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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책 표지
<깨달음> 책 표지 ⓒ 규장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밥 잘 먹는 게 최고의 보약이라고. 작은 깨달음이다. 실용서를 암기하기보다 깨달은 것 한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 가지 거창한 기법보다 한 가지 소박한 깨달음이 위기에 빠진 기업을 살린다. 삶을 바꾸기 위해 찾은, 실천하지 않는 만 가지 방법론보다 깊이 깨달은 한 가지를 삶에 적용하는 것이 삶을 바꾼다. 깨달음이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길이다. 깨달음이란 사람의 깊이를 만드는 샘물이다.

사막교부들(사막 은자들)은 AD 3~5세기 동안 사막에서 생활한 수도자들을 가리킨다. 로마제국이 AD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자 사치와 부패로 물든 로마의 타락 문화가 교회에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이에 신앙의 순수성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대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의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에 힘쓰게 되었다.

그들은 철저히 홀로 서는 단독자의 삶, 곧 은둔자의 삶을 택했다. 이렇게 해서 AD 3~5세기에 걸쳐 ‘수도생활’이라 알려진 생활 방식이 역사상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사들은 독신의 삶, 금식, 고독, 침묵, 철야, 기도, 무소유 같은 금욕적 생활을 추구했다. 이들이 바로 ‘사막교부’로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로 말미암아 유럽에서 수도원 운동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이집트 사막 수도자들은 성직자도, 학자도 아니었다. 물론 그들 가운데 로마의 귀족 아르세니우스와 학자 에바그리우스처럼 고전을 배우고 품행이 세련된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평신도이자 교육을 받지 못한 농부였고, 아폴로 같은 목동이었으며 마카리우스 같은 떠돌이 상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가르침은 어떤 석학도 따라잡을 수 없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깨우침을 준다. 이 책은 그들 ‘사막교부들의 수행록’이다. 이 책의 라틴어 원본은 < Verba Seniorum >이다.

사랑

어떤 형제가 한 은둔자에게 말했다. “저는 나쁜 소문을 안고 다니는 형제를 보면 초대하지 않지만 훌륭한 수도사들을 보면 기쁜 마음으로 초대합니다.” 은둔자가 말했다. “선한 형제를 선으로 대하는 것은 그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소.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고, 나쁜 소문을 낭고 다니는 형제들에게 두 배의 사랑을 베푸시오. 그 사람이 무척 아프기 때문이요.”

사막교부들의 이런 깨달음은 한 차원 위에서 생각하는 삶의 깨달음이다.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사랑, 이웃의 나쁜 소문도 수용하는 사랑. 이런 삶의 적용은 희생이 포함된 사랑이다. 이처럼 깨달음이란 눈높이를 바꾸는 힘이다.

어떤 형제가 한 은둔자에게 물었다. “수도사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한 번에 엿새씩 금식하고, 엄격한 규칙을 지키면서 움막에 앉아 고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병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한 번에 엿새씩 금식하는 형제가 자신의 몸을 아무리 혹사시킨다 하더라도 병자들을 돌보는 형제에 버금가지 못할 것이오.”

섬기는 사랑은 보이려고 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경건도 보이는 거룩함이 아니다. 수준 높은 사랑은 아픔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고 봐주지 않더라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와 함께하는 그 자체가 진정한 사랑이다.

겸손

한 은둔자가 말했다. “그대가 침묵하는 습관을 익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말라. 대신 ‘나는 아무것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라.”

은둔자들이 말하는 겸손은 1차원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뛰어 넘는다. 진정한 겸손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태도와 모습이 겸손해도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를 마음으로 낮추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한 은둔자가 말했다. “분에 넘치는 칭송과 명예를 얻은 사람은 나중에 모든 것을 잃고 생명까지 잃을 것이로되, 인간 가운데 살며 아무런 명예도 얻지 않은 사람은 장차 영광을 받을 것이다.”

잘못 사용된 칭송과 명예는 겸손을 만들어가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마음이 낮아지지 않으면 칭송과 명예는 불쑥불쑥 자신을 내세우게 한다. 그런 면에서 명예가 없는 사람은 겸손을 방해하는 한 가지 장애물을 제거한 셈이다. 그러나 명예가 없지만 마음이 높은 사람은 교만할 수 있다.

배려

어떤 형제가 한 은둔자를 찾아왔다가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은둔자여! 저를 용서하십시오. 제가 공연히 방문하여 은둔자께서 규칙을 지키지 못하게 훼방하였습니다.” 은둔자가 대답했다. “내 규칙은 그대를 환대하여 평안히 보내는 것이니 괘념하지 마시오.”

배려는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비록 은둔자가 규칙을 어기게 되었지만 그렇게 만든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더 마음을 아파하는 상대방 처지에서 마음을 낮춘 배려 때문이다.

처지를 바꾸어 보자. 내가 한 실수가 상대에게 용납되고 이해되고 포용될 때 우린 어떤 마음을 품게 되는가.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더 좋은 관계가 되고, 감동의 물결이 넘칠 것이다. 배려는 나와 상대를 기쁘게 만드는 감동이벤트가 된다. 교부들이 말하는 배려 앞에 우리 자심을 놓아보자. 그곳에 이웃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사막에 찍힌 지혜의 발자국을 따라 깨달음의 문 안으로 들어가면 어디서도 만나지 못했던 깊고 청명한 삶의 교훈을 만나게 된다. <깨달음>은 삶의 고단함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선물하는 마음의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깨달음 - 내 눈 뜨기

법륜 지음, 정토출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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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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