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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갤러리 가는길에 귤 껍질을 말리는 풍경을 만났다.
김영갑 갤러리 가는길에 귤 껍질을 말리는 풍경을 만났다. ⓒ 김남희
[그 여자 김남희] 바람이 된 남자 김영갑을 만나다

"우리가 항상 유토피아적 삶을 꿈꾸듯 제주인들은 수천년 동안 상상 속의 섬 이어도를 꿈꾸어 왔다. 제주를 지켜온 이 땅의 토박이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삶에 절약·성실·절제·인내·양보가 보태어져야 함을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 하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 김영갑

눈을 감는다. 감은 두 눈 사이로 구름이 흘러가고, 노을이 지고,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보인다.

그는 깊은 삼매에라도 든 듯 꼼짝 않고 한 자리에 앉아 그 모든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한 세월이 흘렀을 무렵, 마침내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리고 느린 움직임이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름'이, '소리쳐 울 때가 더 아름다운 제주바다'가 그의 카메라 안으로 들어온다. 남자의 손이 떨리고 있다.

눈을 뜬다. 그 남자가 이십년에 걸쳐 담아온 제주의 풍경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들에서는 바람 냄새가 난다. 풀들을 눕히고, 나무를 흔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 그의 사진에는 바람의 손길과 눈길,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가득하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도 바람이 인다.

이미 모든 제주는 그 사내의 카메라에 들어갔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 김남희
오늘로써 내 카메라에 제주를 담는 일에는 마음을 접었다. 제주의 모든 얼굴은 김영갑이라는 한 사내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갔으므로. 아쉬움은 없다. 어차피 짐을 풀고묶는 일이 귀찮아서 잘 꺼내지도 않던 카메라였으니까.

시속 8km의 자전거를 타고 7박8일간 제주를 스쳐지나는 나에게는 기다림의 여유가 없다. 모든 만남에는 기다림이 따른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자연은 경이로운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김영갑의 사진에는 소름 끼치도록 치열한 기다림이 있다. 이십년을 제주에 미치고, 카메라에 미쳐 살던 그는 2만 장의 사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장 단순하게,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진가였다. 그의 사진을 보며 왜 고흐가 떠올랐을까. 살아서 치열했으나 죽어서야 이름을 얻은 두 사람. 고흐도, 그도 가장 깊은 고독의 바다에 섬처럼 혼자 뜬 삶을 살다 간 이들이었다.

새처럼 살았으나 둥지조차 틀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 김영갑. 루게릭 병에 걸려 삶을 견디게 하는 무기이자 벗이었던 카메라를 놓아야 했던 그는 투병 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치열하게 살 뿐이다."

내게도 내일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오늘을 사는 삶의 태도가 달라질까.

자전거를 틀어 찾아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제주가 내게 준 가장 경이로운 만남이었다.

바람 냄새가 나는 사진을 보고나와 다시 바람 속으로 달려간다. 성산포 우체국에서 그의 사진엽서에 몇 줄의 사연을 담아 서울로 보냈다. 내 엽서의 끝자락에 제주의 바람이 실려 갔을까. 지금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내 마음 속에도 푸른 바람이 일렁이고 있다.

말이든 자동차든 자전거든, 남의 등을 빌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부담스러워했던 내가 자전거에 몸을 싣고 사흘째 이 섬을 돌고 있다. 내 마음의 길에 늘어선 나무들의 웅성거림이 높아진다. 내 몸도 조금씩 가볍게 떠오르고 있다.

오징어가 말라가고 있는 해안도로에 선 김남희와 박상규
오징어가 말라가고 있는 해안도로에 선 김남희와 박상규 ⓒ 김남희
[그 남자 박상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1. 밤 9시 - 시낭송으로 촉촉해진 어색남녀, 그러나...

바람에 실려 오는 파도 소리 때문이었을까. 김남희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베란다 창가에 누웠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이불을 덮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요한 침묵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어졌다. 눈을 감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김남희가 작게 말했다.

"파도 소리 참 좋다. 그치?"

우도에 들어와 잡은 우리의 방에서는 제주도의 불빛이 보인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고 숙소 코 앞엔 흰 산호사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 부서지는 파도의 울림은 방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도 소파에 누웠다. 실내의 조명은 아늑했고, 저 멀리 제주도의 불빛은 불꽃놀이처럼 반짝였다.

파도 소리 때문인지 이날 밤 김남희는 오래도록 시를 읊었다.
파도 소리 때문인지 이날 밤 김남희는 오래도록 시를 읊었다. ⓒ 박상규
사람은 상황을 만들고, 분위기는 사람을 흔든다. 김남희가 "너 안도현의 <섬> 아냐"며 시를 읊었다. 시의 한 부분은 이렇다.

"섬에 한번 가 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소파에 가만히 누워 그녀가 읽어주는 시를 듣던 나는 작은 박수를 보냈다. 나의 박수에 '필'이 꽂혔던 것일까, 아니면 파도 소리가 그녀 마음 속 현 하나를 툭 건드렸던 것일까. 뒤이어 김남희는 평소 외우고 있던 김용택의 시 <사랑> 53행 전체를 끊김없이 읊었다. 지난 날 떠나보낸 인연이 떠올랐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파도 소리가 이어지듯 그녀의 시 낭송은 몇 편 더 이어졌다. 소파에 누워있던 나는 답가처럼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읽었고, 김남희와 함께 최영미의 <선운사에서>를 읊었다.

우도에서 맞이한 '어색남녀' 네번째 밤이 파도에 젖은 시 낭송으로 우아해졌다. 그러나 우아했던 분위기를 우습게 만든 것 역시 시 낭송이었다.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은 김남희는 향긋한 국화차를 마시며 마지막으로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를 읊었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싶다..."

창가에 기대 시 낭송을 마친 김남희는 젖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상규야, 국수 대신 라면이나 먹고 자자. 좀 끓여봐라."

나는 "어머니 같은 여자"는 아니지만 잽싸게 라면을 끓였다. 김남희와 나는 마주 앉아 언제 시를 낭송했냐는 듯 김치없는 라면을 후루룩 후루룩 맛나게 먹었다. 살다보면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 싶은 밤이 있다. 그런 밤이 우도에서 깊어가고 있다.

#2. 오후 4시 -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 두 라이더

나는 솔직히 '라이더'라는 표현보다 그냥 '자전거 타는 사람'이 더 편하다. 그러나 김남희가 시종일관 '라이더'라 부르니 그냥 그렇게 표현하자.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해안도로에서 드디어 라이더를 만났다. 여성 두 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꺼내기 전에는 여성인지 몰랐다. 제주도의 강한 바람 탓인지 그들은 얼굴을 천으로 칭칭 감았고, 복장은 승복의 연장인 듯했다. 어쨌든 라이더다.

여행 첫날부터 다른 라이더를 찾고 있던 김남희에게 이들의 등장은 큰 기쁨이었다. 김남희가 자전거를 탄 채 은근슬쩍 그들에게 다가가 친한 척을 하려 했으나 그들을 따라가는 것도 버거워했다. 김남희가 헉헉대며 좇아가 알아낸 정보는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두 여성은 우리보다 반나절 쯤 늦은 월요일 오후에 출발했다. 그리고 우리가 출발한 모슬포보다 수십㎞ 더 멀리 떨어진 제주시에서 달려왔다. 복장은 다소 생소했지만, 그들은 여러 가지로 우리보다 튼튼하고 성실한 라이더다.

우리는 사흘 동안 왜 여기밖에 못 왔을까.

#오후 3시 - 나를 무시하고 김남희만 부르다니

김영갑 갤러리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배는 심하게 고팠다. 나는 "제발 밥 좀 먹고 가자!"고 외쳤다. 그러나 김남희는 "배가 고파야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라며 기어코 점심을 거른 채 김영갑 갤러리로 들어갔다.

김영갑의 사진을 만나고 다시 해안도로로 접어드는 순간. 이 때부터 나는 눈을 좌우로 바쁘게 돌렸다. 식당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오른쪽은 바다뿐이고 왼쪽은 공장 아니면 숲이다. 식당은 보이지 않고 가끔씩 포장마차만 나타났다.

어느 포장마차에서 아저씨와 아줌마가 삼겹살을 지글지글 굽고 있었다. 그 냄새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나는 그들이 "이리 와서 한 점 먹고 가요"라고 외치기를 기대하며 천천히 자전거를 몰았다. 그러나 그들은 '저 사람 왜 빨리 안 달리고 그래'라는 눈빛을 보냈고, 내 눈은 그 짧은 순간에 그들의 불판에는 삼겹살뿐만 아니라 붉은 배추김치도 함께 익어가는 걸 확인했다.

구차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며 앞으로 달리는데, 뒤에서 김남희가 소리친다.

"야, 박상규 이리 와! 점심 먹고 가래!"

나를 통과시킨 그들. 김남희는 세웠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살기 쉬운 세상이지만, 아주 가끔은 이렇게 여자라서 좋을 때가 있다. 김남희 덕에 나는 그들의 식사에 끼었다. 그리고 가능한 아주 많은 삼겹살을 먹었다. 육식을 하지 않는 김남희와 함께 다니는 동안 고기먹을 일은 이럴 때밖에 없다.

내가 삼겹살을 우악스럽게 먹는 동안 김남희는 구운 김치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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