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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경내.  대영박물관은 플래시 사진도 허용한다.
대영박물관 경내. 대영박물관은 플래시 사진도 허용한다. ⓒ 한대일
사람들의 의식 상태도 굳건하기 그지없어서, 사람들이 박물관에 대한 에세이를 쓴 것을 봐도 "박물관은 '당연히' 사진촬영 금지이므로…"라는 글이 바늘에 실 가는 것처럼 꼭 있다. 실제로 박물관에 가서 촬영할 때 일부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몸소 나셔서 "박물관에는 사진 촬영 안 됩니다"라는 한 마디를 툭 던지고 간다.

하지만, 사진촬영을 무조건 비매너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근거 없이 위에서 내려온 규제에 익숙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사진 촬영을 자제하라는 사람에게 역으로 질문해서 사진촬영 금지에 대한 이유를 묻노라면,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하지 말라고 해서'라는 대답도 있고, 그나마 대답으로 나오는 것이 '전시물 훼손', 더 나아가면 '저작권 침해' 등이 나온다.

넥타네보 2세의 석관.  대영박물관 일부 전시품은 직접 만질 수도 있다.
넥타네보 2세의 석관. 대영박물관 일부 전시품은 직접 만질 수도 있다. ⓒ 한대일
하지만 그런 근거사항들도 대부분 자세한 이유나 설명 없이 그냥 위에서 하달한 방침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일 뿐 결단코 깊은 통찰의 과정을 통해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점은 유홍준 문화재청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절대로 필자만의 생각은 아님을 밝혀둔다.

① 플래시 문제

분명히 플래시가 전시물에 훼손을 주는 것은 맞다. 더욱이 빛에 민감한 회화 작품에 대해서는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가 주장하는 사진 촬영 허용의 한도는 플래시 미사용이며, 이 점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도 반영해서 사진촬영 때 플래시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침 덕택에 많은 시민들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은 채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간혹 실수로 플래시를 터뜨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일부일 뿐이고, 대다수 사람은 박물관 규칙에 따라 사진을 찍는다. 문제는 이런 것조차 아직도 비매너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유명 포털사이트 지식센터 검색창에 '박물관 사진촬영'을 쳐보면, 박물관 사진촬영 허가 여부에 대해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올라와 있는데, 아직도 '규제에 익숙해 버린' 일부 사람들은 박물관 사진촬영 자체를 비매너로 매도하고 있다. 이제는 귀에 못이 박여 버린 '전시물 훼손'이라는 단순한 이유를 가지고서 말이다. 하지만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은 사진촬영도 전시물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해야만 할까?

밀로의 비너스 상.  루브르 박물관 내 일부 석조 전시물은 플래시 촬영도 허용된다.
밀로의 비너스 상. 루브르 박물관 내 일부 석조 전시물은 플래시 촬영도 허용된다. ⓒ 한대일
플래시를 터뜨린다는 것을 사람 몸으로 비유하자면, 눈이 깜빡거리면서 눈에 광채가 나는 것과 같다(실제로 카메라와 눈의 원리는 유사하다). 그러니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평상시에 우리가 그냥 눈을 깜빡거리는 행위와 같다. 즉, 전시물을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우리가 전시물 앞에 다가가 눈을 한 번 깜빡거리는 행위와 별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사진촬영은 카메라라는 수단을 통해 오래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과연 전시물 앞에 눈 한 번 깜빡거리는 행위가 그 전시물에 얼마만큼 훼손시킬까? 만화가 김진태씨의 <시민쾌걸>에서 나오는 캐릭터 배드맨의 무기 '브릴리언트 브라이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은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내뿜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눈을 통해 그 시각적 정보가 우리 뇌에 흘러드는 것뿐이니 전시물이 훼손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이런 고로 어느 누구도 단순히 '보는 행위'가 전시물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전시물 앞에 눈 한 번 깜빡거리는 행위는 그대로 지나치면서 어째서 이런 눈의 원리와 그 과정이 같다고 할 수 있는 플래시 없이 사진찍기는 전시물 훼손을 이유로 아직도 금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이 근거 없는 규제에 익숙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 한대일
세계 선진국의 대다수 박물관들은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더욱이 대영박물관은 아예 플래시 사진도 허용하는 등 촬영에 대해 매우 관대한 편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회화실, 바티칸 박물관은 시스티나 예배당을 제외하면 플래시 없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유물의 중요도로 봤을 때 영국 유물이랑 한국 유물이랑 프랑스 유물이랑 별 차이 없을 텐데, 왜 유독 한쪽은 촬영해도 되고, 한쪽은 촬영하면 안 되는 걸까? 우리가 지금까지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박물관 내 촬영금지'가 사실은 아무런 근거없이 내려진 규제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② 상업적 용도·저작권 문제

박물관 사진촬영을 반대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가 바로 저작권 문제이다. 박물관 내 전시물을 마음대로 찍어서 상업적 혹은 인터넷으로 유포하면, 그 박물관은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는다는 얘기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올려진 사진만으로도 박물관 전시물을 볼 수 있다면, 구태여 박물관에 직접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박물관은 돈을 벌어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일명 '어둠의 루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집에서 보니 직접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 한대일
약간 얘기를 돌려서, 요즘 아무리 디카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분명히 플래시를 터뜨린 사진보다는 화질이 나쁘게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DSLR과 같은 고가의 장비가 아닌, 일반 콤팩트 디카로는 박물관 내에서 훌륭한 화질의 전시품 사진을 잘 찍을 수 없다. 최근에 저가형 DSLR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많이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직도 콤팩트 디카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상황이다.

이는 곧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장비의 DSLR이 아닌, 약간 화소가 떨어지는 콤팩트 디카를 이용해서 전시품을 찍어야 하고, 이는 곧 훌륭한 박물관 전시품 사진, 즉 작품이라고도 인정받을 만한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이 어렵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상당수 사람들이 사진찍기 기술로써 디카의 성능을 뛰어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디카 자체 성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경내.  국립중앙박물관은 플래시와 삼각대를 이용하지 않는 사진 촬영은 허용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경내. 국립중앙박물관은 플래시와 삼각대를 이용하지 않는 사진 촬영은 허용하고 있다. ⓒ 한대일
상업적으로 사진을 이용하려면, 일단 그 사진이 경탄할 만큼 잘 나와야 한다. 어두컴컴한 박물관에서 희미하게 찍힌 사진을 아무리 갖다대도 그 사진을 상업적으로 흔쾌히 이용할 곳은 전혀 없으니깐 말이다. 이렇게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될 만큼 잘 나온 사진이 아니므로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사진촬영 금지 논거로 단골메뉴처럼 이용되어 온 '상업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저작권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을 어불성설로 만들어 버린다.

설사 상업적 이용에 대한 위험으로 저작권 문제를 들고 나와도, 박물관 측에서 따로 촬영비를 받는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이집트의 카이로 박물관에서 이용하고 있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저작권료를 촬영비라는 형태로 냄으로써 촬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다만 '미라 실' 같은 특수한 곳은 플래시 없는 사진촬영도 안 된다), 박물관 측은 촬영료로 저작권료를 보상받음으로써 충분히 금전적 손해를 막을 수 있다.

빗살무늬 토기. 전시실에 들어가면 처음 볼 수 있는 유물이다.
빗살무늬 토기. 전시실에 들어가면 처음 볼 수 있는 유물이다. ⓒ 한대일
이런 정책은 한국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특히 창덕궁에서는 일종의 촬영료만 내면 상업적으로 이용할 사진을 찍게 해서 저작권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을 취하고 있다. 플래시 없이 터뜨린 사진은 상업적으로 이용하기에는 가치가 작고, 설사 상업적으로 이용할 만큼 작품성 있고 전문적인 사진을 찍는다 해도 촬영료를 통해 저작권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상업적 이용에 의한 저작권 문제'가 박물관 내 사진촬영 금지의 주요 논거로 작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유포를 통해 저작권이 위협받는다'라는 측면은 어떨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유홍준 교수가 언급한 바 있지만, 선진국의 많은 박물관들은 자신들의 전시품을 인터넷으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특별한 제재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박물관을 홍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권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적 용도로 인터넷에 전시품 사진을 올리는 것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박물관들은 특별히 저작권 문제를 들먹이지 않는다.

국보 제3호 신라 진흥왕 순수비
국보 제3호 신라 진흥왕 순수비 ⓒ 한대일
따라서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단순한 개인 용도의 인터넷 유포 행위에 대해 저작권 문제를 거론할 수 있을까? 만약 거론된다고 하면, 이렇게 인터넷에 유포된 사진들뿐만 아니라 공유기를 통해 받은 음악, 만화, 영화 등 수많은 사항들에 대해서도 건드려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쉽사리 건드리기에는 각계각층에서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저작권 문제를 쉽게 거론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애당초 상업적 목적이 아닌 개인 용도의 인터넷 유포 행위는 저작권 문제에 걸릴 수가 없고, 걸린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난관과 애매모호함에 봉착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과연 '인터넷 유포' 행위가 박물관 사진촬영 금지의 주요 논거로 거론될 수 있을까? 요약해서 얘기하자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잘 나온 사진이 아니어서 상업적으로도 이용할 수 없는 사진에 대한 개인 용도의 인터넷 유포는 저작권이 언급될 틈이 없으며, 설사 언급된다 하더라도 별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보물 제328호 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제328호 금동약사여래입상 ⓒ 한대일
이렇게 차근차근 뜯어서 보면, '박물관 내 사진촬영 금지'라는 인식이 아무런 근거 없이 그저 위에서 강요된 규제의 산물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그 조치는 기존의 인식을 허물어버린 '위대한' 개혁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립박물관들은 사진촬영 자체를 금지하고 있고, 이에 대해 관람객들은 혼선을 빚고 있다. 아직 사진촬영 여부에 대한 박물관들의 조치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데에 따른 혼란이다. 따라서 문화재청은 사진촬영 여부에 대한 각 국립 박물관들의 조치를 하루빨리 통일시켜야 할 것이다.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 한대일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플래시 없는 사진촬영은 전시물에 무해하며, 저작권으로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규제에 사로잡혀 있다. 단순히 위에서 '사진촬영은 안 된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은 채, 이제는 각 사람의 뇌에 그 의식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그 뿌리를 뽑을 때가 왔다. 박물관 내 사진촬영 금지는 이 나라 정권이 끊임없이 강요한 근거 없는 규제이며, 우리는 이를 과감히 반대하고 사진촬영에 대한 개방된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입실론 (Epsilon)' 이란 필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싸이월드 페이퍼에 문화재와 답사 여행에 대한 각종 정보를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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