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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과학’의 여성 과학참여 독려캠페인 책자. 여성도 과학이 적성에 맞으며, 배우고 실행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과학기술계 중심에 설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과 과학’의 여성 과학참여 독려캠페인 책자. 여성도 과학이 적성에 맞으며, 배우고 실행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과학기술계 중심에 설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여성신문
"과학은 삶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여성은 과학을 변화시킨다." - 프랑스의 대표적 여성과학기술인단체 '과학과 여성(Femme et Science)'의 여학생용 홍보책자 캐치프레이즈 중

[이은경 기자] 유럽연합(EU)에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여권 강국들이 합류함으로써 유럽 전역에 여성 정책이 이슈로 부상했다면, 프랑스의 여성과학기술인 정책은 프랑스가 99년 EU 30개국이 결성한 '헬싱키 그룹' 회원국으로 참여함으로써 진일보 중이다.

헬싱키 그룹이 생겨나기 전 프랑스의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최대 문제는 고위 결정권직의 여성 진출이 매우 미약하다는 것이었다. 가령, 과학기술 전공 여학생은 늘어나는 반면 여성 교수의 수는 이웃의 독일이나 네덜란드에 비해 3분의 1 수준. 98년 이공계 전공 여학생 비율은 34%인 반면 여교수 비율은 14%에 그쳤지만, 2004년 현재 여학생 비율은 40%, 여교수 비율은 17%로 소폭 상승 중이다.

연구원의 경우, 2002∼2003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계 여성 연구원의 비율은 20.6%로 EU 전체 평균 15%를 상회한다. 반면 EU 전체 산업연구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의 여성 연구원 비율은 9.6%에 지나지 않아 심각한 성비 불균형을 드러낸다.

헬싱키 그룹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참여와 연구를 지원하는 유럽 각국의 전문가와 공무원 대표가 모여 구성됐고, 2000년 EU 집행위 아래 사회 각 분야 연구 파트 중 하나의 단위로써 '여성과 과학'이 생겨났다.

@BRI@ 따라서 헬싱키 그룹 앞엔 '여성과 과학을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이 EU 차원에서의 '여성과 과학'이 2001년 프랑스에도 창립돼 과학기술 전 분야를 아우르게 됐다. '여성과 과학'의 주요 업무는 연구 지원과 관련 정책 집행이다. 또 '여성수학자협회', '여성엔지니어협회' 등 주요 여성과학기술인단체들과 함께 여 중고생들에게 과학 마인드를 고취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이에 반해 헬싱키 그룹은 각국 '여성과 과학' 단위와 EU위원회 간 중재자 역할을 한다. 각국의 현황을 EU에 보고하는 한편 각국에 자문을 제공한다. 강제력은 없지만 헬싱키 그룹의 의견은 어느 정도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과 과학'이 특정 정책을 집행할 때 헬싱키 그룹이 반대 의사를 표하면 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즉 헬싱키 그룹과의 합의 아래서 '여성과 과학'이 움직이는 구도로, 일정 부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셈.

헬싱키 그룹 발족 전후부터 EU 위원회에 관여, 2006년 초까지 프랑스 헬싱키 그룹의 초대 대표를 역임한 클로딘느 헤르만 박사(에콜르 폴리테크 전 교수, 물리학자)는 이에 대해 "'여성과 과학'이 '아래로부터'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헬싱키 그룹은 '위로부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표현한다.

그는 헬싱키 그룹이 프랑스 여성 과학기술 정책에 미친 가장 큰 영향으로 "정부 기관의 남성들이 여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든다.

일례로, 프랑수아 굴라르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이 취임 직후 자문위원회를 구성할 때 여성 위원을 단 한 명도 임명하지 않자 여성과학기술인단체들이 항의 편지를 썼고, 이로 인해 올해 1월 26일 고등교육연구부 안에 '양성평등 직업위원회'가 발족됐다. 굴라르 장관을 위원장으로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 중 헤르만 박사를 포함해 절반이 여성이고, 부위원장 역시 여성이 됐다.

헤르만 박사는 "정부에 20가지를 제안하면 그중 2가지라도 성사되는 것은 헬싱키 그룹이 뒷배경으로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와 유사한 예로 2005년 연구 관련 법 조항을 만들 때 여성 관련 조항이 빠지자 헬싱키 그룹을 중심으로 항의가 이어져 결국 여성 조항이 신설되기도 했다.

뭐니 뭐니 해도 헬싱키 그룹의 가장 큰 역할은 2001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해 여성 관련 기구 2개를 동시에 탄생시킨 것이다. 과학연구국립센터(CNRS) 내 성평등위원회인 '여성의 위치'와 교육부 산하 연구부에 '고등교육연구 성평등위원회'가 바로 그것. 이 두 기구가 생긴 이후 과학기술계 전 분야에선 여성의 참여율, 성별통계 등이 주요 이슈가 되는 동시에 연구 실적 판단의 한 기준이 됐다.

프랑스 내 헬싱키 그룹은 10여 명 규모의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되고, 이들 중 정부 측과 민간 전문가 그룹에서 1명씩 총 2명의 대표가 EU 헬싱키 그룹 회의에 참석해 EU와 프랑스의 여성과학기술계 간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헬싱키 그룹 프랑스 대표는 정부 관료인 미셀 바롱과 투루즈대학 니키 르 페브르 사회학과 교수다. 특히 르 페브르 교수의 경우, 순수 여성학자로서는 극히 드물게 정교수 직위를 가지고 있어 마인드 면에서는 물론 위상과 역할에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성 과기인의 강한 의욕과 열정에서 희망 예감"
[인터뷰] '헬싱키그룹' 초대대표·'여성과 과학' 창립자 클로딘느 헤르만 박사

헬싱키 그룹 프랑스 초대 대표이자 '여성과 과학'을 창립한 클로딘느 헤르만 박사(물리학). 사과, 체리, 각종 야채 등을 기르는 텃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파리 교외 마시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씨의 동네 할머니를 연상시켰다. 소박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이지만 프랑스 여성과학기술계에선 전설적인 인물이다.

과학기술 교육의 명문 에콜르 폴리테크에 92년 첫 여성 정교수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프랑스 혁명 직후 1794년 개교한 이래 2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이후 93년 수학과, 95년 기계공학과, 2000년 컴퓨터 공학과에서 연이어 여교수가 탄생, 50명의 교수 중 여교수는 총 4명이 됐다.

헤르만 박사는 98년부터 2005년까지 프랑스와 유럽연합(EU)을 뛰어다니며 대선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92년 에콜르 폴리테크의 유일한 여자 정교수가 된 후 '늘 혼자'라는 생각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이것이 곧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이어졌다. 그전엔 내 문제에만 골몰했지만, 여러 국제회의에서 프랑스의 여성 과학기술인 현황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그 열악한 지위 때문에 사회권력에서의 여성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헤르만 박사는 2003년 작고한 파리대학 위게트 드라보 수학과 교수와 함께 '여성과 과학'을 발족시켰다. 이에 앞서 총리를 지낸 에디트 크레송이 EU 위원회 교육연구부 장관으로 활동하며 98년 '여성과 과학'을 주제로 콘퍼런스를 열어 높은 호응을 얻었다. 여기에 헤르만 박사와 드라보 교수가 깊숙이 참여했고, 이들의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현황 조사 결과는 2000년 보고서로 나와 헬싱키 그룹에 제출됐다.

헤르만 박사는 엔지니어이자 물리학자인 남편과 30여 년간 마시에서 살아왔다. 이들의 노후 삶은 가족을 넘어 지역공동체와 봉사활동에 집중돼 있다. 남편은 과학기술 분야 박사학위자 중 실업자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에, 아내는 남편과 함께 파리 교외지역의 수학·과학 학습장애아들을 돕는 데 헌신하고 있다.

"특히 튀니지, 알제리 등 이민자 가정의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다. '남자는 왕'이란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해 남자아이들은 특혜를 누리고, 공부에 별 의욕이 없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열악한 상황 때문에 동기와 의욕이 강해져 열심히 공부하려 한다. 이들을 보며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헤르만 박사는 "과학기술계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관계도 이렇지 않겠는가"라며 "그렇기에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소외를 당하는 만큼 열정과 의욕이 강해질 것이고, 여기서 희망을 본다"는 말로써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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