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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14일, 고 배달호씨의 대형 영정사진 앞에서 고인의 동료인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가 연설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분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회사 측은 노조원을 상대로 83억원의 손해배상과 63억원의 가압류를 청구한 상황이었다. 10월에는 한진중공업노조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한진중공업은 노조원의 급여를 가압류하고 있었다.

"재산 가압류하고 노조탈퇴 요구"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 후 3년이 흘렀지만 손해배상청구와 재산가압류(아래 손배·가압류)는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무거운 족쇄가 되고 있다. 노동계는 사용자가 손배·가압류를 남용하여 노조를 무력화하고 단체행동권을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법원은 사용자의 가압류 조치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사측에서 피해액을 자체 산정해 신고하면 별다른 검토 없이 가압류를 적용한다"고 지적했다. 또 "매월 꼬박꼬박 월급을 저축하는 노동자들에게 재산 가압류는 엄청난 심리적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용자의 가압류 조치가 신고되면 피신고자인 노조간부나 노조는 소송이 끝날 때까지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게 된다. 권 변호사는 "재산이 가압류되면 아무리 강경한 노조간부라도 파업을 포기한다, 가압류 남발은 파업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2003년 파업과 관련, 올해 철도공사에 24억4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현재 노조는 매년 예산의 3분의 1을 이 배상액을 갚는 데 쓰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에게만 손배·가압류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손배·가압류의 대상이 노동자의 신원보증인인 가족이나 친척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적용 대상도 임금에서 예금, 자동차, 전세금, 주택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노동당이 줄기차게 신원보증인 제도의 폐지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정규사업장, 손배·가압류 400억원에 달해

노동계와 노동법학자들은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불법파업을 양산하는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용자가 불법을 명분으로 손배·가압류를 청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 사안에서 손배·가압류 청구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권두섭 변호사는 "사용자가 임의로 가압류 금액과 대상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법원이 이에 대한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배·가압류 문제가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3년 전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면서 노동부와 재계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후 '노력하자'는 말만 나왔을 뿐 손배가압류의 남용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개선책은 빠져있었다.

권두섭 변호사에 따르면, 올해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가 비정규직 사업장을 대상으로 집계한 손배·가압류 금액은 총 400억원에 달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손배·가압류가 더욱 남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재계는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가압류 내지 손해배상 청구는 법에 따른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두섭 변호사는 "현행 노조법에서 노동자의 합법적인 파업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재계의 손배·가압류가 항상 정당한 피해보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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