나중에 먹을 게 어디 있어. 가위 이리 줘 봐. 내가 자를 테니 당신 좀 먹어."

가위를 들고 다리를 잘라 가르고 있는데 눈치 빠른 아들 녀석이 게살을 엄마한테 '아~' 하라며 입에 넣어준다. 그러자 이번엔 딸아이도 자신이 먹으려다 말고 엄마의 입에 넣어준다.

"야, 너희들 엄마한테만 주고 아빠한텐 안 줄 거야. 그럼 아빠가 섭섭한데…."
"얘들아, 아빠가 또 질투하신다. 빨랑 드려라."

게의 속살
게의 속살 ⓒ 김현
아빠의 은근짜에 엄마의 말이 끝나자 두 녀석이 아빠에게도 게살을 입에 넣어준다. 두 마리의 게가 금세 사라진다. 속살을 빼먹고 난 게 껍데기만 쟁반 위에 가득하다. 아이들이 부족한 입맛을 다시더니 다음엔 좀 더 많이 사먹자고 한다.

하기야 대게 두 마리에 네 식구가 달려들었으니 부족도 한창 부족할 것이다. 허나 찬바람이 이는 날 모처럼 온 식구가 모여 앉아 게 다리를 쏙쏙 빨아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기에 게의 속살을 빼 서로 먹여주면 가족 간의 정감도 더욱 깊어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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