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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뒤에 오는 것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넘어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엔 언제나 현실적 모순이 최고조에 달하고 그 여파로 민중에 삶의 질은 바닥을 치고 불만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런 면에서 나는 지금 시기를 한국사회의 전환기로 보고 싶다.

우리시대의 지성 신영복 교수는 지금 시기를 일컬어 '엽낙분본'(葉落糞本, 떨어진 낙엽이 뿌리를 거름한다)이라고 말한다. 즉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행위는 단순히 추위에 밀려난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그 근본인 뿌리를 위해 거름으로서 숭고한 희생을 치름으로서, 다가올 봄에 보다 무성한 잎을 티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모순과 갈등들이 단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라 역사의 순환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또한 역사의 큰 흐름에서 지금 민중들이 겪고 있는 모든 절망과 고통은 모두 미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민중들의 이런 숭고한 희생을 정녕 헛되이 하지 않고 다가올 봄을 알차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준비들을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논의해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BRI@지금 한국사회 좌표는 어디에 있나

오늘날 민중들의 삶이 이토록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 원인은 분명 한국정치의 비효율성과 몰상식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도와 인적구성요소를 놓고 '닭과 계란의 관계'로 소모적 논쟁을 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차피 '완벽한 제도'란 없고 그렇기에 '이성적 사회'는 보다 완전한 제도를 향해 단지 지속적으로 나아갈 뿐이다.

문제는 인적 구성요소이다. 열린우리당 139명, 한나라당 127명, 민주당 12명, 민주노동당 9명, 그리고 무소속 5명의 현 국회의석수가 바로 지금 한국사회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지나친 우파쏠림현상(정책적으로)으로 인해 지금처럼 이들이 다수의 이름으로 야합해서 민중의 기대에 이반해서 나갈 때, 그 어느 세력도 마땅히 이들을 제어할 수단이 변변치 않다는 데에 문제의 본질적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노동3법의 직권상정 폭거는 이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확한 실례였다. 그러므로 현재의 불확실한 미래를 타개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보다 한국사회의 좌표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그것이 정책적으로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아주 냉정하게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그 출발점은 마땅히 현 정부·여당이 과연 민주·개혁세력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출발을 위한 메타포(Metaphor)

'열린우리당은 실패한 정당이다'라는 명제는 사실인가. 소설가 조세희는 그의 연작소설 <뫼비우스의 띠>를 통해서 '안과 밖,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현대 산업사회의 현실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해 낸바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지금 어쩌면 이런 열우당의 모호한 정치적 경계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과거 군사독재세력에 맞서 민주세력, 개혁세력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이들의 정체성과 정책이 되었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보다 심화시킬 수 있었던 '4대 개혁입법'과 자본의 정당한 분배를 위한 최소한의 시장의 룰이라 할 수 있는 '경제개혁'에서 이들은 모두 실패했다. 아니 실패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서 지난 4년간을 돌아보면 사실은 이들의 '정체성'과 '정책' 모두가 한나라당과 별 차이 없는 우파적 입장만을 고수해 왔다고 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지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직도 자기 최면에 깊숙이 빠져있는 듯하다. 즉 자신들이 여전히 민주세력이며 개혁세력이라는 심한 착각 말이다. 과거에는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정체한다' 혹은 '안주한다'는 것은 곧 '보수'를 의미하고 그것으로써 이미 역사는 이들에 대한 평가를 냉정히 끝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여기서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한국정치의 고질병이라 할 정당정치의 구조적 모순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으로서의 정치인과 집단으로서의 정치집단이 가지는 심한 괴리와 이질감에 종종 당혹한다. 아마 누구보다도 정치인들 자신부터 이 점이 몹시 곤혹스러운 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당이 가진 구조적 모순이다.

개인의 정체와 신념을 갉아먹고 안과 밖,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경계가 불분명한 '뫼비우스의 띠'로 모두 것을 흡수해버리는 모순 말이다. 즉 정당의 민주화가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기에 이와 같은 괴리와 모순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정당민주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열린우리당은 이런 면에서도 '민주세력'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이미 상실해 버렸다.

희망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면에서 열린우리당은 실패한 정당임이 분명하고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어떤 전제 조건 없이 마땅히 해제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이와 관련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간의 논쟁은 실패한 집단간의 이전투구를 통한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냉소적 평가 이외에 어떤 정당성도 획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이 그나마 어떤 일말의 책임감과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새로운 세력'의 탄생을 위해서라도 지금 겸허히 나뭇잎의 숭고한 희생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절박함'과 '진정성'이야 말로 새로운 대안세력의 탄생에 필요충분의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제야 말로 한국사회에서도 단순한 이념적 잣대를 넘어 진정 좌파적 정책(분배정책)과 시장의 룰을 세우고 올바른 방향으로 제어할 수 있는 목표가 분명한 정당이 탄생되어야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에서 제시한 열린우리당의 숭고한 희생이 전제 된다면 그 대안세력으로서 시민사회와 민주노동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의원 중 비교적 진보개혁적 인사들의 결합이 분명 가능하리라고 본다.

또한 그 길만이 유일한 희망이고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설령 만에 하나 정권창출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정책적 대척점을 가진 선명한 세력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언제나 민중의 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남미 국가들에서 연일 전해지고 있는 좌파정부들의 집권은 이미 신자유주의의 거센 후폭풍에 노출되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라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사회로서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희망을 위하여 우리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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